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6장 노아의 방주

창세기 6장 노아의 방주

지난 글 창세기 6장 노아의 사적 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노아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나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글 ‘창세기 6장 노아의 방주’ 에서는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하셨던 방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창세기 6장 노아의 방주

  •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 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그 생명을 보존케 하되
  •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14~22)

1.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어떻게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지 그 재료와 규격은 물론 마감재까지 세세히 알려주셨다.

가. 잣나무 – 고페르나무

개역한글과 새번역, 현대인 성경에는 잣나무로 되어 있지만, 개역개정과 KJV 성경에는 모두 고페르(gopher)로 나와 있다. 히브리어 성경 역시 고페르גֹּ֫פֶר 나무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NIV는 cypress로, 현대어 성경이나 새변역 성경은 전나무로 번역했다.

고페르 나무는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를 만들 때 딱 한 번 나오는 나무다. 어떤 학자는 고페르나무가 수종이름이 아니라 가공목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역청(코페르- כפר)과 고페르나무(גפר)의 어원이 같다는 이유에서다. 역청을 칠해(카파르- כפר) 가공한 나무를 고페르라고 부른다는 주장이다. ▶︎ 역청의 기원, 최우성 박사

나. 방주

방주(方舟)는 이름 그대로 네모난 배를 말한다.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밑창이 둥그렇고 앞에 뾰족한 그런 배가 아니라 궤짝처럼 생긴 배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간을 만들어 막으라고 하셨다. 노아 식구들 외에 모든 종류의 동물과 그 먹이까지 실어야 했으니 많은 칸이 필요했을 것이다.

다. 역청

하나님께서는 그 안팎 모두 역청으로 칠하라고 하셨다. 여기서 역청은 방수 용도로 쓰였다. 보통 역청은 정유 과정에서 나오지만, 옛날 조선업자들은 배를 만들 때 나무에서 얻은 수지에 숯을 섞어 만든 역청을 사용했다.

사전을 보면 역청(歷靑)은 바벨론이나 사해 부근 지하 분수지에서 끓어오르는 아스팔토스를 가리키며, 역청의 원어 헤메르도 ‘끓다’라는 뜻의 ‘하르마’에서 나온 말이라고 나와 있다.

역청은 아기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울 때도 사용되었고(출애굽기 2:3), 주로 싯딤 골짜기에 이런 역청 구덩이가 많다(창세기 14:10)고 기록되어 있다.

노아가 어떤 역청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우리 짐작보다 뛰어난 기술로 만든 역청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가인의 후손 두발가인이 동철로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초기 인류의 문명은 생각 이상으로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2. 장이 300규빗, 광이 50규빗, 고가 30규빗이며

방주의 길이는 300규빗, 폭 50규빗, 높이 30규빗이었다. 규빗은 긴 규빗(52.5센티)와 짧은 규빗(44.7센티)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에서 쓰였던 것은 짧은 규빗이었다. 따라서 방주를 미터로 환산하면, 높이는 135미터, 폭이 22.5미터, 높이는 13.5미터 정도 된다.

방주의 바닥 면적은 3,037.5제곱미터로 축구장 면적 665.28(16.5×40.32)제곱미터의 4.6배에 이른다. 축구장 4~5배 넓이의 3층 짜리 건물 정도다.

3.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

방주의 창은 위에서부터 한 규빗 되는 곳에 내라고 하셨다. 지붕에서부터 45센티 되는 곳에 창이 있으니, 9미터 높이에 있는 꼭대기 층에서도 바깥 풍경은 볼 수 없는 구조였다. 이 창은 조망이 아닌 환기의 용도였을 것이다.

사실 방주 밖은 온통 쏟아지고 터져 휘몰아치는 물이었을 테니 볼 것도 없었을 것이고, 봐서 좋을 것도 없었을 것이다. 창을 높은 곳에만 둔 것은 방주의 안전과 배에 타고 있는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방주의 문은 앞이나 뒤, 위나 아래가 아닌 옆으로 내라고 하셨다.

방주는 상 중 하 3층으로 만들어졌다.

4.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창조주 하나님께서 홍수를 일으켜 땅에서 살아 숨쉬는 모든 육체를 멸절하겠다고 하셨다. 창조하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이시다.

5.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는 멸절 선언을 하면서 노아에게는 구원의 약속을 하셨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언약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들, 며느리까지 온 가족을 구원해주셨다. 믿음의 부모들은 노아처럼 가족의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한다.

6.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쌍씩…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모든 생물이 멸종되지 않도록 생명을 보존하는 임무를 맡기셨다. 모든 생물을 암수 한쌍씩 방주에 태우라고 하셨다.

하지만 노아와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에 태울 동물을 찾느라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직접 종류대로 둘씩 선별하여 방주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7.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 기간 동안 필요한 식량을 예비하라고 하셨다. 노아와 식구들의 식량뿐 아니라 동물들의 먹이도 준비해야 했다.

어떤 이는 육식동물들이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거나, 그들을 위한 먹이는 어떻게 마련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한다. 동물 종류대로 한 쌍씩만 태우면 육식동물이 먹어치운 동물은 홍수 후 멸종되는 것이 아닌가 묻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필요 없다. 홍수가 끝나기 전까지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들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 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은 홍수 이후의 일이다(창세기 9:3). 따라서 노아가 방주에 실은 양식은 풀, 채소, 나무 열매 등이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세기 1:29~30)

창세기 6장 노아의 방주
옛날 사람들은 방주를 이렇게 생각했다. Rising in Noah’s ark@wikimedia

8.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방주를 짓고, 동물을 싣고, 식량을 모아 실었다. 그 모든 일을 하나님의 명대로 준행했다. 이것은 노아가 정말 온전하게 순종했음을 보여준다.

순종

그는 방주 제작에 필요한 목재, 방수재, 규격, 방주의 승객과 화물 등 모든 것을 다 말씀 그대로 따랐다. ‘잣나무가 근처에 없는데 호두나무로 하자’ 라든지 ‘창문을 그렇게 꼭대기에 달면 채광도 나쁘고 바깥도 안보일 테니 층마다 달자’ 하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믿음

이런 온전한 순종은 한 점 의혹 없는 믿음에서 나온다. 대홍수 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지면에서 올라온 안개가 땅을 적실 뿐이었다(창세기 2:6). 그런데도 그는 한 방울도 보지 못한 비와 홍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브리서 11:7)

강포와 패괴로 충만한 세상에서 혼자 의롭고 경건하게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을 것이다. 기독교를 탄압하는 나라에서 혼자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간다고 상상하면 짐작할 수 있을까. 홍수 심판을 대비한다며 그 커다란 배를 짓는 동안 노아는 수많은 손가락질과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노아는 낙심하지 않고 순종했다.

경외

믿음과 경외는 함께한다. 경외하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세상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부패했고 강포로 가득 차게 되었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믿고 순종했고 구원받을 수 있었다.

세상은 노아를 어리석다 조롱했지만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언 9:10) 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누가 지혜롭고 명철한가. 세상인가, 노아인가.


이번 ‘창세기 6장 노아의 방주’ 는 창세기 6장을 공부한 마지막 글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창세기 7장 홍수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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