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로이드 존스의 십자가 (2)

지난 글에서는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십자가(The Cross)를 읽고 1장부터 4장까지 요약해 소개한 바 있다. 이번 글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십자가 (2) 에서는 5장부터 9장까지 정리해본다.

제5장 십자가의 개가

십자가는 대적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한다. 그러니 승리(triumph)의 개선가가 될 수 밖에 없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영광을 보게 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아버지의 하신 일을 깨닫게 한다.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로새서 2:14~15)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조문이 쓰여 있는 빚 증서를 없애버리셨다. 통치자들과 권력을 폐하여 버리고 승리하셨다. 그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이루셨다. 십자가는 구원의 방법이고 승리의 개선행진곡이다.

세상은 왜 늘 그 모양 그 꼴인가?

오래전부터 어르신들은 늘 말세라고 해왔다. 사람의 눈으로도 점점 무질서하고 타락해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 인간들은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그 어떤 인간적인 노력도 소용없었다. 오늘날처럼 많은 사람이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던 적이 없다. 무엇이 바뀌었는가? 국회에서 수많은 법을 제정해도 나쁜 사람들은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 법으로 바뀔 것 같았으면 이미 모세 시절에 세상은 바뀌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단순히 인간의 본성 때문은 아니다. 세상이 사탄의 권세 아래 놓여있기 때문이다.

사탄, 악한 영의 존재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심지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진짜 있나요?

실제로 어떤 아이들은 ‘선생님, 귀신이나 악마가 정말 있어요?’하고 묻는다. 많은 어른이 ‘에이, 요즘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없어.’ 하고 답한다. 놀랍다. 옛날엔 있었던 것이 요즘은 없어졌다니.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사탄과 그 졸개 악한 영들에 관해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고린도후서 4:3~5)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에베소서 2: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에베소서 6:12)

사탄의 역사

사탄은 원래 완전한 피조물이었다. 하지만 그 놀라운 능력은 곧 교만을 가져왔고, 하나님과 동등해지고자 몇몇 천사들과 반역을 일으켰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은 것을 보고는 유혹해 타락시켰다. 하나님 처럼 된다고 유혹했지만, 결국 인간은 사탄의 노예로 전락해버렸다. 십자가는 이런 존재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다.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사탄은 인간의 마음을 통해 역사한다. 하나님을 싫어하게 만든다. 온 인류의 삶을 간섭한다. 하나님을 찾는 자를 적게 만들고, 전도를 거절하게 한다. 인간이 자유롭게 사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진리를 보려고 시도하면 바로 사탄의 간섭을 느끼게 된다. ‘이번 주 부터는 교회에 꼭 출석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으면, 급한 일이 갑자기 생기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하지 않았는가.

또한 우리에게 두려움, 공포심을 심어 우리 행동을 좌지우지하고 욕망을 충동질해 죄를 짓게 만든다. 하지만 죄의 삯은 사망이니, 참 뭘 해도 마찬가지 결과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제6장 평강의 왕

이것은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직후에 했던 설교였다.

케네디도 사람들을 하나 되게 노력하다 암살당했다. 하지만 암살사건 그 자체는 세상 많은 문제 중 하나다. 세상의 문제 해결에는 인간적인 그 어떤 노력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참 평화를 가져다줄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모든 족속을 연합시킬 수 있고, 온 세상에 참된 평화를 심어줄 수 있다. 십자가가 선 곳에는 분단과 증오, 장벽이 사라진다. 십자가가 남긴 것은 기독교 교회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절대로 가까이할 수 없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된 것이다.

십자가 앞에서 사람은 모두 공평하다. 편애가 없다. 누구나 구원하시기 때문이다. 교만이 사라지고 참 평안과 평화를 누리게 된다.

