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예배 본이 되는 예배

적극적인 예배, 본이 되는 예배

적극적인 예배 본이 되는 예배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한복음 4:23)

언제부턴가 우리는 소비자처럼 교회에 와서 예배당 의자에 앉아 앞에서 진행되는 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다. 그것에서 유익을 얻고, 여러가지 것들을 자신의 취향과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다. 오늘 설교는 은혜로왔다, 성가대나 오케스트라 연주는 영 아니었다 등등 말이다.

정작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성도가 예배의 적극적인 참여자여야 한다는 사실도, 모두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다.

예배시간이나 그 전후,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 태도와 자세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준다. 무심코 하는 모든 것들이 큰 의미를 갖고 아이들에게 무언의 메시지로 전달되는 것이다. 강론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그것은 부정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나. 마음과 뜻과 온 힘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나. 이것이 부모의 책임이구나 싶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6~9)

 

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믿음이 연약한 후배들에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믿는 형제들에게 본이 되는 예배, 덕을 세우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힘써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린도전서 14:26)

예배보다 vs. 예배 드리다

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2 Responses

  1. 이롬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