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기억

가장 오래된 기억

가장 오래된 기억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오래된 기억’ 은 언제일까? 사람들은 얼마나 오래전 일을 기억할까? 보통 5, 6세에 있었던 일을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말하곤 한다. 왜 그럴까? 사이언스 타임즈 의 한 기사1에 따르면, 첫째, 유아들은 언어 기능이 없고 둘째, 새롭게 형성된 뉴런이 이미 저장된 기억을 없애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당장 나만 해도 첫돌 때 기억이 있다. 돌 사진을 찍을 때였다. 돌 상 가까운 쪽에, 아마도 오른쪽으로 기억되는데, 백설기가 놓여있었다. 어른들이 말리는 것을 무릅쓰고 빈틈을 노려 기어코 한 귀퉁이를 뜯어 먹었다.

그보다 좀 더 오래전 기억도 있다. 할머니와 부모님이 모두 한복차림인 것을 보면 설날이었나보다. 그것으로 미뤄보아 7개월 무렵인 것 같다. 한창 앞니가 돋을 시기라 근질근질했다. 당시엔 치발기가 따로 없어 플라스틱 오뚜기 인형을 물어뜯곤 했다. 밝은 녹색과 분홍색으로 된 오뚜기였는데, 작고 가운데가 잘록해 한 손에 쥐기 딱 좋았다. 어찌나 즐겨, 그리고 암팡지게 물어뜯곤 했는지 끄트머리가 조금 해져있었던 것도 생각난다.

그날도 역시 내 손에는 그 오뚜기가 들려있었다. 입으로 자꾸 가져가는 것이 거슬렸는지 사진 찍으려던 아버지는 못 하게 하라고 하셨고, 어머니는 슬그머니 손을 아래로 잡아당겨 못하게 하셨다.

더 오래된 기억도 있다. 머리숱 많아지라고 빡빡 깍은 데다 여름인 것을 보니 4, 5 개월 무렵이었다.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아 목욕하고 있었다. 갖고 놀던 오리 인형도 생각난다. 비닐로 만든 튜브 인형이었는데, 아래위 이음매 시접 부분이 밖으로 튀어나오게 처리되어 피부에 쓸릴 때 좀 거칠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다. 덥지도 차지도 않았던 물의 온도도, 울리지 않고 기분 좋게 씻기려던 할머니와 엄마의 어르던 모습과 음성도 생각난다. 그리고 사진 찍다 말고 텔레비전 커버를 벗기던 젊은 아버지도 생각난다. 이것이 현재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안방 윗목에는 가운데에는 텔레비전이, 그 양쪽으로는 스테레오 전축이 있었다. 셋 모두 위에는 엄마가 만든 아주 연한 분홍빛 커버가 씌워져 있었다. 아빠는 사진에 텔레비전을 담고 싶으셨나 보다. 엄마는 살짝 만류했지만, 아빠가 이겼다. ㅎㅎ

기억나게 하는 요인

무엇이 어떤 사건을 기억에 남게 할까? 왜 어떤 것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고 다른 것은 그렇지 못한 걸까? 과연 아이들에겐 언어적 기능이 없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언어능력

내 기억으로 미루어볼 때, 아이들에게는 언어적 기능이 있다.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활용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도 내린다. 부모의 대화를 듣고 이해한다. 목욕하고 있었을 때, 부모의 대화를 듣고 이해하고 거기 포함된 감정-뉘앙스도 알 수 있었다.

설날에 사진 찍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뚜기를 물어뜯고 있는 모습보다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은 어른들의 대화와 ‘잠깐 내려놓자. 있다가 하자.’며 내게 하던 말도 다 듣고 이해한다. 그리고 협조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 시간은 정말 짧았다. 잇몸이 너무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었고, 결국 슬쩍 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돌사진 찍을 때도 그랬다. 뜯어먹으려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하면서도, 사진 찍는 동안은 얌전히 있길 바라며 하는 말들도 이해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욕구에 졌을 뿐이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사고능력

아이들은 언어능력뿐 아니라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도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의 개념도 확실히 있다. 다만 표현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어른들이 잘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교육심리학 시간에 배운 이론들은 대부분 어른 입장에서 멋대로 판단한 것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멋대로 판단하는 심리학 이론들을 나는 믿지 않는다.

또한 아이들은 얼마든지 협조할 의향을 갖고 있다. 그 지속 시간이 짧을 뿐이다. 그야말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한2 상태인 것이다.

반복 학습

오래된 기억을 돌아보면 모두 ‘사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렸을 때 앨범 보기를 좋아했는데,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반복적으로 학습한 셈이다.

반복 학습은 일단 입력된 것이 있을 때 가능하다. 어떤 비슷한 환경에 놓여있다고 다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정말 신생아 때 찍은 사진도 있는데, 그때 상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예로부터 삼칠일이 지나야 눈과 귀가 트인다고 했는데, 그래서였을까.

결합된 정보

또 다른 특징을 찾자면 여러 가지 정보(자극)이 서로 결합해 있다는 점이다. 당시의 촉각, 미각, 후각, 시각, 청각 정보들이 결합해 언어, 사고능력이라는 끈끈이 실에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작은 타피스트리처럼 남아있게 된다. 내가 보기엔 그것이 기억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의미는 좀 다르지만, 학습에 있어서 내가 늘 강조하는 말이다. 낱낱의 구슬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급할 때 얼른 생각나지 않아 써먹을 수 없다. 하지만 다른 정보 자극과 연결해 놓으면 훨씬 생각해내기 쉽다. 다른 것을 생각할 때 함께 연상되기 때문이다. 어떤 실마리를 잡아채면 거기 꿰인 구슬이 함께 딸려 올라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짧으나마 스토리가 있으면 더욱 좋다. 스토리는 언어-사고능력으로 결합된 크고 작은 그림이다. 더욱더 단단하게 얽혀있다.

조상의 기억이 내 안에

사고로 신체의 일부를 잃었다고 해도 그것이 자손에게 유전되지는 않는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다면, 아담 이래 남자들은 갈비뼈 한쪽이 모자란 채로 태어났을 것이고, 신장을 이식받은 환자의 후손은 신장이 세 개씩 달린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신체적 경험이 유전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기억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상의 경험은 정보화되어 내 유전자에 기록된다. 미국 아모리대 디아스 박사팀은 동물이 겪은 공포증이 유전자에 각인되어 후손에게도 공포증이 나타날 수 있다고 2013년 12월 네이처 뉴로 사이언스에 발표3했다. 기억은 유전된다.

많은 사람이 뱀을 직접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뱀을 싫어한다. 가장 오래되고 강렬했던 첫 인류의 기억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조상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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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왜 젖 먹던 때를 기억하지 못할까’, 사이언스 타임즈, 2014.5.19.
  2. 마태복음 26:41, 마가복음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3. 당신이 뱀을 무서워하는 건, 조상 때문1, 동아사이언스, 2013.12.31.

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반갑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