제7장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히브리서 12:24)

십자가는 살아서 역사하며 증언한다. 우리는 새 언약 아래에서 새 시대를 살고 있다. 시내 산으로 되돌아가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천지창조도 말씀으로 충분했지만, 인간 구원 문제는 말씀만으로 충분치 않았다. 죄를 사하기 위해서는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십자가가 말하는 것

  • 한 인간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이 중요하다
  • 죄가 무엇인가
  • 십자가는 우리를 향한 초대다
    • 먼 데 있는 이방인
    • 세상이 관심 두지 않는 버려진 인생

제8장 새로운 피조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십자가를 만나기 전,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고 악인이었다. 십자가를 만나고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것이 바울이 산상수훈이나 주님의 다른 가르침이 아닌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한 이유였다.

화평, 평화, 평강

인간은 모두 죄의식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 대해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다. 보통 무섭고 두렵게 여긴다. 우리를 적대시하고 파멸시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해받지 않고 멋대로 살려고 한다.

하지만 그때 십자가를 바라보면 독생자를 보내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모든 선입견이 뒤집어진다. 사랑과 은혜, 자비가 풍성하신 분으로 바로 보게 된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8)

법을 위반하면 벌을 받는다. 우리가 율법을 다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절망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는 법에 얽매인 위치에서 우리를 해방한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게1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요한복음 9:31)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듣지 않으신다. 하지만 죄인인 우리가 안심하고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4~16)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우리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있다. “네 주제에 감히 어떻게 기도하니?”, “십자가는 너의 못된 것을 다 들춰낸다~” 그러나 속지 말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보혈로 우리를 모든 죄와 불의에서 깨끗이 씻어주셨다.

제9장 구속과 자유

유대인들에게 있어 구세주란 능력과 권세가 있는 위대한 독립투사여야 했다. 베들레헴 에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어가는 이는 구세주로 인정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런자가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것을 하나님 모독으로 생각했고, 핍박할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을 새로운 각도로 보게 된다

바울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십자가를 만나고 난 다음에는 세상의 눈으로 인간을 보는데서 벗어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인간을 볼 때 출신, 직함, 지능, 꿈, 심성… 갖가지 잣대로 평가하며 본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다. 또한 거듭난 사람들은 그 안에 성령님께서 거하시는 성령의 전이다. 거룩한 존재다. 인간의 존엄성은 다른데 있지 않다.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1~2)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하며 살아간다. 마귀에게 속아 죄인이되고 죄의식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다. 율법은 죄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해 은혜 아래 살게 한다.

더 나아가 사망의 두려움에서도 해방된다. 사망이란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사는 것이다. 더이상 공포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찌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고린도전서 4:1~4)

평판의 두려움에서도 해방된다. 변화된 삶을 살게되면 살면서 남을 판단하지도 않을 뿐더러, 남에게 판단 받는 것에 구애되지도 않게 된다. 나를 판단하실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기심에서 해방된다

인간은 원래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다. 자기가 최고다. 우주의 중심이다.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기다. 모두 그러니 믿을 이가 하나도 없다. 자기밖에 믿을 게 없다. 그러니 불안하다. 기쁨도 만족도 없다.

십자가를 만나고 나면 이런 이기심에서 해방된다. 옛 모습은 허상이고 거짓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후서 5:15)

우리들의 이기심, 자기 중심성이 하나님을 배반하게 했고, 그것이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계속 자기중심적인 삶을 산다면, 그리스도의 뜻과는 반대되는 인생을 사는 것이며, 기독교 신자로 믿는다고 해왔던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결국 죄란 그리스도의 사랑에 상처를 주는 것이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다.

용서뿐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하나님의 능력도 받는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4:15)

우리는 살면서 오해, 배신, 불공평, 좌절, 절망, 고립, 몸이나 마음의 아픔을 수없이 겪는다. 예수님은 우리가 겪는 고통을 모르지 않는다. 다 겪으셨다. 둘째 사망까지 겪으셨으니, 사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이미 다 겪으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4:16)

하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고통을 다 겪어 아시기에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신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늘 우리를 지키고 도우신다.

Buy Me a CoffeeBuy Me a Coffee

Footnotes

  1. 로마서 6:14

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