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기도하는 세상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다가 이상한 게시물을 발견했다. 주님이라는  AI에게 궁금한 것을 물으면 말씀을 토대로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아준다는 것이었다. AI에 기도하는 세상이 된 것인가.

AI에 기도하는 세상

AI에 기도하는 세상

개인적인 질문은 회원가입이 필요하지만, 미리보기 성격의 질문 몇 개는 로그인 없이도 볼 수 있었다.  AI 답변은 ‘목회자로서 저는…’하는 말로 시작되어 관련 성구 해설과 기도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말 목회자가 하는 답변인지, 아니면 그렇게 프로그램된 것인지, 아니면 인공지능이 내놓은 답변을 가공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사람이  묻고 인공지능이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민거리가 있을 때, 우리는 형제나 이웃에게 상담하고 조언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온전한 답을 알고 제대로 된 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답답할 땐 그분께 답을 구한다. 우리는 그것을 기도라 부른다. 기도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뿐, 다른 어떤 것도 기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기도는 내가 유한한 존재임을 시인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기며 의지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행위다. 하나님 외 다른 것에 기도하는 것은 그 대상을 우상으로 삼는 것이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뢰할 수 없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른 신을 있게 하지 말라는 첫째 계명과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을 어기는 일이다.

물을 대상을 잘못 찾은 사람들

성경에 보면 이렇게 물을 대상을 잘못 찾은 임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울과 아하시야다. 하나님이 아닌 엉뚱한 것을 찾아 의지하려 한 이 둘의 결국은 멸망이었다. 

사울

사울은 사무엘이 죽은 뒤 블레셋이 쳐들어오자,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사무엘의 영을 불러올리게 했다. 사울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신접한 여인을 통해 그가 전달하는 말을 들었다(사무엘상 28:3~19). 과연 사울이 만난 것이 죽은 사무엘의 영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죽은 사람의 영이 가는 곳은 천국과 음부로 나뉘고, 이 세상과는 큰 구렁이 끼어있어 건너가거나 건너올 수 없기 때문이다(누가복음 16:26). 

신접한 여인이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는데 마치 뭐가 보이는 것처럼 사울에게 거짓을 고했거나, 귀신 같은 악한 영이 사무엘의 영을 가장하고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악한 영이 사무엘이 할 법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바알 제단 앞에선 발람의 입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예언을 하게 하셨다(민수기 23장). 

아하시야

아하시야는 이스라엘 왕이었다. 그는 어느 날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앓게 되었다. 오래도록 고통스러웠는지. 아하시야는 사자를 보내 자기 병이 나을 수 있을지 묻기로 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의사도, 하나님도 아니었다.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 이방의 우상에게였다. 바알은 주인이라는 뜻이고, 세붑은 날아다니는 파리를 말한다. 

당시 사람들은 더러운 파리가 병을 갖다준다고 여겼는데, 이방인들은 그런 파리가 병을 가져갈 수도 있을 거라 여겨 파리의 우두머리 즉 바알세붑을 신으로 섬겼다. 그런데 한 나라의 왕이라는 사람이 파리 대장에게 자기 병이 나을지 물으러 사자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사자는 에그론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물을만한 하나님이 없어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반드시 죽으리라(열왕기하 1장).’

아하시야가 물을 대상을 잘못 찾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의 아버지 아합은 악명 높은 이세벨과 결혼했는데,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은 바알 숭배자로 많은 우상을 들여왔으며, 그 부부는 일생을 하나님 대적하는 데 소모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선택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유한한 인간, 길을 잘못 찾은 사람들

사람은 유한한 존재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래서 여럿이 힘을 합쳐 정보와 의견을 나누고 경쟁을 통해 그 힘을 키워왔다. 그것이 집단지성이다. 그래도 한계를 느낄 때, 사람들은 어떤 초월적 존재에게 길을 물었다. 아득한 옛날부터 하나님을 잊은 사람들에게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 샤먼이다. 세월이 흐르며 그들은 점점 힘을 잃게 되었으나, 중세 이후 그들은 박수와 무당으로 생활에 스며들었다. 

