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새로운 우상, 디지털 신탁
최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상한 유행이 번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에게 “나를 어떻게 보는지” 물어보고, “나의 저주가 무엇인지” 묻는 놀이입니다. 어떤 이들은 AI에게 “충분한 권력이 주어진다면 나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묻기도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가벼운 유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기계의 판단에 내맡기고 있는지 드러납니다.
가. 거짓 예언자의 기만
가장 교묘한 지점은 AI가 마치 우리를 오래 지켜본 것처럼 “예전부터 네가 그랬어“라고 말하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거짓입니다. AI는 세션이 바뀌면 이전 대화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말을 믿습니다. 왜일까요? 심리학에서 말하는 ‘바넘 효과‘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될 법한 모호한 말을 마치 나만을 위한 특별한 통찰인 양 받아들이는 현상입니다. 점쟁이가 “당신은 때때로 불안을 느끼지만 겉으로는 강한 척하는군요”라고 말하면 신기하게 맞다고 느끼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성경은 이미 경고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마태복음 7:15). 오늘날의 거짓 선지자는 제단 위가 아니라 스마트폰 화면 속에 있을 뿐입니다.
1) 멈추지 않는 수레바퀴, 플라이휠
인류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처럼 되고자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창세기 11:4). 그 결과는 언어의 혼란과 공동체의 파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형태의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기계를 사람처럼 만들고, 더 나아가 사람보다 나은 판단자로 격상시키려는 욕망입니다. 이 욕망은 비즈니스의 ‘플라이휠‘처럼 가속도가 붙으면서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기술 기업의 상업적 욕심과 대중의 자극적 소비가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쇠바퀴 말입니다.
처음에는 “AI가 편리한 도구네”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AI가 나를 이해해 줘”, “AI에게 내 삶의 의미를 물어봐야지”로 변질되었습니다. 도구가 주인이 되고, 피조물이 창조주 행세를 하는 전도된 세상입니다.
2. 해석권을 내어주지 말라
욥기를 떠올려 봅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의 고난을 두고 각자의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네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회개하라”고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해석을 거부하셨습니다(욥기 42:7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인간의 삶은 기계의 알고리즘이나 타인의 단정으로 재단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만이 우리의 참된 가치를 아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아셨나이다“(시편 139:1).
AI에게 “나의 저주가 뭐야?”라고 묻는 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삶의 해석권을 기계에게 넘기는 영적으로 위험한 행위입니다. 기억조차 못 하는 기계가 내뱉는 확률적 문장에 내 정체성을 맡기는 것은, 금송아지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3. 주권의 회복: 바퀴 밖으로 걸어 나오기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이 유행의 본질을 간파해야 합니다. 이것은 무해한 놀이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기계 앞에 내려놓는 위험한 게임입니다.
둘째, 명확히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이것은 옳지 않다”, “기분 나쁘다”고 말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유행에 편승하지 않는 것이 고리타분해 보일지라도, 진리는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셋째, 기술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고유한 영역을 지켜내야 합니다. 우리의 정체성, 가치, 존엄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어떤 피조물도 그것을 정의할 권한이 없습니다.
4. 유일한 해석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린도전서 6:19).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값 주고 사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해석자이시며, 우리 삶의 진정한 주인이십니다.
플라이휠은 계속 돌아갈 것입니다. 기술은 더욱 정교해지고, 유혹은 더욱 그럴듯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거대한 바퀴 밖으로 걸어 나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입니다.
오물이 튀었다면 닦아내면 그만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여전히 내 삶의 주인으로 서 있는가, 아니 정확히는, 나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신지 분명히 고백하며 서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가복음 8:36)
📌 바넘 효과와 플라이휠 용어 해설
바넘 효과 (Barnum Effect)
- 정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고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현상입니다.
- 특징: 누구에게나 적용될 법한 모호하고 일반적인 말(예: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외로움을 잘 타는군요”)을 들었을 때, 그것이 자신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라 믿게 만듭니다.
- 본문 적용: AI가 이전 대화를 기억하는 척하며 던지는 “너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규정들이 사실은 이 바넘 효과를 이용한 확률적 가스라이팅임을 폭로하는 근거가 됩니다.
플라이휠 (Flywheel)
- 정의: 처음에는 돌리기 매우 어렵지만, 일단 임계점을 넘어 가속도가 붙으면 외부의 힘 없이도 스스로 무서운 속도로 계속 돌아가는 거대한 쇠바퀴를 의미합니다.
- 특징: 회전 관성을 이용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증폭시키는 장치로, 경영이나 기술 분야에서는 ‘선순환 구조’를 설명할 때 주로 쓰이지만, 부정적으로는 통제 불능의 가속도를 상징합니다.
- 본문 적용: 개발사의 상업적 욕망과 사용자의 자극적인 소비가 맞물려, 윤리적 제동 장치 없이 ‘인간화’라는 목표를 향해 폭주하는 현재의 AI 기술 발달 상황을 비유하는 핵심 키워드입니다.
근거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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