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17장 도가니 & 풀무

잠언 17장 도가니 & 풀무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잠언 17장 3절)

연단과 정련

연단鍊鍛은 원래 금속을 불에 달군 다음 두드려 단단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부러지지 않는 강철 검을 얻기 위해 수도 없이 두드리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이 구절 역시 은과 금을 단단히 만드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단단하게 만드신다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 구절은 단단히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순물을 걸러내 순수한 은과 금을 만드는 것처럼, 오래된 나쁜 습관과 죄성을 없애 깨끗하고 훌륭한 인격을 만드는 성화의 과정을 의미한다. 따라서 연단보다는 순도를 높이는 과정을 나타내는 정련精鍊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하겠다.

비슷한 말씀으로 로마서 5장 4절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가 있다. 이것은 고난이 인격을 단련해 소망(부활, 천국, 영생에 대한)을 확실하게 만든다는 의미로 달구고 두드려 단단하게 한다는 의미의 연단이 맞는 표현이다.

도가니와 풀무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금속을 정제해 순수한 금속을 만드는 것이 정련이다. 요즘은 전기나 화학물질을 이용해 순수한 금을 얻지만, 옛날에는 열을 가해 녹는점의 차이를 이용해 불순물을 걸러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도가니다. 도가니에 금속을 넣고 바깥쪽에서 열을 가해 녹인다.

잠언 17장 도가니 & 풀무
세공용 도가니 바깥쪽에서 열을 주는 모습

풀무는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다. 아코디언처럼 주름진 도구를 손이나 발로 접었다 폈다 해서 바람을 불어넣는 방식도 있고, 손으로 빙빙 돌려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의 풀무도 있다. 삼시세끼 같은 예능에서 불을 피울 때 사용하는 걸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동영상 4분45초 부분부터 풀무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풀무는 불을 피우고 유지하는 데 쓰는 도구지 직접 열을 내는 도구가 아니다. 따라서 풀무는 간접도구는 될 지언정 금속 정련에 직접 쓰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풀무가 도가니와 나란히 써있는 걸까?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자.

  • The fining pot is for silver, and the furnace for gold: but the Lord trieth the hearts. (킹제임스)
  • The crucible for silver and the furnace for gold, but the LORD tests the heart. (NIV)

킹제임스 성경에는 도가니와 풀무가 각각 fining pot과 furnace로, NIV에넌 crucible과 furnace로 번역되어 있다. fining pot은 melting pot이라고도 한다. 둘 다 도가니를 말한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각각 מַצְרֵ֣ף(도가니)와 כ֣וּר(용광로)로 나와있다.

frunace는 로(爐)를 말한다. 좀더 좁은 범위로는 가마 (窯)를 가리키는 kiln이라는 것이 있다. 둘 다 화덕처럼 만들어 안에 불을 때 작업하는데, furnace는 주로 재료를 가열하여 녹이는데 쓰이고, kiln은 뭔가를 소성하는데 쓰인다. 도자기 가마를 생각하면 된다. 오븐(화덕)은 비슷하지만 음식을 만들때 사용된다.

즉, 재료와 다자인 용도만 다를뿐 어떤 구조물을 만들고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열을 주어 작업하기는 모두 마찬가지다. 따라서 풀무가 아니라 로(爐)가 정확한 표현이며, 적어도 가마나 화덕 정도로는 번역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우리말로 된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 도가니는 은을, 화덕은 금을 단련하지만, 주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단련하신다. (새번역)
  • 불은 은과 금을 연단하지만 여호와는 사람의 마음을 연단하신다.(현대인의 성경)
  • 도가니가 은을, 풀무가 금을 뜨거운 불로 녹여 내듯, 여호와께서는 사람을 담금질하신다. (현대어성경)

새번역은 풀무대신 화덕으로 번역했으나, 단련이란 말에선 순수하게 정제하거나 성화한다는 뜻을 찾을 수 없어 좀 아쉽다. 현대인의 성경에선 불로 단순화 했다. 현대어 성경은 현존 사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레닌그라드 사본을 바탕으로 편집된 히브리어 성경인 BHS를 원전으로 해 번역했다고 하는데 개역성경 그대로 풀무를 사용한 것은 좀 이해되지 않는다.

맺는말

성경은 무오하나 번역은 그렇지 않다. 잠언 17장 3절 그 짧은 한 구절을 통해 알아본 것처럼, 그 어떤 번역도 완벽한 것은 없다. 내가 읽는 어떤 특정 번역이 최고라고 맹목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또는 다른 번역을 폄하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오히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에 여러 번역 성경을 두루 살펴 공부해야 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정경, 외경, 위경은 어떤 책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