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37편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 우리가 할 일은?

시편 37편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기원전 7세기, 하박국 선지자는 세상의 악함을 인하여 ‘어느 때까지리이까’ 하며 탄식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정한 때가 있으니 더딜지라도 기다려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선 그보다 300년을 앞서 산 다윗을 통해 이 문제에 답을 주시며 우리를 위로하신다. 바로 시편 37편이다.

시편 37편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 우리가 할 일은?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편 37:1~2)

악을 행하는 자, 불의를 행하는 자를 불평하고 투기하지 말라고 하신다. 행악자와 불의를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선을 행하는 자를 대적하는 자를 가리킨다. 그런 사람들은 남을 돌아보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만하고 악한 것을 행하며 불의를 기뻐하고 진리를 미워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데 부지런하다.

이런 사람은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기 이익에 혈안이 되어 세상적 성공을 거둔다.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행악자요 불의한 자라는 것은 잊게 되고 그들의 겉모습만 보고 부러워하거나 악인의 형통에 분을 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그들의 번영과 성공을 보고 분을 내지도, 부러워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악인에게 형통은 오히려 올무와 독이 되기 때문이다.

겨와 같고 풀과 같다

또 그들의 형통은 오래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잡초는 빨리 자란다. 밭에 심은 식물, 마당의 화초를 다 잡아먹을 것처럼 왕성하게 퍼진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밭 주인, 마당 주인이 다 뽑아버리기 때문이다. 악인은 없어진다. 잠시 후에 없어진다. 믿어지지 않아 그들이 있던 곳을 아무리 자세히 살피더라도 찾지 못할 것이다.

악인은 언뜻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 않다. 그저 바람 한번 불면 날아가 버리고 없어지는 겨처럼 하찮을 뿐이다. 악인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그의 결국은 사망일 뿐(시편 1:4)이다.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시편 37:9~10)

곧, 속히, 잠시 후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 말씀에 솔깃해 기다리다가도 쉽게 지친다. 마치 등산할 때 ‘다 왔어. 금방이야.’하는 말을 듣는 것만 같다. 하지만 기다리자. 우리가 바라는 것처럼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가장 좋은 때에 틀림 없이 행하시며 일단 시작이 되면 가차 없이 신속하게 이루신다. 식언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가 할 일은?

불평하지도 말고, 투기하지도 않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시편 37편에는 그에 대한 답도 나와있다.

  1. 여호와를 의뢰하고 바라며 하나님의 도를 지키자
  2.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자
  3. 하나님을 기뻐하자. 우리 소원을 이뤄 주신다
  4. 우리 길을 하나님께 맡기자
  5. 하나님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자
  6.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자. 불평하지 말자.
  7. 온유한 사람, 베푸는 사람,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자
  8. 지혜와 공의를 말하자

가만히 보면 이런 사람이 곧 의인이요 시편 1편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시냇가 반석 위에 뿌리를 깊이 내린 나무처럼 잎이 마르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 1:1~3)

참 어려운 때다. 사방을 둘러봐도 점점 혼탁해지는 것만 같다. 기도가 헛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우리 기도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기도,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임에랴.

가정과 이웃, 사회, 나라, 교회를 위해 걱정하고 기도하는 것은 참 귀한 일이다. 하지만 지나친 염려나 근심걱정은 금물이다.

첫째, 지나친 걱정은 나를 상하게 한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잠언 17:22). 3년 전. 아버지와 동생이 갑자기 아파 위급한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양쪽에서 그러니 정신도 없을뿐더러 상태 변화에 따라 내 마음도 롤러코스터를 탄 듯 등락을 반복했다. 간절함이 지나쳐 내 건강도 상하게 되었다. 그러고나서야 그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는 자의 바른 태도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24)고 말씀하셨다. 이 땅에 내 뜻도 아니고 하나님 뜻이 이뤄지길 구하면서 반신반의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믿음이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것 없고 귀에 들리는 것 없고 손에 잡히는 것이 없어도 믿는 것이 믿음아닌가.

하나님께서 그 뜻을 이루실 것을 믿고 의심치 말자. 그래야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인생은 짧고도 길다. 골인 지점에 세워진 푯대를 향하여 경주를 마칠 때까지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가자.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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