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문 이 세상에서 받는 죄의 형벌은 무엇입니까?

제28문 이 세상에서 받는 죄의 형벌은 무엇입니까?

제28문 이 세상에서 받는 죄의 형벌은 무엇입니까?

답 : 이 세상에서 받는 죄의 형벌은 내적으로는 마음이 굳어 지성이 어두워지고, 상실한 마음과 미혹에 빠지는 것, 완악한 마음과 양심의 공포, 더러운 정욕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외적 형벌은 우리 죄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 모든 악이 우리 몸과 명예, 재산과 노동에 미친 해악, 그리고 죽음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세상은 왜 이렇게 힘들까?’ 혹은 ‘왜 이렇게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오늘 살펴볼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28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습니다. 여기서 내적 형벌 5가지와 외적 형벌 4가지로 나눠놨습니다만, ‘이런 죄를 지으면 이런 벌을 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말해 죄의 종류에 따라 받는 벌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그 결과 이런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형벌은 하나님의 공의의 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회개하여 의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긍휼하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죄와 형벌에서 벗어나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1. 내적 형벌

가. 굳은 마음 – 지성이 어두워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에베소서 4:18)

마음이 ‘굳다’는 것은 의지가 ‘굳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여기서 ‘굳다’는 헬라어 원문으로 포로시스(πώρωσιν)인데, 정신적 분별력이 둔하고 완고한 것, 딱딱함, 저항을 뜻합니다. 이것은 영어 성경에서 the hardening of their hearts(NIV), the ignorance of their heart로 번역되며, 하나님께 저항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음이 굳으면 총명함이 사라지고, 이해하는 힘과 지성도 어두워집니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마음도 사라지고 결국 하나님과 분리됩니다. 인간 소외는 여기서 시작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회복됩니다. 또 하나님을 알 때 사람은 진정으로 지혜로워집니다.

나. 상실한 마음

또한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로마서 1:28)

상실한 마음(ἀδόκιμον νοῦν, 아도키모스 누스)이란 뭘까요? 아도키모스란 시험에 합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타락한, 버림받은(reprobate), 부패한(depraved) 이란 뜻이 있습니다. 누스에는 마음 외에도 이성, 이해력, 사고 등의 의미도 있습니다. 따라서 상실한 마음이란 이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려고(retain) 하기 싫어하고 거부하면 사람은 바로 타락하고 부패한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죄를 향한 방종으로 치닫게 되어, 허무한 것에 굴복하고 의미 없는 것을 추구하는 비참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다. 미혹에 빠짐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데살로니가후서 2:11)

총기도 사라지고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게 되면, 쉽게 미혹에 빠져 거짓을 진리처럼 믿게 됩니다. 미혹(迷惑)은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매는 것을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지식인인데도 사이비나 이단에 빠지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면 이처럼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유일한 진리처럼 맹신하게 되는데, 진화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증명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의 대상이 아닙니다. 실체가 없는 것을 믿으라는 것은 오히려 종교에 가깝습니다. 그런 진화론을 어릴 때부터 유일한 과학적 이론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2:11~12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라. 완악해지는 마음

완악(Callouse)하다는 말에는 잘못을 계속 저지르는, 반항적인, 이전의 나쁜 행실로 돌아가는 이란 뜻이 있습니다. 시편에서는 이런 목이 뻣뻣함을 노새의 고집스러운 성질에 비유해 경계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회개도 하지 않고 계속 죄를 짓게 됩니다. 애굽 왕 바로도 하나님의 이적을 계속 보면서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도 완악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훼방할 것입니다. 그것이 악인의 특징입니다.

  • 시편 32:9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이 되지 말찌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 로마서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 출애굽기 7:3-4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고 나의 표징과 나의 이적을 애굽 땅에 많이 행하리라마는 바로가 너희를 듣지 아니할 터인즉
  • 요한계시록 9: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 요한계시록 16: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마. 양심의 공포

뉘우침 없이 계속 잘못을 저지르며 즐기지만, 죄에 따른 형벌과 심판은 두려워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한 다음 두려워했고, 가인도 아우를 죽인 뒤 두려워했습니다. 아담도 죄를 지은 다음 두려워 숨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공포심이며, 이 세상에서 당하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입니다.

바. 부끄러운 욕심 – 욕망의 노예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로마서 1:26~27)

부끄러운(ἀτιμίας· 아티미아)이라는 말은 불명예, 수치, 치욕을, 욕심(πάθη, 파테)는 열정, 욕정, 욕망을 뜻합니다. 여기서는 동성애를 비롯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비정상적인 성적 욕망을 지칭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해 성경 곳곳에는 동성애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그런 현상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곡된 욕구에 노예가 되어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보응(심판)이라고 할 수 있다.

2. 외적 형벌

가. 피조물들이 저주받음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창세기 3:17~18)

우리는 자연에 남아있는 하나님의 솜씨, 아름다운 모습에 감동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창조의 흔적일뿐입니다. 이제는 땀 흘리고 애를 써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를 생각하면 태초에 축복으로 가득했던 지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피조세계는 저주를 받게 되었고, 황폐해지고 말았습니다.

  • 로마서 8:20~22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나. 모든 악이 우리 몸과 명예, 재산과 노동에 미친 해악

그 결과 우리 몸과 이름, 소유, 관계, 노동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 28:15~18)

신명기 28장은 모세 언약의 결론에 해당합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삶의 모든 부분에 전반적인 은혜가,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삶의 모든 부분에 전반적인 저주가 미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를 보십시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다. 죽음 그 자체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로마서 6:21)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으로 죄를 벌하십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은 결국 죽게 됩니다.

  • 창세기 8: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시편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영적인 죽음은 사법적 형벌로서 죄의 삯입니다. 하지만 성도의 죽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화의 완성이요, 영생으로 들어가는 영광의 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는 것을 귀중하게 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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