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3장 가나안 정탐 / 하세롯을 출발한 그들은 바란 광야에 도착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1장의 기록과 겹치는 부분입니다. 양쪽을 다 읽어야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민수기 13장 가나안 정탐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하되 그 종족의 각 지파 중에서 족장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좇아 바란 광야에서 그들을 보내었으니 그들은 다 이스라엘 자손의 두령된 사람이라
- 그들의 이름은 이러하니라 르우벤 지파에서는 삭굴의 아들 삼무아요
- 시므온 지파에서는 호리의 아들 사밧이요
- 요셉 지파 곧 므낫세 지파에서는 수시의 아들 갓디요
- 단 지파에서는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이요
- 아셀 지파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둘이요
- 납달리 지파에서는 웝시의 아들 나비요
- 갓 지파에서는 마기의 아들 그우엘이니
- 이는 모세가 땅을 탐지하러 보낸 자들의 이름이라 모세가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라 칭하였더라
- 모세가 가나안 땅을 탐지하러 그들을 보내며 이르되 너희는 남방 길로 행하여 산지로 올라가서
- 그 땅의 어떠함을 탐지하라 곧 그 땅 거민의 강약과 다소와
- 그들의 거하는 땅의 호 불호와 거하는 성읍이 진영인지 산성인지와
- 토지의 후박과 수목의 유무니라 담대하라 또 그 땅 실과를 가져오라 하니 그 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더라 (민수기 13:1-20)
1.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내다
신명기 1장의 기록(19~32절)과 대조해 보면, 그들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파견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민수기 13장에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나오지만, 그 전에 사람들이 몰려와 ‘어떤 길로 해서 어느 성읍으로 가야 하는지 정탐꾼을 보내자’는 요구가 있었다.
일견 이 사람들의 요구는 합리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낯선 곳에 들어가는데 안전조치를 취할 정보는 손에 쥐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곳은 하나님께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땅이었다. 기적과 돌보심을 체험하며 가나안 땅 코앞까지 왔지만, 그들에게는 확신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분했지만, 이제 은혜 속에 살면서 매 순간 흔들리는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괴롭다.
모세는 처음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얻으라.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신명기 1:21)’고 했지만, 사람들의 요구를 듣고는 좋게 여기고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허락을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책망하는 대신 정탐꾼 보내는 것을 허락하셨다. 직접 보고 의심을 버리라는 뜻이셨을지도 모른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족장 하나씩을 정탐꾼으로 보냈다. 그러니 총 12명이 간 셈이다. 열두 정탐꾼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 르우벤 지파 – 삭굴의 아들 삼무아
- 시므온 지파 – 호리의 아들 사밧
- 유다 지파 – 여분네의 아들 갈렙
- 잇사갈 지파 – 요셉의 아들 이갈
- 에브라임 지파 – 눈의 아들 호세아
- 베냐민 지파 – 라부의 아들 발디
- 스불론 지파 – 소디의 아들 갓디엘
- 요셉 지파(므낫세 지파) – 수시의 아들 갓디
- 단 지파 – 그말리의 아들 암미엘
- 아셀 지파 – 미가엘의 아들 스둘
- 납달리 지파 – 웝시의 아들 나비
- 갓 지파 – 마기의 아들 그우엘
이중 유다 지파에 속한 갈렙과 에브라임 지파의 호세아 둘을 뺀 나머지 10명의 이름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처음은 이렇게 섞여 있지만, 언젠가는 결국 믿음의 백성인지 아닌지 나뉘게 된다. 어떤 말과 행동을 할지 선택의 순간마다 우리는 영적 싸움을 하게 되는 셈이지만, 어떤 말을 할까 걱정하지는 말자. 평소 하나님 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필요할 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다(마태복음 10:19).
16절을 보면 모세는 눈의 아들 호세아를 여호수아로 부르도록 한 것이 나온다. 호세아는 ‘그대여 구원하소서’로 구원해달라는 기도의 의미가 있다. 여호수아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그가 구원하시리라’는 구원의 약속을 나타낸다(매튜 헨리 주석). 또 히브리어인 여호수아(יהושוע)는 그리스말로는 이에수스(Ἰησοῦς)로, 우리말로는 예수, 중국어로는 야소(耶穌)로 번역되었다(비블리아).
모세는 그들에게 남방(네게브) 길로 해서 산지로 올라가 가나안의 지형과 인구, 식생 등을 소상히 알아 오라고 명령했다. 이는 요단 동쪽으로 우회하지 말고, 가나안을 가로지르는 산지를 타고 바로 북쪽으로 올라가라는 의미로 보인다. 또 20절에 실과를 가져오라고 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땅의 증거물을 가져와 백성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포도가 처음 익을 때라고 했는데, 7,8월쯤일 것이다(호크마 주석).
