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어떤 한 주제를 잡아 역사적, 지리적으로 고찰하는 책은 흥미진진하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이 책은 역시 실망스럽지 않은 재미있는 책이었다. 더불어 맛있는 세계사전쟁사에서 건진 별미들도 추천한다.

약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평균수명은 옛날보다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쓰레기 약’이 대부분이었다.

기원전 3, 4천년경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는 소똥, 말똥, 썩은 고기, 불에 태운 양털, 돼지 귀지 등이 약으로 기록되어 있다. 11세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는 가마솥에 뱀, 도마뱀 눈알, 상어 위장을 넣고 만드는 미약이 나온다. 17세기에 들어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보일 은 벌레나 말똥, 인분을 약으로 소개했고, 18세기 런던 약전에는 사형수의 두개골이 의약품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19세기에 들어서야 의약품이 비로소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평균수명을 연장하는 데 기여하기 시작했다. 세균학과 통계학, 화학이 함께 발달한 영향도 있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어떤 것 하나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운때’라는 것이 중요한가 보다.

이 책은 그런 약 가운데 10가지를 뽑아 소개하고 있다. 비타민 C, 퀴닌, 모르핀, 마취제, 소독약, 살바르산, 설파제, 아스피린 그리고 AIDS 치료제다.

1. 비타민 C

대항해시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괴혈병이었다. 왜 그 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이킹(9세기)이나 십자군 전쟁(13세기)의 기록도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대체로 항해 거리가 짧아 그다지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항해 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맹위를 떨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바스코다가마의 희망봉 항해의 경우, 160명 선원 가운데 100명 이상이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또 18세기 영국해군이 4년간 항해했을 때, 전사자는 4명이었던데 비해 괴혈병 사망자는 1,000명 이상이었다고 하니 얼마나 무서운 병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비타민 C는 콜라겐 합성에 필요하다. 콜라겐 결합이 느슨해지면 혈관과 각종 조직이 약해져 치아 손실과 출혈, 시름시름 앓다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괴혈병이다. 비타민 C를 먹음으로써 괴혈병을 예방하고 활성산소와 유해물질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비타민 C를 선원들에게 먹인 것이 영국이 아니라 스페인이었다면, 세계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2. 퀴닌

말라리아는 아노펠레스 모기의 침에 들어 있는 말라리아 원충 때문에 생긴다. 이 원충은 간세포에서 증식되어 적혈구를 파괴한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40도의 고열에 시달리다 황달로 사망하게 된다. 발병자 3~5억 명 가운데 100만 명 이 사망하는 이 병은 에이즈, 결핵과 함께 세계 3대 감염병 중 하나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은 페루 고지대 키나나무 껍질에서 얻어진다. 17세기 중반 카톨릭 선교사들이 유럽으로 들여왔고, ‘예수회의 가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청나라 강희제는 재위 기간이 61년이나 된다. 그런 그가 40세 때 말라리아에 걸렸다. 예수회 선교사가 제공한 퀴닌으로 완치가 되었고, 그 보답으로 예수회에 성당 건립을 허가했다.

3. 모르핀

역사상 최강의 진통제라 할 수 있는 모르핀은 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의약품 중 하나다. 5천 년 이상 된 스위스 신석기 시대 유적에도 양귀비 재배 흔적이 남아있고,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는 아편 채취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모든 양귀비에서 모르핀을 채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Opium Poppy라고 불리는 Papaver Somniferum이라는 종류의 덜 여문 씨방에서만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개양귀비에서는 얻을 수 없다.

약으로 등장한 것은 17세기 후반 영국에서였다. 적포도주에 적정량의 아편을 섞어 만든 ‘아편팅크(opium tincture)’는 감기, 콜레라, 생리불순, 원인불명의 통증 등 만병통치약처럼 쓰였다. 이는 18~19세기 아편중독자가 급증하는 원인이 되었다.

모르핀이 행복감을 주다 중독을 일으키는 원인은 뭘까? 모르핀과 엔돌핀 endorphin의 앞머리가 비슷한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뇌의 엔돌핀 수용체1가 가짜 열쇠인 모르핀과 결합해 버리면 엔돌핀과 같은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몸은 엔돌핀은 충분하다고 여겨 생산을 중단해버린다. 이때 모르핀을 투여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일어나게 된다.

중국에서 들여온 차에 맛을 들인 영국은 신대륙에서 약탈한 은이 중국에 다 넘어가게 되자 인도-영국-중국의 삼각무역을 실시했다. 인도에서 재배한 목화로 면직물을 만들어 인도에 팔고, 중국의 차, 도자기, 비단 대금은 인도 아편으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영국 국고에는 다시 은이 쌓이기 시작했고 중국에는 아편 중독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생긴 일어난 것이 아편전쟁이고, 아편전쟁에서 진 중국은 영국에 막대한 배상금과 홍콩을 건네야만 했다.

