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장 에덴동산

창세기 2장 에덴동산

지난 세 글에서 창세기 1장, 천지창조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창세기 2장 에덴동산’ 글을 통해 안식과 에덴동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신 일이 다 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창세기 2:1~3)

창세기 2장 에덴동산

창세기 2장은 1장에서 창조된 사람을 좀 더 줌 인해서 살펴보고 있다. 2장에서 나오는 인간 창조는 1장과 별개의 새로운 것이 아니다. 중요한 사항이기에 한 번 더 집중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 전체는 창조와 창조의 회복, 구속사역에 관한 이야기이며, 오실 예수님과 오신 예수님,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회복과 구속이 필요한 이유도, 또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도 모두 한 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그 사건은 바로 인간의 타락이었다. 그렇기에 인간 창조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하다.

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창세기 2장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는 말씀으로 시작한다.

만물(콜 체바암)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 즉 창조된 모든 것들을 뜻한다.

‘이루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 지으시던 일을 마치셨을 때, 이루지 못하고 남겨둔 일이 하나도 없음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에 들어갈 것조차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이루셨다1.

성경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천사도 피조물인 만큼 6일 동안 창조되었을 것이다.

2.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일곱째날이 이를 때에 지으시던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

안식(솨밧)이라는 말은 쉰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6일 동안 힘든 일을 마치고 탈진해서 휴식하신 것이 아니다. 쉼은 일을 그쳤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이 쉼은 우리 생활의 본이 되어 한 주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일곱째 날에 쉬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단지 노동에서 벗어나는 의미보다, 하나님 안에서 평안히 쉰다는 의미가 있다.

일곱째 날은 몇 시간이었을까? 일곱째 날 즉 하나님의 안식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이들도 있다 하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지금도 역사하신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한복음 5:17)’고 하셨다.

창조를 마치시고 계속 쉬고 계신다거나 일곱째 날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창조사역 후로는 손을 떼셨고 세상은 기계적으로 돌아갈 뿐이라고 주장하는 이신론이나 다를 바 없다.

3.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안식일은 거룩한 날이다. 거룩(코데쉬)이라함은 다른 것과 구별됨, 잘라냄, 분리를 뜻하는 말로 ‘더러움과 분리된 상태’를 가리킨다.

안식일을 모세를 비롯한 유대인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를 보면 안식일은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복된 날이었다.

우리에게는 천국에서 이뤄질 참 안식이 남아있다. 지금도 우리는 평안을 누리고 있지만, 그때는 충만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가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브리서 4:9~11)

  •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4.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이제까지 사용하던 하나님(엘로힘)이란 말 대신 여호와 하나님이란 말이 처음 등장한다. 엘로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뜻하고,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그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대략이 이렇다고 했다. 대략(톨레도트-generations)은 창세기에 10번 나오는데, 대략, 계보, 사적, 후예, 약전 등의 뜻으로 쓰였다. 이 구절에서는 각 날마다 특정 부분을 창조하셨기에 각각의 세대처럼 간주하여 쓴 말로 생각된다.

5.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당시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대신 안개가 온 땅을 적셨다. 노아가 홍수를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믿지 못하고 비웃기만 했던 것은 비라는 것이 뭔지 몰랐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6. 경작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들에는…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1장에서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어째서 2장에 사람이 없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은 사람을 만드시기 직전으로, 이 글 맨 처음에 말한 것처럼 사람 창조에 대해 좀 더 초점을 맞춰 살피는 대목이다.

또 셋째 날 식물을 창조하셨는데 어째서 여섯째 날에 식물이 없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야생의 초목은 있으나 들(field)과 밭(field)에 인간이 재배하는 곡식과 채소, 과수 등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을 만드시기 전이니 당연히 들이나 밭도 없고 재배하는 것도 없는 것이 당연하다.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7.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생물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 하나님께서도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창세기 3:19)이라고 하셨다.

지으시고(야차르)는 하나님의 계획한 모습에 맞도록 형체를 빚어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를 빚으시는 토기장이시다.

  • 이사야 45: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찐대 화 있을찐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 예레미야 18:6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 로마서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8.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지은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생기(니쉬마스 카이임)은 ‘생명의 호흡’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숨결을 불어 넣으심으로 사람은 생령이 되었다.

생령 生靈(네페쉬 카이야)이라는 말 그대로 사람은 살아있는 영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숨결로 살아있는 자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숨결인 영이 떠나간 몸은 죽은 몸이고 그저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9.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동방의 에덴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읽으면 어디의 동쪽일까 궁금해진다. 에덴 동산의 위치가 어디였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위치를 알 수 없다.

대홍수 때 엄청난 지각변동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지키게 하셨기 때문이다.

에덴은 우아함, 기쁨,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게서는 우아하고 기쁘고 즐거운 에덴 동산을 만드시고 사람을 거기 살게 하셨다.

10. 나무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 보기에도 아름답고 먹기에도 좋은 각종 나무를 나게 하셨다. 나무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다.

많은 나무들 가운데 이 두 나무 이름을 특별히 언급한 것은 특별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명나무는 그 열매를 먹으면 영생을 할 수 있는 나무였다(창세기 3:22).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 역시 독특하다. 선과 악을 알게 하다니. 선과 악이 무엇인가. 선과 악의 기준은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첫 사람은 하나님이 직접 생기를 불어넣어 만드셨다. 그런 그가 선과 악을 모른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그의 모든 기준은 하나님이었다.

