이 땅에 오신 예수님, 첫번째 성탄절에 관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첫번째 성탄절에 관하여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권으로 되어있다. 예수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와있다. 그런데 그 묘사된 장면이 조금 다르다. 혹자는 이것을 예수님 탄생이 실제 역사적 사실이 아닌 증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성경의 무오성은 틀렸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거짓을 말하는 어느 누가 버젓이 틀린 증거를 가지고 자기 주장을 하겠는가. 세상 재판정에서도 잘못된 증거를 들고 변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신이 온전하다면 말이다. 하물며 성경인 것을. 잘못된 기록(그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 아는 예수님 탄생 기록을)을 통한 믿음이 박해를 받을 때마다 더욱 거센 불꽃으로 타오르고 2천년 가까운 세월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유지될 수 있었겠는가.

마태와 마가의 기록이 다른 것은 그들의 관점이 달랐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을 때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서로 다른 각도에서 한 장면을 찍듯, 서로 다른 시각으로 예수 탄생을 기록해 온전한 하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마태 – 왕으로 오신 예수님

예수님의 계보

마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촛점을 맞춰 기록했다. 왕에게 중요시 되는 것은 정통성이다. 그래서 마태는 첫 머리에 예수님의 계보를 기록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로 시작해 17절’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하는 것이 그것이다.

 

요셉의 시각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는 수태고지 장면은 마태복음에 나오지 않는다. 대신 요셉의 꿈에 주의 사자가 현명하여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니 무서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데려오라고 이른다.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않았고,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예수라고 했다고 기록했다.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을 찾아와 경배하는 동방의 박사와 위기를 느끼고 유아살해를 명령하는 헤롯 왕의 기록은 마태복음에만 나온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하였음이니이다. (마태복음 2:1~6)

예수님께는 예수, 임마누엘, 왕, 그리스도 네 개의 이름이 있다. 예수는 ‘야훼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이고,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기름 부음은 왕, 제사장, 선지자들에게 행해졌던 의식이었다.

 

 

누가 – 약한 자,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

마태가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촛점을 맞췄다면, 누가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에 촛점을 맞췄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누가복음 1:35)

그러기에 누가복음 첫머리에는 예수님의 계보가 나오지 않고, 대신 주의 앞길을 준비하는 세례요한의 이야기가 나온다.1

 

마리아의 시각에서

누가가 본 예수님은 낮은자, 비천한 자, 주리는 자를 위해 오신 예수님이었다. 그래서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를 기록하는 대신, 보다 더 사회적 약자였던 어린 소녀 마리아에게 나타났던 것을 조명했다. 마리아도 세례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만나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누가복음 1:46~48)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누가복음 1:51~53)

 

 

낮고 낮은 곳으로 임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가장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고, 낮은 곳으로 임하셨다. 누인 것도 요람이 아니라 구유였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누가복음 2:7)

이런 예수님께 경배하러 왔다고 누가가 기록한 것은 박사가 아니라 들판에 있던 목자들이었다. 그 지역 목자들이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었는데, 주의 사자가 곁에 서서 온 백성에게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고 천군천사가 함께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들은 빨리 가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고 마리아와 요셉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이처럼 두 사람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록했다. 조금씩 다른 이 기록은 서로 다른 날실과 씨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란 타피스트리 작품을 온전히 이뤄내고 있는 것이다.

 

 

[참고글]

 

[관련글]

 

Footnotes

  1. 예수님의 족보는 침례를 받고 시험을 받기 전인 5장 말미에서 나오는데, 마태복음에서 나오는 계보가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예수님에게 이르는 것과는 달리, 요셉부터 시작해 하나님께로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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