비타민 C를 항해에 도입하지 않았다면 영국은 해상강국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인도는 영국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을, 홍콩은 민주주의를 경험해 보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날의 홍콩과는 또 다른 모습일 수 있을 것이다.

4. 마취제

고대에도 고도의 수술을 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외상, 골절, 농양, 결석 제거수술을 했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탈장, 치질, 성형수술을 했었고 심지어 백내장 수술까지 했었다니 정말 놀랍다.

그런데 과연 그때 마취제가 있었을까? 증거는 없지만 내 생각에는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근세 서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19세기까지 수술실은 높은 탑 꼭대기나 지하실에 있었는데, 그것은 고통으로 인한 비명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846년, 윌리엄 모튼은 에테르를 사용한 수술에 성공했고 1853년에는 클로로폼으로 빅토리아 여왕이 무통분만을 했다. 프로포폴은 정맥주사로 그 효과가 탁월하지만 여러 연예인들을 스캔들에 몰아넣기도 했다. 2009년 마이클 잭슨은 프로포폴 과용으로 사망했다.

마취의 수수께끼는 아직도 풀지 못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5. 소독약

소독약은 병원을 위생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소독약을 사용하기 전까지 병원은 그리 위생적인 곳이 아니었다. 그렇게 된 계기는 ‘산욕열 産褥熱’이 제공했다. 분만 종료 24시간 이후~10 이내 2일 이상 38도의 열이 지속되는 경우를 말하는데, 태반 박리, 출산 시 상처에 세균이 침입하여 일어난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도 산욕열로 죽었다. 석가모니가 왕자 시절부터 생로병사의 문제로 고민했던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작용했다고 하니, 질병과 의약품은 종교와 철학에도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빈 종합병원에서 일하던 제멜바이스는 산파들이 아이를 받던 조에서는 산욕열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반면, 의사들이 일하던 조에서는 발병률이 높았던 것에 주목했다. 당시 의사들은 검시, 해부까지 맡아야 했는데 끔찍하게도 손을 씻고 기구를 소독한다는 위생관념은 없었다. 제멜바이스를 따르는 쪽과 반대쪽은 서로 나뉘어 싸웠고, 제멜바이스는 학계로부터 퇴출되고 정신질환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2.

반면 영국 외과 의사 조셉 리스터는 페놀 소독을 적용한 골절 수술에 성공하고 승승장구했다. 왕립협회 회장을 지냈고, 남작 작위를 받은 최초의 의사가 되어 감염증을 추방한 영웅으로 한평생을 지냈다.

둘을 가른 것은 그 사이에 파스퇴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한꺼번에 변하기 어렵다.

6. 살바르산(Salvarsan)

매독은 15세기경 남아메리카로부터 전파되었다. 매독 梅毒이란 이름은 이병의 부스럼이 소귀나무 열매인 양매를 닮았기에 양매창(楊梅瘡)이라고 불리던 데에서 비롯되었다. 샤를 8세가 나폴리를 포위했을 때 크게 유행해, ‘나폴리 병’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아마 이탈리아에 반감을 갖고 있던 프랑스 사람들이 붙인 것이겠지?

한때 파리 시민 1/3이 매독 환자였을 만큼 맹위를 떨쳤다고 한다. 이렇게 창궐한 매독은 유럽에 가발을 유행시켰을 뿐 아니라 그 반작용으로 청교도 혁명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타락이 극에 달하면 자정작용이 일어나는가 보다.

매독은 그 전파가 얼마나 빨랐던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의 항해로 인도에 상륙한 매독은 말레이 반도를 거쳐 1500년 광동성으로, 1510년에는 베이징, 1512년에는 오사카에 입성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 기록은 1614년 광해군 때 지봉유설에 나온다.

독일 의학자 Paul Enrich는 ‘세균하고만 결합하는 염료가 있다면 세균만 파괴하는 화합물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 실험을 계속했다. 606번째 화합물 실험에서 성공을 거두고 구세주 Salvador에서 이름을 따 Salvarsan이라고 이름했다. 이광수의 소설 ‘사랑’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던 것이 생각났다.

… 순옥이가 나간 뒤에 허영은 제가 지금까지 육체관계를 맺은 여성을 하나 둘, 누구누구 하고 세어보았다. 그리고 아현동에서 매독을 올려서 육공육호 다섯 대를 맞은 일을 생각하고 슬그머니 겁이 났다.

7. 설파제(Sulfa Drugs)

1차 세계대전 무렵부터 무기가 발달하면서 전투양상도 달라지게 되었다. 근접전에서 농성전 양상으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참호였다. 습기 차고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참호라인은 갖가지 병원균, 특히 혐기성 세균의 온상이 되었다. 파상풍과 가스괴저가 특히 문제가 되었다.

