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키 없는 갈대 상자

“방향키 없는 갈대 상자”

길을 걷다 눈에 들어온 한 동네 교회의 표어다. 아마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기도회 주제인가 보다. 그걸 보며 ‘아, 우리 인생이 이래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 인생은 방향키 없는 갈대 상자나 마찬가지다. 내 인생이라고 내가 마음대로 사는 것 같지만, 살아보니 어디 그런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 아니던가.

방향키 없는 갈대상자 현수막
나중에 다시 가서 사진을 찍어왔다.

방향키 없는 갈대 상자

많은 사람이 자기 인생은 자기 뜻대로 살 수 있을 줄 안다. 또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쓴다. 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아둥바둥 애쓸수록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만 깨닫게 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갈대 상자 안에는 방향키가 없기 때문이다.

왜 방향키가 없을까. 방향키가 있어 봤자 어린 모세에게는 무용지물이었기 때문이다. 태어나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기가 뭘 할 수 있었겠는가. 조타능력은 커녕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아기가 말이다.

노아의 방주에도 방향키는 없었다

그럼 성숙했던 노아는 어땠을까? 600살 난 노아, 하나님 명령에 따라 방주를 만든 노아는 그 방주의 키를 잡고 항해를 해 무사히 아라랏 산에 안착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노아가 만든 방주에도 방향키는 없었다. 환갑의 거의 열배를 경험한 노아도 인생에 있어 무지하고 무력하기는 어린 모세나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방주에도 방향키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디 방향키 뿐일까. 심지어는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도 없었다. 모세의 갈대 상자는 역청과 송진을 칠한 것이라 밖을 볼 수 없었고, 노아의 방주 역시 밖을 볼 수 없었다. 비가 쏟아지고 땅이 쪼개져 물이 터져 나오는 것도, 온 세상이 뒤집어지고 모든 생명이 멸절되어가는 모습도 그들은 볼 수 없었다. 창이라고는 환기를 위해 위로 난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족 외에 그들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었다. 그렇다. 위기의 순간에 사람이 바라봐야 할 것은 문제가 아닌 하나님인 것이다.

방향키가 없었다면 모세의 갈대 상자나 노아의 방주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게 한 이는 누구인가. 바로 하나님이 아니신가. 언뜻 생각하기에 노아나 모세의 엄마 요게벳은 그저 요행수나 운명에 맡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모든 걸 내어맡겼다. 하나님께선 그 믿음에 응답하시고 모든 걸 책임져 주셨다. 그들은 키를 잡고 항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

방향키 없는 갈대 바구니
아라랏산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오늘을 사는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브리서 13:8). 변하지 않으신다. 노아나 모세를 책임져 주신 하나님이 우리도 책임져 주신다. 사람이 유능해 봤자 얼마나 능력이 있을 것인가. 내 생각과 내 고집대로 인생을 헤쳐나가겠다고 애써 봤자 피곤할 뿐이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우리 인생은 방향키 없는 갈대 바구니요 궤짝 같은 방주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설 뿐이다(잠언 19:21).

아이들 학원과 성인 대상 작업실을 동시에 했을 때, 주변이 재개발에 들어갔다. 근처에 주택이 없어지니 아이들은 줄어들테고, 성인은 어치피 동네가 아닌 외부에서 유입되니 학원문은 닫고 작업실 위주로 경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누가 생각해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상하게도 어린 원생들은 점점 늘고, 성인은 줄었다.

또 학원을 운영하는 20여년간 ‘이걸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다른 것을 시도해 보기도 하고, ‘이제 그만 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나이들어 노느니 환갑 넘어서도 계속 하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마음 먹자마자 코로나로 학원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어디 그뿐일까. 삶의 고비마다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하나님,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일이라면 잘 이뤄지게 해주시고, 아니면 막아주세요’하고 기도할 때마다 응답을 주셨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오냐. 이러이렇게 하여라”하고 음성을 들려주시진 않았으나, 급물살을 타고 일이 이뤄지기도 하고 몇번의 시도에도 그 길을 막으시는 식으로 답을 주기도 하셨다.

오늘 마주친 표어를 계기로 다짐한다. 허탄한 것을 자랑하지 말자(야고보서 4:13~17). 믿음으로 하나님께 내어 맏기자. 우리 인생은 방향키 없는 갈대 상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