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림,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한호림,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한호림,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한호림,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현대 문명에 남아있는 옛 신화의 흔적을 찾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로 유명한 한호림의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라는 책이었다.

거의 5주동안 읽었다. 재미있는 내용이었지만 작은 판형에 가득한 자료와 빽빽한 글씨로 오래 읽기 힘들었다. 30년 걸려 모았다는 2천점의 자료를 잘 살리려면 보다 큰 판형에 담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중고생 문제집 크기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1.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신을 만들어냈다 – 전문분야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인간일지라도 늘 의지할 대상은 필요하다. 절대자를 떠났기에 그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신들을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냈다.

인간이 자기 필요에 맞춰 만들어낸 신이니 다 전문으로 담당하는 분야가 따로 있다. 전쟁, 의술, 재물, 애욕, 지혜, 사냥, 대장장이, 농사… 때론 겸직을 하기도 한다. 마치 종합병원이나 백화점 같다.

 

2. 힘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신들

사람들이 자기의 필요, 욕망을 반영해 만들어낸 만큼 신들 역시 자기 욕구에 충실하다. 힘이나 능력은 인간보다 센 듯하지만 그 외에는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 논리도 없고 윤리나 도덕관념도 희박하다. 오로지 싸워 이긴 자가 살아남는 힘의 법칙만이 존재한다.

한호림,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기간토마키아, 바티칸 뮤지엄

 

가이아는 아버지 카오스와 결혼해서 우라노스를 낳고, 다시 우라노스와 결혼해 크로노스를 낳는다.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권력을 잡고 형제 거인족 기간테스를 지하에 가둔다. 하지만 크로노스 역시 막내아들 제우스에게 져서 지하세계로 감금당한다. 가이아는 크로노스의 원수를 갚기위해 타르타로스와 관계해 티폰을 낳는다. 티폰으로인해 제우스는 어려움을 겪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 싸워 이기고 올림푸스의 제왕이 된다. 싸우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생리가 신화에도 반영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정권이 안정되자 제우스는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정사(政事) 보다 정사(情事)에 힘쓰기 시작’했단다. 여신급으로는 누나 데메테르와 헤라, 님프로는 아르테미스의 시녀, 인간으로는 에우로페, 레다, 알크메네… 꾀거나 강제로 또는 둔갑술로 속이는등 갖가지 방법으로 손에 넣는다. 심지어는 여자만으로는 모자랐는지 트로이의 미소년 왕자 가니메데를 데려다 술시중에 동성애까지 시킨다. 이 역시 인간사의 반영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었지만, 인간은 자기의 형상대로 또 다른 신들을 양산해냈다.

 

3. 세상 인간사의 배후에는 영적인 세력이 존재한다

이 책을 읽으며 놀랐던 것 중 하나가 무심코 지나쳤던 인간사의 배후에 영적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고 나와있다. 하지만 성경 외에 다른 책에서 그 ‘영적 세력에 속하는 존재’들이 스스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제법 충격이었다.

가장 임팩트있게 다가왔던 장면은 트로이 전쟁이었다. 누가 가장 이쁜가 하는 시시한 신들의 장난은 결국 많은 목숨이 학살되는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손에 자기도 모르게 놀아나 계속해서 죽고 죽이는 일을 되풀이한다.

 

4. 생활속에 아직도 살아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라면 어린 시절부터 즐겨 읽던 ‘옛날 이야기’ 라고 생각했다. 옛날 이야기는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다.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바로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도 살아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무엇인가.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 이다. 지금 현재도 살아 숨쉬고 있는 흔적들을 찾아 모은 책이다. 사진으로 찍고 글로 옮겨놓은 증거가 2천여점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 광고, 예술, 생활속 각종 상징으로

많은 예술가들이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광고나 기업 심볼 역시 영향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굿이어 타이어나 네이버에서는 헤르메스, 나이키에서는 니케를 볼 수 있다. 학교 도서관이나 서점의 로고로 자주 쓰인다는 올빼미(부엉이)는 아테나의 새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의료기관의 상징(뱀이 감긴 장대) 역시 아스클레피우스, 또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우스. 뱀이 감긴 지팡이를 갖고 다닌다.

