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7장 표류하는 인생에서 벗어나기

사무엘상 7장 표류하는 인생에서 벗어나기

  1.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櫃(궤)를 옮겨 山(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히 區別(구별)하여 여호와의 櫃(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 櫃(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二十年(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族屬(족속)이 여호와를 思慕(사모)하니라
  3.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族屬(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全心(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異邦(이방) 神(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中(중)에서 除(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向(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4. 이에 이스라엘 子孫(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除(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5. 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爲(위)하여 여호와께 祈禱(기도)하리라 하매
  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禁食(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犯罪(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子孫(자손)을 다스리니라 (사무엘상 7:1~6)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여기서 ‘사모하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듯 애틋하게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든지 우러러 받들고 마음속 깊이 따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KJV성경에선 lament, NIV 성경에는 mourne이라는 말이 쓰였는데, lament는 애석히 여기다. 한탄스러워하다, mourn은 슬퍼하다, 애도하다, 한탄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그저 ‘언약궤가 기럇여아림에 그렇게 팽개쳐져 있다니…’하며 찜찜해하는 그 정도의 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하나님을 떠난 것은 아닌 그런 마음, 일상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상태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 이렇지 않은가.

표류하는 인생에서 벗어나기

사무엘은 Do return unto the Lord with all you hearts,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한다. 일상에 매몰되고 시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선 전력을 다해 하나님께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라

온 마음을 다 해 하나님께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무엘은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우리 중에서 제하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해 하나님만 섬기라’고 한다. 다시 말해 마음 속 우상을 없애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이다.

마음속 우상이 무엇인가. 돌이나 나무를 쪼아 만든 것만이 우상이 아니다.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놓는 모든 것이 우상이다. 그것은 돈이 될 수도 있고 배우자나 자식이 될 수도 있다.

노아의 때와 같다

재림과 세상 끝의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선 ‘인자의 임함도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상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홍수가 나서 자기들을 멸망시킬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

롯의 때와 같다

또 예수님께서는 롯의 때와도 같다고 하셨다. 소돔에서 롯과 함께 살던 사람들도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었다. 역시 일상에 매몰되고 시류에 휩쓸려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롯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불과 비 오듯 쏟아지는 유황으로 멸망했다.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일상이 악한 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실 때까지 우리는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전도서 5:18)’이라고 했다.

깨어 기도하라

중요한 것은 여기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큰 폭포도 낭떠러지를 만나 떨어지기 전까지 물은 그저 담담히 흐를 뿐이다. 그것만 봐선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알 수 없다. 노아때도, 종말을 사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사무엘상 7장 표류하는 인생에서 벗어나기
나이아가라 폭포 @pexels.com

깨어있지 못했던, 그래서 죄를 죄로 여기지 못하고 악을 악으로 여기지 못하고 휩쓸려 지냈던 사람들의 결국은 죽음이었다.

그래서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로새서 4:2)’고 했고,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라(에베소서 6:18)’고 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몸부림칠만큼 힘들다. 다 같이 함께하는 것은 덜 힘들다. 그래서 기러기도 그 먼 비행을 함께 하지 않는가. 하지만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것은 힘들기 마련이다. 시대에 역행해 사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영육 간에 순결을 유지하는 것, 육신의 정욕대로 살지 않는 것…. 세상은 그런 사람을 고지식한 사람, 뒤떨어진 사람으로 손가락질한다. 앞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그런 취급을 받는 세상이 올 것이다. 지금도 많은 곳에서 믿음을 이유로 탄압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낙망치 말아야 한다. 끊임 없이 기도해야 한다. 첫째, 물살에 역행하다 힘을 놓는 순간, 그 물살에 휩쓸려 버리기 때문이다. 둘째, 기도는 믿는 자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헤엄칠 때 숨을 쉬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대로 물에 잠겨 죽게 된다.

잠자리에서 자기전에 그리고 일어나서 잠깐, 아침에 식구들끼리 모여 잠깐, 그리고 삼시세끼 식기도가 전부다. 식사기도마저 후딱 해치워버릴 때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동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기도하던 아버지, 밤이면 어두운 거실 희미한 불빛 아래 기도하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부끄럽다. 가까운 자식들에게부터 믿는 자의 본이 되어야겠다.


이 글은 내수동교회 주일설교(20204. 4. 28.)를 듣고 감상을 적은 글입니다. 설교 본문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