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가지 해석방법

요한계시록, 3가지 해석방법

세상이 뒤숭숭할수록 사람들은 앞일을 알고 싶어 한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가까운 일에 더 관심을 둔다. 지금이 그런 때다. 어르신들은 옛날부터 ‘말세다 말세야’ 하는 말을 많이 했지만, 요즘처럼 말세 중의 말세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그래서 성경 가운데 미래와 종말을 예언한 부분들이 더 주목받고 있다. 믿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가장 유명한 예언서는 요한계시록 이다.

요한계시록 3가지 해석방법
Patmos Island 사도 요한은 유배된 이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썼다.

요한계시록, 3가지 해석방법

요한계시록이라고 우리는 알고 있지만, 사실 요한의 계시가 아니다. 계시록 맨 첫 장 첫 줄에 있는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보여주신 증거를 보고 기록했다. 충실히 보고 듣고 기록했으나, 현대에 사는 우리가 이해하기는 어렵다.

요한이 기록한 뒤로 2천 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지리적, 문화적 거리도 멀기에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 하나를 두고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 그들의 주장을 가만 보면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 과거주의적 견해와 둘째 미래주의적 견해, 셋째 역사주의적 견해다.

1. 과거주의적 견해 (Preterist View)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모든 것들은 과거 초기 기독교 시대(AD4세기경)에 이미 다 일어났다. 따라서 우리가 사는 현재나 미래에 대한 메시지가 아니라는 견해다. 이 주장은 1614년, 예수회 신부 알카자르(Alcazar)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는 영광스러운 시대로 어떻게 끝맺음했는지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격려하는 데 의의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2. 미래주의적 견해 (Futurist View)

이것 역시 1603년 예수회 사제(리베라 Ribera)에 의해 시작된 주장이다. 하지만 과거주의적 견해와는 반대로 요한계시록(특히 4장~22장)의 모든 일들은 교회가 세상에서 옮겨지고 난 뒤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한다.

두 견해는 각각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과거와 먼 미래에 관한 것으로 서로 상반된 주장인 것 같지만,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현재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개혁 이후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음녀, 적그리스도는 교황이라는 주장이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이 두 견해는 그런 주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3. 역사주의적 견해 (Historicist View)

이 견해에 의하면, 요한계시록은 초림부터 재림까지 하나님 나라 역사에 대한 예언이다. 이 역사주의적 견해는 다시 교회 역사적 견해, 연속적 역사적 견해, 영적 역사주의적 견해로 구분된다.

  • 교회 역사적 견해 – 교회사의 개략으로 본다
  • 연속적 역사적 견해(Continuous Historical View)
    •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일들은 중복되지 않고 기록된 순서대로 일어난다.
    • 연대기적, 역사적 순서가 있다. (지금은 여섯째 대접에 해당)
  • 영적 역사주의적 견해(Spiritual HIstoricist View)
    • 요한계시록은 개략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철학이다.
    • 초림부터 재림 사이 교회, 삶, 역사를 지배하는 원리들에 대한 설명이다.
    • 특정 정부나 나라로 여기면 안 된다. 원리에 불과하다.

보다 자세히, 또 다르게 구분하기도 하지만, 살펴본 바에 의하면 크게 위 세 가지 견해로 대표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시록에 있는 모든 일들이 전부 과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몰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또 모두 일어날 순서에 따라 기록된 것일까. 어느 견해도 계시록을 온전히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내가 보기에 계시록 기록 중엔 이미 일어난 일도 있고, 지금 일도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도 있다. 성경을 읽다 보면 개략적으로 살피다 특정 사실은 줌 인해서 보여주실 때도 있고, 전의 일을 다시 상기시켜 설명하실 때도 있다.

우리는 과거-현재-미래 구분하지만, 그런 구분이 우리 생각만큼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는 이미 이뤄진 미래기 때문이다. 이상한 표현 같지만, 이미 촬영을 다 마친 드라마와 같다고 보면 어떨지. 시청자들은 재방송과 본방, 그리고 예고편밖에 보지 못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미 결말까지 다 촬영을 마친 상태다. 성경도 그렇다. 성경에는 재방, 본방, 예고편까지 다 있다.

구원이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지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2:16)


[참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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