여기서 선과 악을 안다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절대기준이 있다는 생각에서 나도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을 비롯한 온 천지만물이 모두 설계자인 하나님의 기준으로 창조되었다. 그렇기에 하나님과 나의 가치관이 같을 때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

  •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온 땅에 둘렸으며
  •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0~17)

11. 강

에덴 동산에는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라는 강이 흘렀는데, 그 수원지는 모두 에덴에 있었다. 에덴의 위치를 모르니 이 강들의 위치도 알 수 없다.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강 두 개가 있는데, 메소포타미아를 가로지르는 힛데겔(티그리스)과 유브라데스 강이다. 하지만 대홍수로 인한 지형변화로 같은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12.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다스리다(아바드)의 뜻은 일하다, 가꾸다, 경작한다는 뜻이다. 첫 사람은 에덴동산을 가꿨다. 이때의 일은 노동, 저주의 결과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하나님은 무엇에서 에덴을 지키게 하셨나? 사람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는데 말이다. 야수로부터 지키라고 하셨을 리는 없다. 당시 동물들은 모두 온순한 초식 동물이었다.

사실 지키는 것은 탐내는 자가 있어야 가능하다. 하나님과 사람 말고 또 누가 있었을까? 누가 세상을 탐냈을까?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천사로부터 에덴 동산을 지키게 하셨다.

13,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으라고 하셨다.

14.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정녕 죽으리라

모든 나무의 열매는 다 먹어도 되었다. 심지어 생명의 나무도 먹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딱 하나는 먹지 않아야 했다. 그것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다.

그 열매를 먹으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죽음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가 아니라 정말 죽는다고 하셨다. 그것을 명심해야 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한다는 유일한 표시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순종마저도 선택할 자유가 있었다.

  •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18~25)

15. 돕는 배필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은 좋지 못하다시며 돕는 배필(에제르 케네그도/a helper suitable for him)을 지어야 겠다고 하셨다.

앞 글 에서도 말했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지으셨다. 한 마리 한마리가 아니라 무리지어 만드셨다. 하지만 사람은 하나씩만 지으셨다.

아담은 왜 자기만 혼자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을까. 배필은 우리말로 ‘짝’이다.하나님께서는 외로운 아담에게 짝을 구해주기로 하셨다.

16.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하나님께서는 창조해놓으셨던 동물들의 이름을 아담이 어떻게 짓나 보고 싶으셨다.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나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하나님께서 동물들을 아담 앞으로 하나씩 보내면서 아담이 동물 이름 짓는 모습을 지켜 보시는 것을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보면서 얼마나 대견하게 생각하셨을까. 그것은 우리가 자녀들을 사랑하는 이상이었다.

태초의 인간을 생각할때, 우리는 자칫 벌거벗은 원시인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직접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신 역작이었다. 영원히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완벽한 인간이었다.

식물과 어류, 그리고 멸종한 동물은 빼놓는다 하더라도, 조류가 약 1만 종이고 양서류가 4천종, 파충류가 6천종, 포유류가 4,629종에 이른다. 한 마리씩만 아담 앞을 지나가도 대략 2만5천 마리다.

하루가 1,440분이니 1분에 한 마리씩 지나가도 17일이 넘게 걸리는 셈이다. 먹고 자는 생리활동에 필요한 시간은 고려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아담은 그 많은 동물을 척 보고 이름을 지었다. 이름을 지을 때는 각각의 특징을 보고 지었을 것이고, 겹치지 않게 지어야 한다. 그리고 중복되지 않게 하려면 앞에 불렀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아담의 지능을 숫자로 나타내면 그 EQ며 IQ 가 얼마나될지 무척 궁금하다. 아마 그 수준이 현대인과 비교할 수도 없이 높지 않았을까?

17.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짝을 어떻게 구해주실까.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고 했다. 여자를 만들어 아담의 짝을 채워 주셨다.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를 하나 취하셨다. 그리고 그것으로 여자를 만들어 아담에게로 데려 오셨다.

아담도 흙으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여자는 왜 흙으로 만들지 않으시고 굳이 아담의 갈빗대로 만드셨을까? 갈빗대는 심장을 보호하는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분리될 수 없는 연합, 생명의 교제를 동등한 위치에서 나누도록 지음 받았음을 의미한다.

결혼은 하나님과 교회(성도)의 관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게 볼 때 머리뼈도 다리뼈도 아닌 갈비뼈로 만드신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8.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아담은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신 여자를 보고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짝임을 알았다. 놀랍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며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 ‘여자(잇샤)’라고 불렀다.

19.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이 말씀은 결혼의 의미를 가르쳐 준다. 떠나(아자브)는 버린다는 말이다. 부모를 버린다는 말은 관계를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독립한다는 뜻이다.

아내와 남편은 본래 한 몸이었으니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한 몸인 부부는 부모 자식보다 가까운 관계다. 부부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능가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는 이 말씀을 명심해야 한다. 자녀 부부를 늘 슬하에 있는 아이처럼 여겨서도 안 되고, 새로운 부부도 부모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성경적인 올바른 가정을 이룰 수 없다.

20.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첫 사람들은 완벽하고 순수했다. 완벽이란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들에게는 모자란 것이 없었기에 옷이 필요 없었고, 죄를 짓지 않았기에 부끄럽지도 않았다.

부부는 부모에게서 독립해 서로 사랑으로 연합해야 한다. 서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아내는 남편을 머리처럼 존중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해야 한다.

이렇게 ‘창세기 2장 에덴동산’ 에 대해 살펴보았다. 다음 글에선 불순종과 심판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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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히브리서 4:3)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었느니라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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