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를 생각하겠나이다 (시편 119편 95절)

시편 119편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시편 119편 악인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수첩을 뒤지다 2019년 2월 7일에 썼던 일기를 발견했다. 다음은 그 때 쓴 일기다.

나를 일부러 멸하려고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세상엔 악인이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악인은 있으나 내 주변에는 없는, 뉴스에나 나오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악인에게 몹쓸 짓을 당한 사람 역시 그렇게 생각했겠지.

그런데 어제 paper.io라는 게임을 해보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비어있는 땅이 많은데 왜 굳이 내 땅을 빼았고 나를 죽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냥 두면, 좀 있다가는 내가 공격을 받기 때문이었다. 내 땅을 빼앗고 내 목숨을 노리니 내가 먼저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즉, 내가 살기 위해 남을 해치는 것이다.

간단한 게임 하나가 인생과 세상의 축약판이었다. 매너, 도덕은 여유가 있을 때 찾을 수 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쥐를 넣어두면 서로 물어 죽인다.

사람은 다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나. 창조 질서가 무너지고 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무엇으로 보장할까. 6.25때 가장 위험했던 것은 가까운 이웃이었다. 우리 부모, 조부모 세대가 경험했던 바다.

기회가 되면 우리 이웃이 내게 칼끝을 들이댈 수 있다 생각하면 아찔하다. 악한 사람이 아니라도 살기 위해 그럴 수 있다. 나는 예외일까. 나 살기를 포기하고 차라리 죽기를 선택할 수 있을까.

조카의 말이 생각난다. “인성이 나빠지는게 아니라 드러나는 거야” 명언이다.

악인이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계획하고 기회만 노리고 있을 때, 다윗은 그것을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흔들림 없이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그들의 것보다 크며,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의 능력보다 크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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