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원한 제사 – 레위기 & 히브리서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로 속죄 제물을 삼고 수양으로 번제물을 삼고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고의를 살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찌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 제물을 위하여 수염소 둘과 번제물을 위하여 수양 하나를 취할찌니라.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권속을 위하여 속죄하고”(레위기 16:1~6)

대속죄일

대속죄일(욤 키푸르)이 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1년에 한 번 백성들의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린다. 이 제사에서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대표한다. 그런데 사실 대제사장 본인부터 죄인이기에 하나님 앞에 나설 자격이 없다. 그래서 대제사장부터 깨끗하게 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고, 그를 위한 규례가 바로 레위기 16장 1절부터 6절의 내용이다.

레위기 16장은 사실 레위기 전체의 핵심중의 핵심이다. 이것이 빠지면 레위기의 나머지 내용은 아무 의미가 없다. 레위기는 하나님께 죄를 씻어내는 방식인 제사를 다룬다. 다섯 가지 제사, 제사장과 그에 대한 규례, 이스라엘의 부정함과 정함이 나온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정점, ‘하나의 제사’를 향해 나아간다. 매일 드리는 제사도 그것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제사’가 있어야 의미가 주어진다. 흔히 ‘한 큐’라는 말을 쓰는데, 여기에도 해당한다. 그것은 ‘대속죄일’을 가리킨다.

대속죄일은 일 년에 딱 한 번(7월 10일) 있다. 이 제사를 드려야 이스라엘이 죽지 않고 살아난다. 생명이 걸린 제사다. 이 제사를 대제사장이 드리기 위해 자격 없는 몸이 자격을 얻기 위해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레위기 전체 내용은 이 16장에 매달려있다. 레위기 1~16장은 제사와 제사장에 관한 규례다. 1~7장은 다섯 가지 제사에 대한 규례다. 8~10장은 제사장에 관한 규례다. 11~15장은 음식에 대한 규례다. 이스라엘 안에 있는 부정적인 요소를 뽑아내기 위한 규례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른 것이 16장이다. 이것으로 모든 것이 온전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준비일 뿐 궁극적인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사회와 생활 속에 있는 부정적인 죄의 모습이 나온다. 18장에 나오는 사회적인 정결함, 생활 속의 정화 역시 여기에 달려있다. 사실 레위기뿐 아니라 성경 전체가 레위기 16장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영원한 제사 - 레위기 & 히브리서

한 영원한 제사

그런데 이 대속죄일 조차 역시 상징이고 예표다. 이 레위기 16장을 잘 설명한 것이 바로 히브리서다.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11~14)

‘한 영원한 제사’라고 했다. 단 한 번 드림으로 끝나는 영원한 제사다.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영원히 영원히 하나님 앞에 열납 되는 제사다. 이것이 바로 대속죄일에 드리는 제사(모형)의 실체다.

그 단적인 증거가 있다. 바로 11절의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든지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라는 말씀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브리서 7:27)

대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지고 가지만, 사실 자기 죄도 스스로 감당 안되는 존재다. 제사장 역시 죄인이기에 그렇다. 이것이 바로 레위기 16장 1~6절의 말씀 내용이 아닌가. 자기 자신도 죄인이기에 죄인이 입는 세마포 속옷과 고의를 입고 띠를 띄고 관을 쓴다.

‘아론의 두 아들이 여호와 앞에 나아가다가 죽은 후’ 라고 나온다.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위기 10:1~2)

아론과 아들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성소 분향단에 향을 피워야 했다. 이때는 반드시 번제단 불만 사용해야 했고, 그 불을 나르기 위해 마련한 불 옮기는 그릇을 사용해야했다. 하지만 그들은 술에 취해 분별 없이 각기 향로를 가져다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해버렸다.

이 일이 있고나서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주신 규례다. 백성들의 죄를 위해 제사장이 나아갔는데 제사장이 죽어버렸다. 백성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자신의 죄를 먼저 고백하고 해결하라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대제사장은 장차 오실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에 불과했다. 또 대속죄일의 제사는 십자가 위에서 드린 제사의 그림자, 모형에 불과했다.

둘째 사망을 해결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인류의 모든 생명은 한 영원한 제사에 달려있다는 것이 성경이 전하는 메시지다. 그 한번에 드리는 제사는 열납되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우편으로 들어가셨고, 이제 다시는 이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게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둘째 사망을 해결하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 이 영원한 제사를 붙들기만 하면 인간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난다. 다시는 죽음이 없다.

우리가 육신으로 당하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다. 고난의 마지막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신에 불과하다. 둘째 사망은 없어져버렸다.

우리의 모든 것, 우리 인생, 인류의 희망, 인간의 역사, 우주의 전부가 ‘한 영원한 제사’에 달려있다.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대제사장으로 찾아와 자신의 생명을 드려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킨 이 제사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자랑하지 않겠다. 이것 외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겠다. 내 인생은 그리스도께서 드린 한번의 제사, 여기서 출발하고 여기서 끝났다. 다시는 하나님 앞에 죄를 위해 제사드릴 것이 없다. 이것이 우리가 드리는 믿음의 고백, 믿음의 예배가 되어야 하겠다.


이 글은 2019.4.19. 새벽기도를 듣고 나름대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음성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링크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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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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