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다스리시는 주님

흔히 나이 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와 친구라고 한다. 그 밖에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 인생에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수많은 사람이 필요할까? ‘죽음을 다스리시는 주님’ 을 알아보자.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쌔,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누가복음 7:11~17)

예수님께서 나인 성에 도착하셨을 때, 마침 한 장례행렬이 있었다. 외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과부에게 예수님께서는 ‘울지 말라’ 하시고 그 관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셨다. 죽었던 청년이 살아났다.

14절 말씀은 예수님의 기적의 순간을 마치 슬로 모션처럼 우리에게 보여준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친히 드러내 보여주시는 일종의 계시(revelation)다.

1. 가까이 오셨다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능히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 가버나움에서 백부장의 종을 낫게 하셨던 것(누가복음 7:1~10)을 생각해보자. 그런데 굳이 가까이 오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셨기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었다.

2. 손을 대셨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오셨을 뿐만 아니라 관에 손을 대셨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율법은 시체와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음을 이기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시체에 손을 대면 부정해진다.

구약에서도 죽었던 사람을 살린 엘리야 이야기1가 나온다. 엘리야는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부정해지는 것을 무릅쓰고 간구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죽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 존재가 아니다. 무엇이 다른가. 죽음과 싸워 이기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죽음을 능히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렇기에 접촉이 가능하다.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사람이 주검에 손을 대면 죽음으로 물들지만, 예수님께서는 생명이시기에 죽음이 오히려 생명으로 물든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3.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신의 죽으심을 통해 죽음의 질서를 깨트리기 위해서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브리서 2:14~15)

예수님께서는 죽었다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아들임을 증명하셨다.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4)

그러므로 죽은 우리가 예수님과 연합하면(믿음으로 하나 됨), 예수님이 죽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매급으로 예수님과 함께 살아 일어날 뿐 아니라 함께 하늘에 앉게 된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에베소서 2:5~6)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선언이다. 마치 스프링복처럼 낭떠러지로 마구 떨어지는 인생에게 하시는 자기주장이다.

죽음을 다스리시는 주님

인생에 많은 이가 필요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직 예수 한 분이다. 많은 사람이 나인 성 과부를 위로하기 위해 함께 나왔지만, 영원한 절망과 나락, 공포, 운명에 도움이 될 수는 없었다.

주님께서는 “울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영원히 눈물을 거두시는 분, 질병을 다스리고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인생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왕이시다.

이 글은 ‘예수의 복음(4) – 죽음을 다스리시는 주님‘,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박지웅 목사, 2020.2.2.)을 듣고 나름대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실제 설교와 차이가 있습니다. 설교 본문이나 동영상 자료가 필요하신 분들께선 링크된 페이지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Footnotes

  1. 열왕기상 17:17~24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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