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만나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4)

고난은 본질을 드러낸다

어제오늘 바람이 몹시 불었다. 아파트 옥상의 철판 덮개가 떨어져 겨우 매달릴 정도로 불었다. 아침에 보니 그동안 먼지 묻은 채 켜켜이 뒤덮여있던 마른 낙엽이 싹 떨어져 나가고 가지만 남았다.

선유도공원

밤새 불어 제친 바람으로 나무는 얼마나 괴로워하며 흔들렸을까.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 나자 오히려 스스로 떨어내지 못했던 더러운 것들, 가지를 누르고 있던 불편한 것들이 다 떨어져 나가 홀가분하게 되었다. 새순이 돋고 새 잎이 나기 좋도록 깨끗해졌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고난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힘으로 떨쳐내기 어려웠던 삶의 불순물, 찌꺼기들을 제거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군더더기가 빠지고 숨어있던 본질이 드러난다.

별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망원경이 아니라 어둠이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

‘인내하라’라고 하지 않았다. ‘인내를 만들어 낸다’라고 했다. 만들어낸다는 것은 원래는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 인생을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인내는 엔진과 같다.

보통 때는 누구나 있는 엔진으로 살아간다. 고난을 만나 연료가 다하고 힘들어 꺼질 때쯤 되면, 성령님의 역사로 만들어낸 또 다른 인내의 엔진이 작동되기 시작한다. 하이브리드 엔진이라고나 할까.

그저 참는 것이 아니다. 숨어있던 우리 본질이 고난을 만나 드러나 자동적으로 작동되어 이뤄지는 것이다. 성령이 주신 새로운 성품이 개발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이끄신다.

But let patience have her perfect work, that ye may be perfect and entire, wanting nothing. (James 1:4)

영어성경으로 읽으면 그 뜻이 좀 더 명확해진다. ‘내가’이루는 게 아니다. ‘인내가 perfect work를 하게끔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완벽하고 흠 없이 온전해 바랄 나 위 없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언제까지 이뤄가야 할까?

이런 인내를 언제까지 이뤄가야 할까? 우리가 온전해질 때까지다. 우리는 언제 온전해질까. 하나님께서 온전하다고 인정해주시기 전까지 우리는 스스로 온전함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목숨 다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부단히 인내를 이룰 수밖에 없다.

고난과 시험을 당하는 만큼 힘들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이뤄가야 하기에 더 힘들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가 바닷가에서 놀다 보면 파도를 뒤집어쓰게 될 때가 있다. 눈으로 코로 짠 물이 들어가고 꼭 죽을 것만 같이 괴롭다. 그러다 정말 큰 파도를 만나면 큰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 손을 잡고 놀 때는 그 무섭던 파도가 하나도 겁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신나는 놀잇감으로 변해버린다. 내 힘으로 파도를 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날 지켜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혼자가 아니다. 능력의 하나님, 영원한 구원의 근원 되신 분과 함께 한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브리서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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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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