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편의 두 가지 길

오늘 주일 설교 제목은 ‘두 길, 당신은 길을 바꾸셨나요?’였다. 시편 1편은 시편의 도입부인 동시에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분명히 나타나 있는 말씀이다.

시편 1편의 두 가지 길
@piqsels

시편 1편의 두 가지 길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1:1~6)

시편 1편에서 다윗은 인생에는 딱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다. 그 기준은 단 하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가’다. 기준이 하나기에 딱 둘로 나뉜다. 이런 이분법은 독단적으로 보인다.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하지만 진리가 하나요 기준도 하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비단 시편 1편뿐 아니라, 성경 전체가 우리 인생엔 단 두 가지 길만 있음을 증언한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아담 안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으로 나뉜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린도전서 15:22)

또 로마서는 생각마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으로 나눈다. 여기서 육신은 우리 몸이 아니라 죄된 본성을, 영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가리킨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5~6)

의인의 길

의인의 길은 복 있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다. 어떤 사람인가. 오직 하나님 말씀(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겐 계속 물이 공급된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고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 마치 그런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의인이 하는 모든 일은 형통하게 된다.

형통하다는 의미는 하나님 뜻대로 그에 합당하게 이뤄지는 것을 말한다. 어떤 작품이든 작가의 창작 의도가 있다. 사물도 목적이 있고 컴퓨터도 운영체제가 있다. 만든 사람의 뜻대로 굴러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 멋대로 돌아가면 우리는 그걸 고장이라 부른다.

그러니 형통이란 그런 고장난 상태가 아니라 우주만물을 지으신 이의 뜻대로 운영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잘 먹고 잘 사는 것, 뭐든 내 뜻대로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내 뜻이 하나님 뜻과 같을 때, 그것이 의인의 길, 복있는 자의 길, 형통한 길이다. 내 뜻이 하나님 뜻과 같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하루를 말씀으로 시작하고 마쳐야 한다. 실제로 자기 직전 생각한 것을 아침에 눈 떠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아침을 말씀으로 시작하고 싶은가? 적어도 자기 직전에라도 말씀을 읽어야 한다.

악인의 길

의인의 길과 반대로 가는 길이 악인의 길이다. 그 길은 죄인의 길이요 오만한 자의 길이다. 누가 죄인인가. 마음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제가 주인이라 여기며 사는 자가 죄인이다.

그게 왜 죄인인가. 나를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남의 것을 자기 것으로 하고 살아가니 그게 죄인이 아니고 무엇인가.

오만한 자는 어떤 사람인가. 제 주제를 모르고 건방지고 거만하게 사는 사람, 목이 뻣뻣한 사람이 오만한 사람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면 안 되겠지만, 여기서는 특히 하나님에 대해 오만하게 구는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목이 곧은 사람1, 교만한 사람을 싫어하신다2

이런 사람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다고 했다. 가 무엇인가. 탈곡하고 난 곡식의 껍질이 겨다. 언뜻 낟알과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속은 텅 비어있다.

악인도 마찬가지다. 당장 잘 나가는 것 같고 화려해 보이더라도 알맹이는 없이 살다 결국에는 망한다. 라면을 한 봉 사도 조리법을 읽고 끓여야 맛있고, 프린터를 하나 사도 사용설명서를 읽어야 설치를 하고 사용을 한다. 만든 사람의 지시사항을 따르지 않으면 쉽게 고장나기 마련이다. 악인이란 그런 거다. 망하는 길인 것이다.

어떤 길로 갈 것인가

아주 오래전,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광고 카피3가 있었다. 하나님의 초대를 받은 순간, 그 순간의 선택이 평생, 아니 사후까지 좌우하는 일생일대의 기로에 서게 된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악인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의인의 길로 갈 것인가.

돌이키지 말라

우리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의 갈림길에서 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그 길을 걷는 사람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에게도 갈림길이 나온다. 유혹의 순간, 삶의 고비마다 마주치게 된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돌아서지 말아라. 절대로 빠져나왔던 그 길로 다시는 돌아가지 말아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세상의 더러운 것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그리로 돌아간 사람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속담이 그들에게 사실로 들어맞았습니다. “개는 자기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그리고 “돼지는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진창에 뒹군다” (베드로후서 2:22)

설교를 들으면서 지난 토요일 올린 ‘노아의 때와 롯의 때, 시류에 휩쓸리지 말자’가 생각났다. ‘아, 내가 생각했던 게 틀리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블로그에 틀린 내용을 올리면 안 되지만, 다시 확인받게 되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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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4. 6. 2.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두 길, 당신은 길을 바꾸셨나요?’를 듣고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설교내용이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본문과 다릅니다.

Footnotes

  1. 신명기 9:6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2. 베드로전서 5:5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3. 1980년 금성 하이테크 칼라비전 TV 광고에 처음 등장한 문구. 광고영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