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역사를 만나다 –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

철학, 역사를 만나다 – 세계사에서 포착한 철학의 명장면

여유시간이 생기니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슬렁슬렁 들춰보게 된다. 새로 책을 시작하기 보다는 아무래도 다시 들여다 보는 쪽이 좀더 느긋한 휴식에 가깝다. 그런 마음으로 돌아본 책은 바로 ‘철학, 역사를 만나다’ 이다.

프로 철학자의 등장은 최근에야

인류 역사 전체로 볼 때, 직업 철학자의 등장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 일이다. 공자나 맹자 같은 이들은 ‘정치 컨설턴트’에 더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부님이었고 흄은 정치가였으며, 존 스튜어트 밀은 동인도회사에서 평생을 보낸 월급쟁이였다. 심지어 카를 마르크스 조차도 젊은 시절에는 신문사 편집장으로 활동했던 사람이다. 당대를 주름잡은 철학은 그 시대의 고민을 오롯이 안고 있다.

이용할 수 없는 철학은 그저 개인의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철학 자체가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다들 밥벌이는 따로 해야하는 처지였나보다.

철학의 시작 –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

역사와 철학이 만나는 그 시작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배경이 되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역시 그들과 떼어낼 수 없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아테네는 해상무역과 상업으로 일어난 민주주의 국가였다. 강력한 해군을 바탕으로 시장개척을 위해 식민지를 넓혀나간 제국주의의 원조기도 했다.

한편 스파르타는 농업을 기반으로한 귀족중심 국가였다. 또한 육군이 강했고 폐쇄적 경향을 지닌 나라였다. 그리스에는 헤일로타이heilotai라는 노예계층이 있었다. 주로 스파르타 점령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었는데, 자기 농사를 지어 주인인 스파르타인에게 50%를 바쳤다. 스파르타는 이들 노예수가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틈만 보이면 반역을 꾀하는 이들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 해마다 전쟁을 선포하고 죽이고 괴롭히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물론 아테네라고 노예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민인 시민들에게는 노예와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했는데, 이로써 시민들은 ‘생계를 위한 천한 일’ 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어야 했던 이면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립이 있었다. 아테네의 천민민주주의를 혐오하고 스파르타를 찬양하자 적국에 매료되어 아테네의 젊은이를 사상적으로 오염시키는 사회불순세력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말한 이상국가 역시 스파르타와 비슷했다. 국가는 생산자인 농민과 수호자인 군인, 통치자인 철인왕의 세 계급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각각 절제와 용기, 지혜의 미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은 현재진행형

질서와 절제는 일견 아름다워보인다. 하지만 무엇을 위한 질서와 절제인지는 늘 생각해야할 문제다. 버트란드 러셀은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이긴 것은 나치 독일이 미국을 이긴 것과 같다.” 고 했다. 스파르타와 나치의 번영은 타민족을 착취함으로써 이뤄진 것이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 모습은 민주주의가 극단의 이기심으로 흐르지 않게 하려는 백신일 수 있다. 하지만 치료제가 식사가 될 수는 없다. 왜 민주주의가 그토록 오랜 세월 비판받으면서도 여전히 최선의 제도로 남아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pp.26~27)

노동과 착취는 지금까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떨까. 4차 산업혁명이나 AI가 일상으로 자리잡게되는 그런 날이 온다면 또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고, 그럼 또 그에 맞는 철학이 요구될것이다. 우리는 준비 되어 있는가.

문득 H.G. 웰즈의 ‘타임 머신’ 이 생각난다. 착취당했던 노동자들은 지하세계에 머물면서 지상의 인간을 사육한다. 한 권의 철학 책에서 출발해 너무 픽션으로 나가는 것 같지만,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이 AI와 그것으로 연결된 로봇-기계집단(무지의 한계가 느껴진다)으로 대치되는 일은 망상으로 끝나길 바란다.

한호림,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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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