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채우라 – 깨어 있으라(2)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13)

기름을 채우라 - 깨어 있으라2
Brooklyn Museum – The Wise Virgins (Les vierges sages) – James Tissot

마태복음 25장에는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온다. 본문의 열 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들러리다. 이스라엘 결혼 풍습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데려와 신랑집에서 혼인 잔치를 한다. 신부 들러리는 신랑이 오기까지 기다리다 신랑을 맞이해 함께 혼인 잔치에 참여한다. 열 처녀는 함께 신랑을 기다리다 졸다 잤다.

졸다 자다 하는 것은 사실 문제가 아니다. 열 처녀가 다 잤으니 말이다. 깨어 있으라 문제는 기름이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해 신랑을 맞이했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다섯은 기름이 없어 사러갔다 결국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다.

환하게 비추는 등불이란?

등잔에 등불이 환하게 비추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등잔에서 환하게 비취고 있는 빛은 그리스도인의 착한 행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24)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마태복음 7:26)

마태복음이 말씀하는 ‘지혜로운 사람’은 듣고 행하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듣고도 행치 않는 사람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 행위의 등불을 환하게 비추고 있지 못한 사람을 말한다.

기름을 채우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행위의 등불을 환하게 비추는 제자들이 되라고 하신다. 하나님 백성의 삶과 행실을 만들어내는 중심의 밑바닥에는 무엇이 있는가? 거듭난 자라면, 그 행위의 중심, 바탕에는 거룩한 욕구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 본능에 가까운 사랑이다. 세상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은 흉내 낼 수 없다.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흉내낸다 해도 잠깐뿐, 오래 가지 못한다. 정체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한일서 2:5)

그 사랑하는 자를 의지하고 거친 들에서 올라 오는 여자가 누구인고. 너를 인하여 네 어미가 신고한, 너를 낳은 자가 애쓴 그 곳 사과나무 아래서 내가 너를 깨웠노라.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 같이 잔혹하며 불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찌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 (아가 8:5~7)

그래서 바울은 이 사랑과 거룩한 갈망이 점점 더 커지고 풍성해지기 위해 기도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빌립보서 1:9~11)

예수님께서는 실패한 제자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이것을 질문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1

기름이 준비되어 있는가?

하나님께 대한 것은 아닐지라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 역시 갈망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 의존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다. 원래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으나, 죄로 가려져 그 대상이 왜곡되었다. 그 형태가 어떻든 그 이름은 우상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룩한 갈망. 이것은 하나님 백성의 새로운 본능이다. 이것이 살아 있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만든다. 이 기름이 준비되어 있는가?


이 글은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깨어 있으라 2 – 기름을 채우라(2019.6.16. 박지웅목사)’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 요약한 글입니다. 제 생각과 느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설교 본문을 직접 보시려면 링크된 페이지를 참고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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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요한복음 21:17

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