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고 힘드니? 힘든 우리를 위한 성경 구절 - 이사야 40장 27~31절

피곤하고 힘드니? 힘든 우리를 위한 성경 구절 – 이사야 40장 27~31절

피곤하고 힘드니? 힘든 우리를 위한 성경 구절 - 이사야 40장 27~31절

피곤하고 힘드니? 힘든 우리를 위한 성경 구절 – 이사야 40장 27~31절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이사야 40:27~31)

피곤(疲困), 곤비(困憊) 모두 비슷한 말이다. 피곤은 잘 알다시피 몸과 마음이 지쳐서 힘들다는 뜻이고, 곤비하다는 말은 아무것도 할 기력이 없을 만큼 지쳐 몹시 고단하다는 뜻이다. 이짧은 구절에 일곱 번이나 되풀이 되어 나올 만큼 이 구절은 힘든 우리들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시기를 넘긴 두 과부의 이야기에서 말했다시피, 하나님께서는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우리 하나하나의 사정을 모두 다 알고 계신다. 그리고 그에 맞는 힘과 능력을 주신다. 이렇게 힘들고 피곤한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켜 세우시는 구절이 바로 이사야 40장 17~31절이다. 하나님께선 그럴 때 어떤 방식으로 일하실까.

1. 도와주는 방식을 넘어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도와주는 것은 모르는 사람에게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유는 특별한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부모자식이나 부부 사이를 예로 들 수 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바로 그런 특별한 관계다.

2. 연합된 관계

하나님께서는 내 힘들고 비루한 처지를 남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당신 것으로 여기시고 아파하신다. 그리고 앙망(仰望)1하기만 하면 새 힘을 주셔 피곤하거나 곤비치 않게 하신다. 어떻게 하나님과 내가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을까?

가. 아버지와 자식 사이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누가복음 15:31)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구절이다. 탕자 생활을 하다 돌아온 동생을 맞이하는 아버지를 보고 불퉁거리는 맏이에게 아버지가 하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들어 세리나 창기 같은 죄인들(탕자 동생)을 대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맏형)을 꾸짖으셨다. 자기 것을 옆에 두고도 자기 것인지 모르면 누릴 수 없다. 여기서 정말 어리석고 힘든 사람은 누굴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의 것이 다 네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되고, 예수님의 권세가 내 권세가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귀가 우리를 공격할 때 지체할 필요 없이 대적하여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야고보서 4:7)

 

나. 성령으로 연합된 관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이름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아버지와 아들은 언약으로 연합된 관계다. 또한 우리는 성령으로 연합된 관계다. 하나님과 내가 ‘우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풍성함이 곧 나의 풍성함이 되고, 하나님의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아니함을 따라 나 역시 곤비치 않고 피곤치 않게 된다.

3. 정체성의 변화

하나님과의 관계가 공유가 가능한 관계로 바뀜에 따라 우리의 정체성도 변했다. 나 혼자 사는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님과 연합하여 2인1조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령님과 연합된 나, 그것이 나의 정체성이다.

이와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11)

성령 하나님과의 연합한 변화된 정체성이 영적 침체와 피곤을 이기는 핵심이다.

앙망하면 살아난다. 이미 내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야고보서 4:8)


이 글은 2018. 8. 20.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도와줌과 공유함의 차이‘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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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앙망(仰望)-우러러 바라다, 바라보다. =앙시(仰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