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 (2) 인류의 첫 살인과 가인이 받은 벌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 (2) 인류의 첫 살인과 가인이 받은 벌

지난 글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1) 에서는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과 아벨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었고, 어떤 제물을 바쳤는지, 하나님께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은 왜 받지 않으셨는지 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글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2) 에서는 인류의 첫 살인과 가인이 받은 벌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 (2) 인류의 첫 살인과 가인이 받은 벌

  •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 가인이 여호와께 거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 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창세기 4:8~15)

1.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이 말은 무슨 뜻일까. 가인이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아벨에게 뭐라고 했을 수도 있고, 들로 나가자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죄를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자초지종을 아벨에게 이야기하고 사과했을 수도 있다. 죄를 다스리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노력은 해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그후. 가인이 아벨에게 고한 뒤. 둘은 들에 있었고 그때 가인은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인류 첫 번째 살인이 벌어졌다.

가인의 살인은 우발적이었을까 아니면 계획된 것이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추측하건대 들로 데리고 나가서 어떻게 혼내주고 싶은 생각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죽인 것은 계획한 일이 아니었을 수 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가인은 그때까지 사람이 죽는 것을 본 적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을 본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을 텐데 죽일 계획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죽인다는 생각은 없었을지라도 없다면 하는 생각은 했을 수도 있겠다. 이것 역시 개인적인 추측이다.)

아벨을 죽인 것이 의도적이든 아니든, 가인은 사람 그것도 형제를 죽였다. 선하게 창조되었던 세상에 아담과 하와를 통해 죄가 들어왔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 바로 그 다음 대에 살인이라는 죄가 들어왔다.

이 모든 것은 욕심과 시기 질투, 미움에서 나왔고 그 밑에는 교만이 깔려있었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때 사랑의 마음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내 기준으로 볼 때에는 시기 질투 미움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된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음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3.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세기 3장 9절에서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엔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 아담이 어디 있는지 아셨던 것처럼 아벨의 처지를 아시면서도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네가 선악과 먹었지? 네가 아우를 죽였지? 하고 묻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제가 선악과를 먹었어요. 제가 그만 아우를 죽이고 말았어요. 회개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계신 것은 아니었을까.

4.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의 바램을 저벼렸다. 그리고 알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하나님께 적반하장으로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이냐고 묻기까지 했다.

여기서 선악과 먹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다 하나님 탓까지 하던 아담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담은, 그리고 가인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몰랐을까. 아니면 이제는 끝이라는 생각에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 식 절규를 했던 걸까. 어쩌면 자기 방어 욕심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도 못했을뿐더러 회개의 기회도 놓지고 말았다.

5.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님께서는 계속 반항하고 회피하는 가인에게 마지막 질문을 하셨다. 질문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가인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6.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아벨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물을 드렸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고 의인이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11:4)

하지만 하나님 뜻이 아닌 자기 뜻에 따라 행동한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런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한다고 하신다. 무엇을 호소할까. 아마도 자신의 억울한 죽음과 원수 갚음이 아니었을까.

예수 그리스도 역시 죄라고는 일점일획도 없으셨으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의 보혈은 용서를 호소하니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가.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브리서 12:24)

7.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 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아벨이 죽으면서 흘린 피는 땅에 흘러 스며들었다. 하나님께서는 땅이 마치 사람인 것처럼 입을 벌려 아우의 피를 받았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피조물인 하늘이나 땅을 의인화하신 것은 신명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신명기 30:19)

8.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다. 또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게 되었다. 수고해야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밭 가는 수고를 해도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가인이 농부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 타격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9.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으며 평안한 삶을 살기 원한다. 땅에서 저주받고 이리저리 떠돌며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가인이 이런 처지가 되었다.

죄를 지으면 사람들로부터 어딜 가나 손가락질을 당하게 된다. 또 남을 피해도 자기 자신은 피할 수 없다. 늘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

또 남에게 괴로움을 끼친 사람은 자기도 똑같은 일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이것이 가인에게 내려진 선고였다.

10.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벌이 너무 무거워 다 견뎌낼 수 없다고 대답한다.

11.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찌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가인은 무엇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에게는 두 가지 두려움이 있었다. 첫째는 하나님을 다시는 뵙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었고, 둘째는 누군가 자기를 죽일 것 같다는 두려움이었다.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잠언 28:1)

가인이 누군가를 만나고 누군가에게 죽음을 당할까봐 걱정하는 것을 보면 가인과 아벨 형제 외에 이미 다른 형제의 가족들에게서 뻗어 나간 다른 가족들이 많이 번성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홍수 전에 살던 사람들의 수명이 거의 천년에 가까웠던 것을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니다. 아담이 930세, 므두셀라가 969세, 노아가 950세를 살았다. 가장 단명했다는 라멕도 777살을 살았으니 현대인의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12.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걱정하는 가인에게 ‘그렇지 않다’ 하신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되는 무거운 벌을 내리겠다고 선언하신다. 판결하시는 분도 벌을 내릴 수 있는 분도 오직 하나님이시다. 사적인 감정으로 임의로 다른 사람을 벌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더하여 죽임을 면케 하는 표를 주신다. 어떻게 생긴 표인지는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한번 보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그런 표였던 것 같다.

가인의 남은 생은 땅의 저주를 받은 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은 그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신다.

악인이 당장 거꾸러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형제를 죽인 가인에게도 기회를 주고 기다리신다. 회심하기 전 바울은 믿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핍박했던 인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그를 바꾸어 어떻게 쓰실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번 글 창세기 4장 가인과 아벨(2) 에서는 인류의 첫 살인과 가인이 받은 형벌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가인의 자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