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을 누리는 비결
며칠 전 일이었습니다. 새로 시작한 일이 몇 가지 있었는데, 자리에 누워도 계속 그 일이 머릿속을 맴돌고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시편 127:2)고 하셨는데, 무슨 일일까요? 전 그날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아침 기도 :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숨 쉬는 법
다른 많은 가정들이 그렇듯, 저희도 아침 6시 40분이며 온 가족이 모여 아침 예배를 드립니다. 번듯한 격식을 갖춘 것은 아니고, 찬송가 1장, 성경 1장을 읽고 돌아가며 기도한 다음 주기도문으로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를 예배로 시작함으로써 그날 하루를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각자 일하러 세상으로 나갑니다. 마치 잠수부가 바다로 입수하는 것 같습니다. 이때 맨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숨쉬기 힘들겠지만, 공기 펌프와 연결된 호스를 달고 들어간다면 줄이 잘리지 않는 한 얼마든지 산소를 공급받으며 자유롭게 바다속을 돌아다닐 수 있겠지요.
아침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산소 호스가 됩니다. 이 호스만 튼튼하다면 우리는 바닷속에서도 자유롭게 헤엄치며 각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저녁, 잠수 헬멧을 벗을 때
그런데 일터에서 돌아왔을 땐 어떨까요? 바다에서 배 위로 올라온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고 호스를 제거합니다. 위로 올라와 마음껏 숨쉴 수 있는데도 호스로 겨우겨우 숨쉴 필요 없으니까요. 육지에 올라와서도 잠수 헬멧을 쓰고 숨을 쉰다면 이상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쉴 때에는 세상이 아닌 하나님과 접속해야 합니다. 마치 한쪽 플러그를 뽑고 다른 플러그를 꽂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지 않고서는 참된 평안, 참된 휴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날 제 머릿속은 과부하 걸린 채로 계속 새로 시작한 일을 되풀이해서 돌리고 있었던 겁니다. 플러그를 뽑고 하나님과 연결되는 쪽을 꽂지 못해서였지요. 그날 전 그것을 깨닫고 단잠을 잘 수 있었답니다.

진짜 휴식을 하려면 자리에 누웠을 땐 일, 걱정거리, 모든 세상적인 것들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우쳤습니다. 아니,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단절되어야 하겠더군요. 머리로는 알지만 직접 몸으로 깨우치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잠을 주시지 않는 것도 아니고, 저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침대 위에서도 짐덩이를 껴안고 세상의 바닷속을 가라앉고 있는 것은 저였습니다.
마치는 글 : 주님이 주시는 단잠을 누리길 바라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성경 필사로 하루를 마무리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플러그인을 꽂고 빼는 것은 하나님과 오손도손 나누는 이야기가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그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는 소소한 대화 말이죠. 정제된 기도문이 아니라도 하나님과 보내는 시간, 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 없이는 세상과 단절은 불가능하더군요. 마치 어둠을 몰아낸 다음 창을 여는 것이 아니라, 창을 열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처럼 말이에요.
진정한 휴식은 단순히 일을 쉬는 것이 아니라, 세상 걱정과의 ‘완전한 단절’에서 시작됩니다. 내 힘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멈추고 온전히 주님께 접속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단잠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마음 플러그는 어디에 꽂혀 있습니까?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께서도 모든 짐을 내려놓고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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