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38~42)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Henryk Siemiradzki: Christ in the House of Martha and Mary

마리아는 좋은 쪽을 택했다. 마르다는 그렇지 못했다. 마리아가 취한 좋은 것은 무엇이고 마르다가 한 실수는 무엇이었을까? 말씀 듣는 것을 택한 마리아는 나은 선택을 한 것이고 봉사를 택한 마르다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었을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 바로 앞에 나오는 것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가르쳐주셨다.

특히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일을 마치고 여리고로 내려가는 당시 종교인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종교적인 일을 했다고 이웃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없음을 강조하셨다.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나서 바로 이어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공부가 주방에서 봉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신 것이 아니다. 마르다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나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었을 때 잔치를 위해 일하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요한복음 12:2)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마리아가 취한 좋은 것’ 은 여전히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바라보는 것이었다. 마르다 역시 주님을 바라보고 일을 시작했지만 나중엔 그것에 치여 원망 불평을 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여전히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주목하고 있었다.

사회복음주의로 유명한 찰스 쉘든의 ‘그의 발자취를 따라서(In His Steps)’라는 작품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실천을 주장하는 대중적 종교소설이다. 요즘은 ‘내려놓음’이 주목받는다. 교회마다 행사와 프로그램으로 바쁘다.

하지만 ‘뭘 하느냐’하는 WWJD(What would Jesus do?)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주님께서 무엇을 하셨느냐’ WHJD(What has Jesus done?) 하는 질문이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부활하셨다. 이것에 대한 감격과 기쁨, 감사 없이는 예수님처럼 한다는 그 자체도 별 의미가 없다.

거룩함, 경건함은 무엇을 하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해 하느냐로 결정된다. 무엇을 하든 내가 지금 누구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돌아봐야겠다. 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이 글은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오직 그리스도(2019. 8. 18. 노진준 목사)’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 요약한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 느낌이 들어있을 수 있습니다. 동영상이나 음성, 본문 텍스트가 필요하신 분들은 링크된 문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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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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