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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9장 노아의 실수와 노아의 아들들

지난 글에서는 창세기 9장 1절부터 17절까지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노아와 세우신 새로운 언약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창세기 9장 노아의 실수와 노아의 아들들’ 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읽을 말씀은 창세기 9장 18절부터 29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9장 노아의 실수와 노아의 아들들

  •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기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이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 홍수 후에 노아가 350년을 지내었고
  • 향년이 950세에 죽었더라 (창세기 9:18~29)

1.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내와 아들 며느리를 데리고 방주를 탔고, 또 명령에 따라 방주에서 내렸다. 그때 함께 했던 세 아들의 이름은 셈과 함과 야벳이었다.

이곳과 창세기 7장에서는 셈-함-야벳의 순서로 부르지만, 이것은 셈이 장자의 명분을 얻었기 때문에 셈을 맨 앞으로 놓은 것이다. 창세기 10장의 족보에는 야벳-함-셈의 순서로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실제 출생 순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 셈, 함, 야벳

방주에서 내린 그들은 땅에서 생활하면서 각자 자녀들을 낳아 길렀다. 그중 하나의 이름이 가나안이었는데, 그 아버지는 함이었다. 함이 구스, 미스라임, 붓 등 가나안 외에도 아들이 여럿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함은 늘 ‘가나안의 아비’로 묘사된다. 이것은 장차 가나안 땅 사람들이 왜 정복당해 진멸되어야 했는지, 그들의 조상은 누구였는지를 암시하는 것이다.

2.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홍수 이전에는 가인의 후손과 셋의 후손이 번성하며 살았다. 어떤 학자들은 해저에서 발견되는 유적들을 홍수 이전에 있었던 태고 문명의 흔적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얼마나 찬란한 수준의 문명을 이루고 살았든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멸절되었다. 노아가 낳은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이 아라랏산에서 내려 사방 온 땅에 퍼져나가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3.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벌거벗은지라

노아는 아담처럼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그가 재배한 작물 중에는 포도도 있었는데, 노아는 포도로 술을 담가 먹는 것을 좋아했나 보다. 어느 날 대취한 노아는 그만 열이 많이 올랐는지 자기 장막에서 훌훌 옷을 벗고 벌거벗은 채 잠이 들어버렸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인정하시고 구원해주셨을 만큼 훌륭했지만, 역시 그에게도 연약함과 부패성이 있었다. 노아도 술이 취해 실수를 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은 없다.

포도주는 약으로도 쓰이고(디모데전서 5:23) 혼인 잔치같은 경사에도 사용되는 음료(요한복음 2:1~11)다. 오늘날 성만찬에도 사용된다. 하지만 솔로몬도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잠언 23:31)가르쳤고, 술취하는 것은 방탕한 것이니 해선 안 된다고(디모데전서 3:2,8) 했다.

포도주뿐 아니라 모든 술은 인간을 실수하게 만든다. 연일 끊이지 않고 등장하는 주취 뉴스를 보면 그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술취하지 않는 방법은 절주와 금주뿐이다.

창세기 9장 노아의 실수와 노아의 아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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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나인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두 형제에게 고하매

이때는 함의 아들 가나안이 이미 태어난 뒤인지 함을 가나안의 아비 함이라고 기록되었다. 함이 무슨 볼일인지 아버지 장막으로 들어갔다가 아버지의 하체를 보게 되었다. 하체는 히브리어로 ‘에르와’인데, 이것은 벌거벗음, 또는 음부(陰部)를 가리킨다.

그러고는 옷가지나 이불로 아버지를 덮어드리는 대신 나가서 형제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허물을 덮어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잠언 17:9)라고 했다. 아버지가 아니라도 남의 허물은 감춰줘야 하건만, 아버지의 실수를 떠들고 다니는 것은 공경심도 없고 경솔한 짓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다.

5.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그 말을 들은 나머지 형제 셈과 야벳은 옷을 들고 어깨에 맨 채 뒷걸음질로 아버지 장막에 들어갔다. 행여 벗은 아버지를 볼까 조심조심 갖고 들어간 옷으로 아버지를 가려드리고 나왔다.

