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기도의 균형

말씀과 기도의 균형

말씀과 기도의 균형

흔히 이르기를 말씀은 머리로, 기도는 가슴으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말씀이 반드시 머리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슴을 울리기도 하고 오장육부 뱃속을 후비듯 하기도 하며 묵직하게 채우듯 자리 잡기도 한다.

기도도 마찬가지다. 애끓는 기도가 있는가 하면 머리로 하는 기도도 있다. 물론 혀끝으로만 하는 기도도 있다.

기도는 믿는 자의 호흡이고 하나님과의 교제다. 사귀는 상대가 어떤 분인지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면 그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을까?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하는 이를 더 알고 싶어진다. 관심 없는 사랑은 없다. 마주 앉아 내 요구 사항만 늘어놓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그런 나와 누가 사귀고 싶을까. 한 시간도 함께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1. 하나님 알기 – 말씀

누군가를 알지 못하면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없다. 내 기도가 세 시간은커녕 십 분을 못 넘기는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다. 제대로 알지 못하니 내 할 말만 하고 끝난다. 기도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떼쓰는 기도도 하루 이틀이다. 평생 떼쓰다 끝나는 인생은 비극이다. 이게 아닌데… 하는 회의가 왔다면 기뻐하자.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상대를 알면 대화의 질과 수준이 달라진다. 비로소 대화다운 대화가 가능하다. 나만 말하는 것에서 벗어나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생각해보자. 떼쓰는 기도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려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 성경을 읽으면 된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말씀은 하나님 자체이기도 하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 1:1~3)

기도가 아무리 중요하다지만 기도할 수 있게 되려면 일단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와 어떻게 대화를 하겠는가. 그래서 말씀이 중요하다. 말씀을 읽어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는 기도는 수준도 깊이도, 그리고 길이도 달라질 것이다.

 

2. 말씀이 바탕이 되는 기도

법정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검사나 변호사는 자기주장의 근거를 모두 ‘법’에 두고 논리를 펼쳐나간다. 하나님 말씀은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해야 하는 법이다1.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을 증거할 때 그 근거를 말씀에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개인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기도드릴 때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 그 말씀이 마치 문을 여는 열쇠처럼 생각될 때가 종종 있다. 특정 구절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 사과(잠언 25:12)’라고 했다. 적합한 말씀을 인용하며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이 더 기뻐 받으시지 않을까.

 

3. 말씀과 기도의 균형

기도를 제대로 잘하기 위해서 말씀을 잘 알아야 하지만, 말씀 알기에만 집착해 기도의 비중이 너무 적은 것도 문제다. 기도가 하나님과의 대화라면, 이것은 사귀는 상대가 얘기 좀 하자는데 일단 널 아는 게 먼저라며 외면하고 상대가 소셜 미디어에 올려놓은 글만 읽는 격이다.

지난 구역 공과때 엘리야에게 비추어 자신의 약점과 강점을 이야기했었다. 의외로 가장 많이 나왔던 것이 ‘나는 기도가 약하다’, 또는 ‘나는 오히려 말씀 읽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나님 섬기는 데 있어 흡족이란 것이 있을 수 없겠지만, 기도와 성경공부의 균형 맞추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방증인 것 같아 한번 생각해 보았다.

말씀을 읽고 공부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고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교제의 시간을 갖는 것도 소중하다. 우열과 경중을 어떻게 가릴 수 있을까. 모든 일은 하나님께 의뢰하고 인도하시는 가운데 균형을 찾자.

내게 부르짖으라 – 안식을 위한 기도

Footnotes

  1. 시편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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