가스 괴저(gas gangrene)는 상처 아래로 괴저균이 들어가 번식하면서 발생된 가스가 고여 근육을 괴사시키는 병이다. 수술과 항생제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절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파상풍은 흙에 있다 상처로 들어간 파상풍균이 생산한 독소가 근육이 아니라 신경을 손상시킨다. 비위생적인 수술이나 대수롭지 않은 상처로도 감염될 수 있다. 어렸을 때 녹슨 못에 다쳤을 때 파상풍을 걱정하시고 처치해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설파제는 30대 초반 젊은 연구원이었던 게르하르트 도마크 Gerhard Domagk가 개발한 약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위생병이었는데, 전장에서 고통스러워하던 전우를 위하는 마음으로 연구개발했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처음 본 설파제는 상처에 뿌리는 하얀 가루약이었다. 무슨 일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피가 흘러 잘 보이지 않던 상처에 뿌려주셨다. 약봉지에는 설파제라고 쓰여있었다. 그걸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장난치다 다쳐서 피가 날 때면 몰래 약통을 뒤져서 솔솔 뿌리곤 했다. 그래서 설파가 sulfanilamid의 설파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당연히 한자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끝에 붙어 ‘제’ 때문이 아니었을까? 눈처럼 희니까 雪, 씨 뿌리듯 뿌리니까 播, 약이니까 劑.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사실 앞에 나온 살바르산의 ‘산’도 酸인 줄 알았다. (혼자 멋대로 짐작하지 말자!)

8. 페니실린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6
페니실린, 스톡홀름, 노벨뮤지엄, 플리커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이 책에 의하면 페니실린만큼 행운과 우연이 겹쳐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약도 없다. 오죽했으면 이 책 작가는 페니실린을 ‘신이 플레밍을 통해 인류에게 내려준 은총’이라고 했을까. 궁금하다면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189쪽 부터 194쪽 까지 읽어보도록 하자.

참, 폐렴으로부터 처칠의 생명을 구하고 세계역사를 바꾼 것은 페니실린이 아니라 설파제였다. 이 이야기는 200쪽에 나와 있다.

9. 아스피린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약이 아스피린이라고 한다. 위장장애 없다며 타이레놀이 시장에 나오기 전까지, 아스피린은 해열진통제로서 그 위치가 확고했다. 어른용은 하얀색, 어린이용은 분홍색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버드나무 껍질과 잎을 복통약으로 사용했다. 살리실산 때문이다. 1891년에는 살리실산 추출에 성공했고, 1897년에는 위통 부작용을 없앤 아세틸살리신산을 개발하여 1899년 아스피린이란 이름으로 발매했다. 아스피린은 아세틸의 ‘아’와 살리신산의 별명 스필산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요즘은 항혈전제로도 쓰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 치매예방, 대장암, 유방암, 폐암을 예방할 수 있다는 가설도 나와 있다고 한다.

10. 에이즈 치료제

키스 헤링, 프레디 머큐리, 아이작 아시모프, 록 허드슨, 매직 존슨…. 이 책에 의하면 HIV로 죽은 유명인들이 많다.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물론 더 많겠지만, 그들보다는 알려진 사람들의 죽음은 더 크게 다가온다.

1985년. 록 허드슨의 죽음은 정말 충격이었다. 에이즈 환자라고 밝혀진지 불과 10주만의 일이었다. 잘생긴 외모로 그는 거의 매번 근사한 연인으로 등장했기에 더 놀라웠다. 팬들도 그렇지만, 그와 함께 출연했던 여배우들은 경악(키스신을 생각하면 그럴만하다)했다.

그는 게이였다. 당시 8천 명 정도에 불과했던 에이즈 환자들은 대부분 동성연애 남자3였다. 이제는 더욱 다양한 경로로 많은 이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수혈, 혈액제제, 출산 등의 이유로 전파되는 경우는 극소수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성적인 접촉, 정액, 마약사용을 통해 전염4된다.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는 미국 국립 암연구소의 미쓰야 히로아키가 AZT라는 HIV증식 억제화합물을 발견해 의약품 승인을 얻음으로써 태어났다. 하지만 버로스웰컴사는 이것을 특허등록하고 1년치 약값을 1만 불로 책정했다. 나중에 항HIV제 DDI와 항바이러스제 DDC를 발견해 특허를 취득해 1/5 가격으로 시판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약은 뭘까? 1위는 액티뮨(악성 골다공증, 만성 육아종증 치료제)이다. 이 약은 1개월당 정가 5만 2,322달러다. 2위는 다라프림(톡소포자충증, 4만5천달러)이다. 적정 이윤을 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특허권을 쥐고 사람 목숨을 담보로 치료제를 고가로 판매해 폭리를 챙기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기 그지없다.

Footnotes

  1. 뇌에서 특정 분자가 결합해 정보를 수용하는 부위. 수용체가 열쇠구멍이라면 특정분자는 열쇠다.
  2. 스스로 자기 눈을찌른 의사-과학자, 제멜바이스, 2019.1.30, 사이언스라이프
  3. 록 허드슨 사후10년 미국 유명인사 수십명 에이즈 사망, 1995.11.24. 중앙일보
  4. 증상이 없는 HIV 감염, 질환백과, 서울아산병원

2 thoughts on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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