과거에만 그랬을까. 21세기에도 사람은 유한한 존재다. 앞날을 알지 못한다. 앞일을 알기만 하면 잘 대처할 것 같고,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니 답답하다. 어떻게든 알고 싶다. 오늘날 굿판을 벌이는 사람은 극히 일부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마음에 혹은 재미로 길흉화복을 점친다. 이사나 개업을 위한 택일, 남녀의 궁합,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한 작명, 연애를 위한 타로점 등 다양하다. 관련 업종이 얼마나 성업 중인지는 길에서 마주치는 간판, 인터넷 광고 등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금하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알면서도 세상에 물들어 손쉬운 대상을 찾아 딴 길로 가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행위를 금하신다. 레위기나 신명기를 보면 이런 것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가증한 행위로 보고 금하시며 용납하지 않으심을 알 수 있다. 

  • 레위기 19:26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
  • 레위기 19:31 너희는 신접한 자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 신명기 18:10~14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그런 짓을 하는 자들의 결국은 죽음일 뿐이다.

  • 레위기 20:6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 신명기 18:12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 출애굽기 22:18 너는 무당을 살려 두지 말지니라
  • 레위기 20:27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특히 신명기를 보면 금하신 대상이 8가지로 아주 세세하다. 오늘날 우리가 오컬트(신비술. 연금술, 점성술, 점술, 마술, 마법)라고 하는 것들이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도 고대인들과 다를 바 없다. 성업 중인 관련 산업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 이제 AI가 하나 더해질 모양이다. 

인공지능이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돈이나 마찬가지다. 누가 어떤 의도로 쓰느냐가 문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리에 놓으려 하는 것이다. 주님 AI. 이름부터 주님과 인공지능을 동일시 하는 데다, 고민에 대한 답을 인공지능이 주는 형식 자체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위치에 놓는 짓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인터넷을 검색해 답을 찾는다. 검색엔진이 색인된 정보를 찾아 나열하면 우리는 거기서 내게 맞는 정보를 취사선택한다.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검색과 AI의 차이가 여기 있다. 인공지능은 자기가 정보를 재구성해 답으로 제시한다. 문제와 답 사이에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요즘 같은 추세라면 AI가 검색을 대체할 날이 머지 않을 수도 있다. 

조만간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준 답을 마치 신탁처럼 받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에서 신탁을 받기 위해 델포이에 간 사람들은 제물을 바쳐야 했다. 오늘날 인공지능에게 답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 먼 미래 같은가. 그렇지 않다. 지금도 스마트 공장에선 제품 기획 설계 – 생산 – 유통을 인공지능이 담당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등 각종 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하는데 인공지능이 빠질 수 없다.

money의 어원이 되었다는 Moneta1

인종과 사는 지역, 정치 이념과 종교가 달라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섬기는 신이 하나 있다. 바로 돈이다. 돈은 생활에 필요한 것이나 사모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어 모든 것을 바치고 일생을 끌려다니게 된다.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악한 일의 뒤에는 돈이라는 우상이 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닌다. 가장 손쉬운 먹이는 탐욕을 가진 자들이고, 돈은 이들을 낚는 아주 유용한 미끼가 된다. 여기에 걸리면 선했던 자도 악해지고, 선한 의도로 개발된 기술도 이들의 손에 들어가면 나쁘게 쓰이기 마련이다.

돈은 바닷물과 같다.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고 결국은 죽게 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만악의 근원이 된다. 믿는 사람도 돈을 사랑하게 되면 믿음을 떠나게 된다(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하지 말고 가진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히브리서 13:5) 늘 함께 하신다. AI에 기도하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레위기 20장 사형에 해당하는 죄

Footnotes

  1. 모네타는 로마신화에서 주피터의 아내 주노Juno의 별칭이다. Monitus는 경고하다, 감시하다라는 뜻이다. 그는 로마의 수호신으로 화폐 주조소를 지켰는데, 이 말은 나중에 동전, 돈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AI에 기도하는 세상”에 대한 2개의 생각

댓글은 닫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