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스파이크 Spike를 읽고

1922년부터 1927년까지 5년 동안, 조지 오웰은 외할머니가 살고 있던 미얀마에서 경찰 간부 생활을 했다. 경찰 간부 생활은 그의 적성에도 맞지 않았을뿐더러 식민지배의 실상을 알게 될수록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영국으로 돌아간 다음, 속죄하는 마음으로 밑바닥 인생을 자청해 노숙자-부랑자 생활을 했다. 스파이크 Spike(1931)는 그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조지 오웰의 스파이크 Spike
Former workhouse at Nantwich, Cheshire, constructed in 1780/wiki image

스파이크란?

스파이크란 영국(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부랑자 임시숙소를 일컫는 말이다. 정식 이름은 구빈원(workhouse)으로, 자립이 안되는 사람들을 수용해 숙식과 일거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백년전쟁(1338~1453)과 흑사병(1347~1349)의 영향으로 노동력도 부족해지고 경제도 피폐해졌다. 가난한 사람, 떠도는 사람이 늘어났다. 노동력 확보와 빈민 구제를 위해 잇달아 많은 법령이 제정되었다. 처음에는 빈민을 규제하고 단속하는 것이었으나, 점차 도와주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구빈원은 그런 가운데 생겨난 곳이다.

조지 오웰의 스파이크

늦은 오후였다. …. 머리 위로는 꽃 흐드러진 밤나무 가지가 드리워져 있었고, 그 위로는 맑은 하늘에 커다란 양털구름이 거의 움직임 없이 떠 있었다.

‘도시의 거무죽죽한 쓰레기 같은’ 더럽고 우울한 부랑자들의 처지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배경이다.

부랑자 감독 Tramp Major는 마왕이자 폭군이다. 형편없는 옷과 역시 형편없는 음식이 주어진다. 엄격한 규율 속에 방치된 사람들은 진저리나도록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허기나 불편, 망신스러운 느낌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이 따분함이라고 오웰은 말한다.

감금을 견딜 수 있는 건, 자기 안에 위안거리가 있는 배운 사람들뿐이다. 거의 대부분이 무학인 부랑자들은 빈곤에 대해서도, 아무 영문도 보르고 의지할 데도 없이 당할 뿐이다.
그러니 생각 나는게 있다 한들 불행을 푸념하거나 일자리를 갈망하는 것 밖에 없다. 그들에겐 무위의 끔찍스러움을 견딜 자산이 없는 것이다.

그런 부랑자들 사이에 좀 다른 두 인물이 있다. 오웰과 젊은 목수 두 사람인데, 이른바 젠틀맨과 기술 노동자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그 둘의 대화를 보면 ‘3파운드어치의 연장 세트가 없어 6개월 동안 생활보호 대상자 생활을 해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복지에 있어서 어려운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빵 살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 나은가. 그것은 의료에 있어서 질병을 예방하는 것과 응급실 진료 가운데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조지 오웰의 스파이크 Spike
올리버 트위스트의 삽화. 1898.

오웰이 그리는 스파이크는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생각나게 한다. 올리버 트위스트의 배경은 19세기 초반 런던이다. 멀건 죽 한 사발에 견딜 수 없는 소년들에게 떠밀려 나가 한 그릇만 더 달라고 했다가 머리를 얻어맞고 방에 갇힌 올리버 트위스트. 개밥을 먹으며 장의사에서 일했던 올리버 트위스트.

올리버가 지냈던 구빈원과 100년이 흐른 뒤 오웰이 경험한 스파이크 사이엔 어떤 변화가 있나. 글을 통해 보기엔 별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웰 자신도 훗날 ‘가난한 자들은 어떻게 죽는가(1946)’ 에서 ‘구빈원에 들어가면 올리버 트위스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은 그로부터 또 백 년이 흘렀다. 21세기의 모습은 어떤가. 십인십색. 처지도 특성도 다 다르다. 모든 사람을 다 빈민, 노숙자, 부랑자 하나로 뭉뚱그릴 수도 없고 모두 안성맞춤으로 지원할 수도 없다. 세상엔 정말 고민할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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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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