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충만에 대한 오해
성령충만 聖靈充滿
성령충만. 성령으로 가득 차다. 이 말이 오히려 오해를 가져오는 것 같다. 어떤 오해인가. 성령을 어떤 에너지, 기운, 물질 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오해이다.
예를 들어 때로 사람들은 성령충만이라고 하면, 마치 완충한 배터리나 기름 가득 채운 자동차를 떠올리기도 한다. 판타지 소설이 익숙하다면 무림 고수의 내공이나 마나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성령은 어떤 기(氣)도 아니고, 에너지도 아니며, 물질은 더더욱 아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인격(신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을 가진 존재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 속하시려고 몸 찢고 피 흘려 죽으셨으며, 죽음을 이기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려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은 만남의 대상이다. 성령님의 은혜로, 사랑으로, 지혜로 나를 채울 수는 있어도 성령으로 나를 채우는 것은 어색한 표현이다.
성령 받으라
‘성령 받으라. 성령 받으라… 나는 성령 받았네’ 복음성가 가사다.
성령 하나님을 주고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사람도 주고받음의 대상이 아닌데, 하물며 성령 하나님을?
말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성령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가 아니라 어떤 기운, 에너지, 포스 비슷한 걸로 오해하거나 아니면 그 능력과 은혜에 촛점을 맞추다 보니 이런 가사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내셨고,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신다.
이미 오신 성령님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많은 종교 가운데 하나님을 선택했고, 믿기로 결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 내가 믿게된 것 역시 하나님이 나를 택정하시고 불러주시고 역사하셨기에 가능하다. 성령 하나님께서 내게 오셔서 역사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령 하나님은 이미 오셨다. 오셨기에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미 내 안에 거하고 계시다. 바울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정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린도전서 3:16)’라고 했다. 성령 하나님은 왔다 갔다 하시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이 이미 내 안에 계시는데 또 받을 필요도 없다.
성령 받으라는 찬양은 믿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이미 오신 성령님을 또 받으라는 것은 잘못하면 아니면 거듭나는 순간 외에 따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은사주의 견해에 따른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봐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충만
성령충만에 대해 학자들은 헬라어 성경을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생긴 문제라고도 한다1. 하지만 어찌됐든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충만의 의미는 분명하다.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에서 변화가 생긴다. 말씀에 순종하는 가운데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고, 좋은 나무로 자라게 된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17, 21

Footnotes
- 에베소서 5장 18절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 성령충만, 제대로 알고 있는가?, 코람데오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