뿐만 아니다. 이지스(아테나의 방패)함, 아폴로 우주선등 각종 무기나 우주와 관련된 이름 역시 벗어나기 어렵다.

나. 언어 – 각종 단어의 뿌리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의 저자답게 수많은 영어 단어의 어원을 추적해 놓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구 언어의 뿌리가 되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소를 타고 바다를 건넌 에우로페(Europa)의 이름은 그 이름 그대로 유럽이 되었다. 프시케Psyche의 이름은 심리학Psychology, 정신병Psychosis 등으로 남아있다. 헤라클레스가 처리한 바다괴물 히드라Hydra는 물을 의미하는 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소화전hydrant, 수소hydrogen, 수소폭탄hydrogen bomb, 수력전기hydro electricity, 공수병hydrophobia…

언어는 생각을 지배한다. 인간은 언어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으면 생각도 할 수 없다. 언어가 바뀌면 행동이나 태도도 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고방식이나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그리스 로마 신화는 그저 죽은 것 같으나 실은 언어 속에 살아남아 지금도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다. 섬김-주술의 대상으로

언어나 예술, 각종 상징으로 뿐만 아니라 오늘날 까지 섬김, 혹은 주술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책을 읽는 동안 설마… 하며 의심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지만, 실제로 사진까지 실려있으니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뉴욕 버팔로에는 리버티 빌딩 Liberty Building이 있다. 전에 리버티 은행의 본점이었다. 이 건물의 동-서 양 끝 두군데에 각각 태양신 헬리오스 상이 하나씩 세워져있다. 마야 피라밋 제단을 모방한 일곱 계단으로된 좌대위에 서있는데, 언뜻 보면 자유의 여신상 축소판으로 보이는 이것은 헬리오스라는 남신으로 태양숭배의 징표라고 한다.

사실 뉴욕 허드슨강 리버티 섬에 우뚝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도 실은 ‘여신’이 아니다. 여신(自由の女神 지유노메가미조)이라고 일본에서 붙인 이름을 그대로 빌어 쓰고있는 것이라고 한다. 공식 명칭은 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로, ‘세계를 비추는 자유’ 정도 되겠다.

로도스섬의 거상(상상도)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로도스 섬의 헬리오스 거상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기단만 15미터, 청동으로 만든 헬리오스는 30미터 도합 45미터로 12층 빌딩만한 이 거상은 뉴욕 자유의 여신상의 절반에 가깝다. 정확한 생김새는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모습으로 녹아들어 유럽 성당에 까지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이 자유의 여신상(실은 헬리오스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라. 로마제국 – 미국 – 우리나라에 까지 남은 흔적들

로마는 태양신 숭배국가였다. 로마제국이 313년 기독교를 공인하고 391년에는 국교화 했지만, 그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로마의 위정자들은 여전히 태양신을 숭배했고, 로마황제는 태양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다고 한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다음에도 로마제국의 상징은 그 영광을 바라고 구하는 자들에게로 이어졌다.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러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 히틀러의 제3제국… 수 없이 많은 나라들이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았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국조는 흰머리 독수리다. 국장, 우편국 심볼, 지폐, 동전, 지하철 표지판 등등에 모두 독수리가 등장한다.

미국 국장의 앞면

 

로마제국의 태양신 숭배 흔적이 21세기 대한민국에 남아있다고 하면 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해방후 미 군정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찰의 상징은 흰머리독수리였다가 천연기념물 참수리로 바뀌었다. 소방서의 상징은 아직도 흰머리독수리다.

경찰 휘장
소방서 상징

 


흥미진진한 책이다. 재미있다. 하지만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해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그 근원을 파고들기에 그런 방면으로 흥미가 없다면 끝까지 읽기는 쉽지 않다.

또 다른 이유는 앞서 말했다시피 책 크기가 너무 작다. 본문 외에도 사진과 사진설명, 보조자료가 풍부하다. 그 모든 것을 담기에는 무리다. 개정판이 나온다면 피아노 악보정도는 못되더라도 아이들 문제집 크기는 되었으면 좋겠다. 좀 더 손을 댈 수 있다면 먼나라 이웃나라처럼 여러권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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