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

우리 인생은 잠깐 보이다 없어지는 안개 같은 것임을 알고 하나님 뜻에 합한 것만 하고 살겠다 하는 인생이 ‘선을 행하는 삶’이다. 이런 삶으로 변화되는 것은 동기부여만 갖고는 안된다. 비록 작은 것 하나라도 ‘구체적’인 결심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돈이나 시간을 쓰는 것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 변화 없는 신앙은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와 같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야고보서 5:1~6)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야고보서 5:9)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1. 이미 이루어진 미래

하나님의 심판은 미래의 일이나, 하나님이 눈으로 볼 때에는 ‘이미 이루어진 미래’다. 모순된 표현 같지만 그렇지 않다.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라고 했다. 지금 현재 썩거나 좀먹지도 않았고 금과 은은 녹이 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과거시제로 표현한 것은 시간을 창조하시고 초월하신 하나님께는 가능하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스크루지는 친구 마레의 망령에 끌려 과거와 미래를 여행함으로 경고를 받고 생활에서 태도를 바꿨다. 야고보서의 이 구절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경고보다 무서운 선포다.

2. 변화의 증거가 없는 자, 십자가 피 값을 책임져야 한다

6절을 보면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데 불의한 재물에 대해 말하다가 갑자기 예수님을 말하는것은 무슨 까닭일까.

예수님께서는 이세상이 전부라는 세속주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다. 하나님 백성이라고 하면서 실제 변화는 없이 여전히 세속주의에 휩쓸려 산다면 하나님께선 그 피값을 찾을 것이다. 사람은 이를 감당할 수 없다. 바로 지금 이순간 변화해야 한다.

3. 말세, 종말의 시간에 살고있다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야고보서 5:3)고 했다. 말세란 종말의 시간이다. 이는 예수님의 승천과 재림 사이의 시간이다. 예수님이 하늘에 올라가신후 다시 오시기까지가 말세다. 초대교회 사람들도, 종교개혁 시대 사람들도, 그리고 지금 우리도 말세를 살고있다.

이 시간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전후반 끝난뒤 적용되는 인저리 타임(injury time)과도 같다1. 전적으로 심판주의 주권에 달린 시간이다. 스탠바이란 말이 연상된다.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신다(5:10)’고 했다.

변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이유
John Martin – The Great Day of His Wrath

작은 것이라도 바꿔 변화의 증거를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결코 미룰 수 없다. 내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변화의 증거가 필요하다. 한해의 마지막 주일, 구체적인 변화의 결심을 해보자.


이 글은 ‘변화를 미룰 수 없는 이유 (2018. 12. 30. 주일설교)’를 듣고 나름대로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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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로스 타임, 루즈 타임이란 말도 쓰이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선수 부상 또는 기타 이유로 소모된 시간을 추후에 적용한다는 인저리 타임이란 말이 가장 많이 쓰인다. 전적으로 주심의 주관에 의해 적용되며, 대기심이 인저리 타임을 관중에게 알려주시 시작한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부터였다. 축구/인저리타임 – 정규시간 후의 로스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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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