같은 형제라도 성품이 다른 경우가 많다. 노아의 자식들도 그랬던 것 같다. 함은 자식을 낳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덮어드릴 줄도 모르고 좋은 일이라도 난 듯 형제들에게 가서 떠들었다. 하지만 첫째와 막내는 합세하여 떠들지 않고 말없이 들어가 아버지께 옷을 덮어드렸다.

행동도 문제지만, 단순히 그 행동보다 행동에 가려진 밑 마음부터 문제다. 아버지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 존경하고 어려워하는 마음보다는 희롱 거리로 여겼다는 것이 문제다.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이 언행으로 드러난다.

마음이 패려한 자는 자기 행위로 보응이 만족하겠고, 선한 사람도 자기의 행위로 그러하리라 (잠언 14:14)

마음이 패려한 자는 여호와의 미움을 받아도, 행위가 온전한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언 11:20)

패려(悖戾)란 성질이나 언행이 도리에 어그러지고 사납다는 뜻이다. 마음이 패려한 자든 선한 사람이든 그것은 행위로 드러나 그대로 보응 받기 마련이다.

6.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누가 노아에게 말했는지, 노아는 술이 깨고 나서 작은아들 함이 자기에게 한 일을 알게 되었다.

함에게 내린 저주

노아는 ‘가나안이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 원한다’ 고 했다. 또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다.

노아는 잘못을 한 함이 아닌 가나안이 저주받기 원한다고 했다. 자식에 대한 저주는 함 본인에 대한 저주보다 더 무서운 저주다. 하지만 실제로 가나안 족속들은 우상숭배와 음란함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레위기 18장을 보면 가나안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여 벌을 받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성경에는 가나안 사람들 때문에 그 땅도 더러워져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셨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통하여 냈다(레위기 18:25)고 기록되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노아가 막내아들의 적절하지 않은 대응에 앙심을 품고 한 저주라기 보다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앞을 보고 한 일종의 예언으로 여겨진다.

축복받은 셈과 야벳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았다.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만복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 아닌가. 셈족을 통해 하나님의 복이 이어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셈족을 통해 이 세상에 구주로 오셨다.

노아는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라고 축복했다. 야벳의 후손들은 북쪽으로 이동하여 유럽과 아시아로 뻗어나 번창했다. 경건한 셋의 자손으로부터 전해진 하나님을 믿게 되었으니, 셈의 장막에 거하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이것은 노아의 축복이라기 보다는 예언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셈, 함, 야벳을 각각 아시아인, 아프리카 흑인, 유럽 백인으로 낙인찍듯 규정하는 것은 바른 해석이 아니다.

이것은 인종차별적일 뿐 아니라 무식한 생각이다. 지금의 이란이나 터키, 역사 시간에 배웠던 돌궐, 흉노족 역시 야벳의 후손이며 우리의 조상 역시 야벳일 가능성이 높다. 함족은 남방계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지만, 일부의 주장처럼 현재 중국인의 조상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다.

7. 홍수 후에 노아가 350년을 지내었고 향년이 950세에 죽었더라

홍수는 노아가 600살이 되었을 때 일어났다. 그 뒤로 노아는 350년을 더 살고 950살에 죽었다. 그는 거의 1천 년 가까이 살았는데,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의 생애와는 128년이 겹친다.

아담과 홍수 이후 세대는 단 두 세대 차이가 날뿐인 데다 128년이나 같은 시대를 살았다. 창조부터 노아 홍수까지의 이야기는 먼 조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할아버지의 이야기로 생생하게 전해졌을 것이다.


인류는 모두 아담과 노아의 자손이다. 우리의 조상은 모두 같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같은 뿌리를 가졌다. 사랑과 긍휼로 바라봐야 한다.

또 술 취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허물은 사랑으로 감싸주고,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창세기 9 장 노아의 실수와 노아의 아들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창세기 10장을 읽고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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