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7장 홍수에 대한 경고

지난 글 창세기 6장 노아의 방주 에서는 노아가 하나님 말씀에 따라 지었던 방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창세기 7장 홍수에 대한 경고’ 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창세기 7장 홍수에 대한 경고

  •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내게로 취하며
  •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 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1.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하나님께서는 노아뿐 아니라 노아의 온 가족을 구원하셨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사도행전 16:31)고 했다. 우리는 노아와 노아 가족들을 통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노아는 의인이었다. 자기 혼자서 믿은 것이 아니었다. 온 가족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가장으로서 하나님 뜻에 따라 사는 모범을 보이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집안으로 만들면 온 식구 하나하나가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된다.

구원은 개인적인 것이다. 집안에 누가 한 명 믿으면 나머지 온 가족이 자동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2.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노아가 살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나. 믿음의 백성들이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과 내키는 대로 관계하고, 생각하는 것마다 악하여 강포와 죄악이 가득한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에서 노아는 의롭고 완전한 자로 살았다. 악한 세상에서 의롭게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의 하루하루는 투쟁이었을 것이다. 믿음으로 사는 노아를 하나님은 의롭다 여겨주셨다.

사람이 완전할 수는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신다. 사는 것도, 믿음을 주시는 것도, 그것을 인정해 주시는 것도 모두 은혜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 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브리서 11:7)

3.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취하며

  • 노아 때 이미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암수 일곱씩이라는 말은 일곱 쌍을, 둘씩은 두 쌍을 가리킨다.
  • 창세기 6장 19절의 한 쌍씩 이끌어 들인다, 20절의 둘씩 나아온다는 말과 모순되지 않는다. 정결한 짐승 7쌍, 부정한 짐승 2쌍이 둘씩 노아 앞으로 나오 올테니, 노아는 그 짐승을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인다는 뜻이다.
  • 정결한 짐승을 7쌍씩 실은 것은 홍수가 끝나고 하나님께 바칠 제물(창세기 8:20)과, 노아 식구들을 위한 양식(창세기 9:3) 용도였다.

4.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

하나님께서는 홍수 심판 후에 생물을 새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짓게 하시고, 동물들을 그 방주로 이끌어 싣게 하셨다. 노아는 모든 육지 동물의 종족을 보존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식물과 수생 동물들은 노아의 방주에 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견딜 수 없는 동물들을 방주에 태우셨고, 타격을 입겠지만 멸종되지 않을 생물들은 태우지 않으셨다.

5. 지금부터 7일이면 내가 40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

7일 뒤부터 40일을 밤낮없이 비가 내릴 것이고, 그 비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일 년 중 가장 비가 많이 오는 때는 장마다. 보통 6월 하순에서 시작해 7월 말이면 끝난다. 약 40일 정도로 비슷하다. 하지만 중간중간 비가 그치고 맑은 날도 있어 빨래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께서는 일주일 뒤, 비를 내리기 시작해 40일 동안 밤낮없이 퍼붓는 비를 내려 쓸어버리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물을 스스로 쓸어버리시겠다니, 말씀만으로도 사라지게 하실 수 있을 텐데 40일이나 비를 내려서 심판하시다니. 세상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실 것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랑의 하나님이라면서 어떻게 심판으로 사람들을 죽이겠어’, 또는 ‘하나님이 어디 있어’하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없는 것으로 취급하고 우롱하며 멸시하는 세상이 아닌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노아가 살던 그 시대 그 세상이다.

창세기 7장 홍수에 대한 경고

6.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그 당시 노아 외에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노아는 하나님깨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다. 방주도 만들었고, 동물들과 필요한 양식도 방주 안에 들여놓았다. 가족들을 데리고 방주 안으로 들어갔다.

준행(準行)이란 명령에 준거하여 그대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노아가 패괴한 세상에서 이렇게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믿음 때문이었다.

믿어야 순종할 수 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나은 믿음의 증거다. 믿음은 어디에서 날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로마서10:17). 듣고 믿고 행하는 자는 구원에 이른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야고보서 2:22).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4, 로마서 1:17)는 말씀은 믿는다는 마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믿는 자에게는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신다. 성령 하나님의 감동으로 우리는 의지를 갖게 되고 그 의지는 기쁘게 행하는 원동력이 된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게 된다.

그 행함의 크기가 사람마다 다 일정할 수는 없다. 토기장이의 비유가 있다. 토기장이가 모든 그릇을 다 같은 용도로 만들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다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로 지으셨다. 어떻게 쓰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모두가 노아나 엘리야처럼 큰 업적을 이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의 동전 두 닢을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더 크게 봐주시는 분이시다(누가복음 21:1~4).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실 때를 묻는 질문에 노아나 롯의 때와 같다고 하셨다. 어떤 시대인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던 시대였다. 소돔이 불과 유황으로 심판받을 때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던 시대였다.

그런 일상생활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거기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는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도무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일상의 욕망에 탐닉하는 것이 문제다. 이 말세지말의 시대에, 세상은 그때와 꼭같은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마저 세상의 격랑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각성하여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원의 방주에 타야 한다. 세상의 성공과 우리의 성공은 기준이 다르다. 우리의 성공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히브리서 6:19~20)


오늘은 ‘창세기 7장 홍수에 대한 경고’ 를 살펴봤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창세기 7장 홍수심판’ 에 대해 공부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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