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장막에 거하는 자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시편 15:1~5)

1.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

시내산@wikimedia

1절에서 다윗은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는 누구인지 묻고 있다. 주의 장막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다. 2절 이하에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장막에서 살 사람,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머물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깨끗하고 바르게 살면서 마음에서 우러난 진실을 말하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나쁜 짓을 하지 않으며 이웃의 나쁜 소문은 내지 않는 사람. 그러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중하고 외면하는 이는 상대조차 하지 않는 사람. 자기 약속은 꼭 지키고, 돈놀이나 뇌물을 받고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

가. 자격 조건이 필요 없다

다윗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권력이나 사회적, 경제적인 힘, 박학다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아무런 자격이나 조건에 구애받지 않기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다.

나. 일상이 예배인 생활

다윗이 말하는 것들을 가만 보면, 그 공간이 예배당이라기보다는 세상과 섞여 사는 생활 영역이다. 예배당이든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각자의 처소이든, 거룩하게 예배를 드리고 세상으로 나오면 다른 인물이 되는 경우가 있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해야 한다. 거룩이란 세상과 구별되는 것이다. 예배를 드릴 때만 거룩해서는 안 된다. 다윗은 지금 세상에 발 담그고 사는 실생활에서 구별되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어떻게 가능할까. 성령 하나님이 늘 내 안에 계심을 자각하고 살면 된다. 그런데 가끔 잊게 된다. 필요할 때만 불러낼 수 있는 것은 램프의 요정 지니다. 하나님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런 존재로 취급하는 짓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하고, 적어도 그렇게 살려고 애써야 한다.

일상이 예배가 되는 생활. 어렵다. 어렵지만 우리는 일생을 그렇게 애쓰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성화다. 천국 갈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을 닮기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주의 장막에 거하는자
일상의 작은 일부터 @pixabay

2. 신약에서 찾아본 구절들

다윗이 말한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를 신약에서는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궁금해 신약에서도 찾아보았다.

가. 빛과 소금 된 생활을 하는 사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3~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20)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그런 삶은 세상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고 세상에 비치는 빛이 된다. 세상 사람들도 빛과 소금 되는 행위를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나.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가복음 10:15)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가식이 없고 순수한 사람, 자신의 무력함을 알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의뢰하는 사람, 낮아진 사람을 말한다. (>>예수님이 보신 어린이 참고)

다. 거듭난 사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5)

니고데모는 물론이고 누구도 거듭난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 뱃속으로 어떻게 다시 들어갔다 나오냐고 물을 정도였다.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가. 죄인 되었던 존재가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믿고 회개하면 거듭나게 된다. 거듭난 존재는 그 전과는 종자부터 다른 새로운 존재가 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 죄, 회개, 믿음, 행위 그리고 구원 참고)

다. 불의하지 않은 사람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고린도전서 6:9~10)

불의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불의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부도덕한 생활, 우상숭배, 간음, 색탐, 동성애, 도둑질, 탐욕, 술주정, 남에 대한 모욕, 강도질 등이 언급되고 있다. 모두 욕심, 탐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5)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24)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누가복음 12:15)

탐심은 우상 숭배다. 무슨 까닭일까? 사단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대신 세상 것들을 바라고 좇게 하기 위해 탐심을 불러일으켜 미혹한다. 그러기에 탐심은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마귀의 미혹을 받지 말고 물리쳐야 한다. 어둠을 몰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빛이 들어오면 어둠은 자동으로 물러간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경건한 생활, 매일의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미혹에서 멀어진다.

주의장막에 거하는자 언택트시대
비대면이 일상이 되었다@wikimedia

3. 다짐

위기와 변화의 시대다. 계속되는 경기침체와 질병의 유행으로 우리는 좋든 싫든 여러방면에서 격변을 경험하고 있다. 경제적이나 사회적 어려움을 크게 겪는 분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뿐 아니다. 그 변화 탓에 심리적, 신앙적 위기를 겪는 이도 많다. 사람에 따라 비대면 예배가 낯설고 어려울 수 있다. 구역 식구들끼리 오손도손 교제를 나누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언제 다시 경험하게 될지!

하지만 덕분에 머리 되신 예수님과 지체된 우리가 성령 안에서 모두 하나로 연합함을 더욱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비록 장소는 다르더라도 말이다.

예배당에 모였다 돌아가는 그 순간, 우리는 세상을 향한 파송 선교사가 된다. 지금 우리는 예배당에 모이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이 꼭 큰 사업을 해야 감당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시고 작은 일부터 힘써, 일상이 예배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쓰자고 다짐한다. 그리하여 어린아이처럼 겸손한 믿음, 미혹 받지 않는 의로운 삶을 살자. 반석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려,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주의 성산에 사는 자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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