- 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에 이르렀으니 헤브론은 애굽 소안보다 칠년 전에 세운 곳이라 그곳에 아낙 자손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가 있었더라
- 또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거기서 포도 한 송이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또 석류와 무화과를 취하니라
-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서 포도송이를 벤 고로 그곳을 에스골 골짜기라 칭하였더라
-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민수기 13:21-33)

2. 정탐꾼의 보고
21절은 열두 정탐꾼의 탐지 범위(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까지)를, 22절부터 24절까지는 보다 자세한 탐지 활동을 보여준다. 마치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표현처럼 성경에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는데, 이 단이라는 곳의 원래 이름이 바로 르홉이었다.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의 북쪽 끝까지 정탐했다.
헤브론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건설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 애굽의 소안보다도 7년 먼저 건설되었다고 한다. 예루살렘 남서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소안은 여기 등장하지만 헤브론의 비교 대상일 뿐 정탐 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애굽 델타 북동부에 있는 고대도시다.
에스골 골짜기는 모세가 바랬던 대로 백성들에게 보여줄 만큼 커다란 포도송이를 따왔던 곳이다. 정탐꾼들은 포도송이를 혼자 들 수도 없어 둘이 막대기에 꿰어 어깨에 메고 올 정도로 컸다. 에스골은 잘 익은 ‘포도송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정탐을 마치고 40일 만에 가데스로 돌아왔다. 모세에게 가나안에서 가져온 과일을 보이며 정탐 결과를 보고했다.
-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 성읍이 견고하고 컸으며, 거민은 강했다. 아낙 자손을 보았다.
- 남부에는 아말렉, 산지에는 헷, 여부스, 아모리, 해변과 요단 가에는 가나안 사람이 살고 있다.
갈렙은 ‘능히 이기리라’며 백성들을 진정시켰다. 하지만 함께 갔던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땅을 ‘거민을 삼키는 땅’이며 악평했다. 게다가 몸집이 큰 그 땅 주민에게 하나님 백성을 비교하며 ‘메뚜기 같다’며 불가능한 일로 치부했다. 비옥한 땅이라는 증거와 이제까지 경험했던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그리고 약속은 그들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33절에는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giants)을 보았다는 말이 나온다. 정탐꾼들이 거인을 본 것은 분명하다. 22절에는 그 거인들의 이름도 나온다.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 셋인데, 헤브론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정탐꾼들은 이 기골이 장대한 세 거인을 보고 말로만 듣던 네피림을 떠올렸던 것 같다.
성경을 읽다 보면 거인들이 종종 보인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그 유명한 골리앗의 키는 6규빗하고도 한 뼘이 더 컸는데(사무엘상 17:4), 현대어 성경에는 3미터에 가깝다고 나온다. 또 신명기 3장 11절에 보면 바산왕 옥의 침대 크기는 9규빗x4규빗이었는데,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405×180센티미터가 된다. 오늘날 침대의 거의 2배다. 이로 미루어 봤을 때 그의 키는 3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네피림이란 말은 성경에 딱 두 번 나오는데, 민수기 13장과 창세기 6장이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세기 6:4).
아낙 자손(the sons of Anak)이 글자 그대로 네피림의 후손이란 뜻일까? 그렇지 않다. 네피림은 홍수 이전에 있던 존재다. 홍수 때 살아남은 것은 노아의 가족 8명뿐이다. 출애굽 당시 지구상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노아의 후손인 것이다.
아낙은 누구일까? 헤브론의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는데, 이는 ‘아르바의 성읍’이란 뜻이다. 아르바는 아낙 사람 가운데 가장 큰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아들이 바로 아낙이다(여호수아 14:15). 신명기에도 ‘엠 족속은 아낙 자손처럼 강하고 키가 큰 사람들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신명기 2:10). 그들은 나중에 여호수아의 손에 멸절당한다.
3. 맺는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코앞에 두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확신이 없으면 불안하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백성들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직접 눈으로 보고 오라고 대표를 뽑아 정탐하고 오도록 하셨다.
정탐꾼들은 각 지파의 우두머리였는데, 그들은 자기 눈으로 그 땅을 보고 왔으나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을 주목했다. 그들이 본 거인은 셋뿐이었지만 몰두하면 할수록 문제는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자기 스스로 메뚜기를 자처했다.
그들은 노구를 이끌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의지해 어딘지도 모르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땅을 향해 떠난 아브라함이나 80의 나이로 백성들을 책임지고 이끄는 모세의 믿음에 정말 비할 수 없는 이들이었다. 오직 갈렙만이 믿음의 눈으로 보고 사람들을 설득하고자 했다.
우리는 보라고 하는 것은 안 보고 엉뚱한 것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정탐꾼들은 정말 젖과 흐르는 땅이구나 하는 것에 감탄하고 감사하는 대신 엉뚱하게 세 명의 대장부에 주목했다. 또 성경을 읽으면서도 대장부가 셋뿐이었다는 것보다 네피림에 주목해 어떻게 노아 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홍수를 면한 것이 있지는 않았을지 의심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디모데후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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