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장에 나오는 성도의 모습
오늘 주일 설교에서는 골로새서 1장 9절에서 12절 말씀이 인용되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내가 이러이러한 사람이 되도록 너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골로새서 1장 9절~12절)
바울은 골로새 성도를 위해 총 다섯 가지를 간구하고 있는데,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1.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
9절을 보면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되어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시다. 또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으며, 예수님께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또 부활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인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총명과 지혜를 성령을 통해 얻게 되기를 기도’한다고 했던 것이다.
2. 열매 맺는 사람
하나님 뜻을 바로 알아야 하나님께 순종할 수 있다. 하나님 뜻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아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순종은 하나님 뜻을 따라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동안 모든 선한 일에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
10절에 ‘기쁘시게 하고’란 내가 착한 일을 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어떤 반대급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3. 하나님을 아는 사람
10절에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increasing in the knowledge of God’란 9절의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에서 나아가 영적으로 더욱 성장해 가는 것을 뜻한다.
4. 견디고 참는 사람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한다면, 우리는 못 할 것이 없다. 사랑은 오래 참고(고린도전서 13장 4절),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아 마침내 모든 것을 이루게 한다(요한일서 4장 18절).
하나님을 알고, 그 뜻을 사랑으로 이뤄가는 동안 우리는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굴하지 않고 계속 전진해 나아가게 된다. 어디까지 전진하는가. 골인 지점, 그리스도라는 푯대를 향해 마지막 순간까지 경주를 다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주를 우리는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 (빌립보서 3장 14절)
5. 감사하는 사람
기쁨.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한다(빌립보서 4장 4절). 항상이란 말에 주목해야 한다. 마치 혼인 서약에서 듣는 말처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병들 때라도 조건에 상관없이 기뻐해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쁨은 감사가 전제되지 않고는 누릴 수 없다. 감사 없는 기쁨은 그저 순간의 덧없는 자아도취일 뿐이다. 그것은 자만과 교만으로 이어지며, 이것은 곧 망하는 지름길이 된다. 그래서 솔로몬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잠언 16:18)’라고 했다. 바울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장 12절)’고 했다.
누구에게 하는 감사인가. 하나님께 하는 감사다. 하나님을 주권자, 자존자 自存者, 나의 주인으로 인정해야 진정한 감사를 할 수 있다. 이때 감사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고백이 된다.
이 고백은 하나님을 알고 모르고와는 상관이 없다. 정말 깊숙한 오지의 미전도 종족이라면 모를까, 알아도 인정하지 않을 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만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감사할 수도 없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로마서 1장 21절)
바울의 이 말은 인간 죄성의 뿌리를 보여준다.
앞서 조건에 관계없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조건, 상황을 보고 일희일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은 그런 낱낱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바라보기에 가능하다. 우리가 인생의 경주를 다 마치고 빛의 나라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맞아주시며 그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신다.
우리는 골인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때 우리가 누릴 영광은 세상의 것과 비길 수 없다. 뿐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를 그 빛의 나라로 인도하신다. 마치 마라토너와 함께 달리며 길을 인도하고 물을 건네며 땀을 닦아주는 페이스 메이커같이 말이다.
사람들은 믿는 사람도 똑같이 고난이 닥치지 않느냐, 믿는 사람이라면 그 길이 평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고난이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다. 같은 고난도 우리가 통과하면 그것은 우리를 정금같이 단련하는 연단이 된다. 또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달리는 길이 때로 험하더라도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5장 4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0장 13절)
맺는말
그리스도인의 시종은 감사다. 감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성숙해지고 감사로 그 믿음이 완성된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가 되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시편 50장 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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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4. 11. 17. 내수동교회 주일설교 ‘완성된 자의 모습 -감사‘를 듣고 적은 글입니다. 이 글과 설교 본문 내용은 일치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