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6장에서 모세는 인구조사 대상이었던 성인 남자의 수 대로 땅을 분배하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슬로브핫의 딸들이었다. 슬로브핫에게는 아들 없이 딸만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면 아무런 땅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민수기 27장 슬로브핫의 딸들과 여호수아
- 요셉의 아들 므낫세 가족에 므낫세의 현손 마길의 증손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의 딸들이 나아왔으니 그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가로되
- 우리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나 여호와를 거스려 모인 고라의 무리에 들지 아니하고 자기 죄에 죽었고 아들이 없나이다
- 어찌하여 아들이 없다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 그 가족 중에서 삭제되리이까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 하매
-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니라 (민수기 27:1~5)
슬로브핫의 딸들
요셉의 큰아들 므낫세의 자손 중에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현손玄孫은 손자의 손자를 가리키는 말로, 요즘은 고손高孫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하지만 고조高祖라는 말은 있어도 고손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다. 아랫사람한테는 높을 고자를 쓰지 않기 때문에 ‘까마득한 손자’라는 뜻으로 현손이라는 말을 쓴다. 참고로 아들 – 손자 – 증손 – 현손 – 내손來孫 – 곤손昆孫 – 임손仍孫 – 운손雲孫 – 10대손 – 11대손…. 하는 식으로 나간다.
그렇다면 슬로브핫은 므낫세의 7대손 즉 임손이 되겠다. 그는 살아생전 아들 없이 슬하에 딸만 두었다. 딸들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 20세 이상 성인 남자를 기준으로 땅을 나누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땅을 받지 못하면 자기들은 당장 어디로 가서 뭘 먹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장차 결혼도 못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들이 없다고 돌아가신 아버지 상속권이 인정받지 못하는 건 부당하지 않은가? 등등.
그래서 말라, 노아, 호글라, 밀가, 디르사 다섯 딸은 회막 문으로 나아가 모세와 엘르아살, 그리고 족장들과 온 회중 앞에서 상속권을 주장했다. 회막 문 앞에 선 것은 그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어 정당한 판결을 받겠다는 의미였다. 또한 회막 중심의 생활을 했기에 다방면의 지도자들을 만나기 쉬웠던 이유도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슬로브핫이 광야에서 죽었지만, 고라와 손잡고 하나님께 반역해서 벌을 받아 죽은 것이 아니라 자연사했음을 알렸다. 그렇다면, 3절에 ‘자기 죄에 죽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사했다는 의미다. 또 여기엔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바른 인간관을 갖고 상식적으로 행동했다.
4절에 ‘우리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소서’라는 말은 ‘아버지 형제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 우리에게도 유산을 주십시오’라는 뜻이다. 모세는 그들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었다.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찌니라
-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사람이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기업을 그 딸에게 돌릴 것이요
- 딸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형제에게 줄 것이요
-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그 아비의 형제에게 줄 것이요
- 그 아비의 형제도 없거든 그 기업을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주어 얻게 할찌니라 하고 나 여호와가 너 모세에게 명한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판결의 율례가 되게 할찌니라 (민수기 27:6~10)
아들 없는 자의 상속 규정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이 옳다고 하시며, 슬로브핫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 반드시 그 딸들에게 슬로브핫 몫의 유산을 물려주라고 하셨다. 6절에 나오는 ‘아비의 기업’은 슬로브핫이 물려받을 몫을 말한다.
그리고 이번뿐 아니라 앞으로도 쭉 적용할 수 있도록, 아예 아들 없는 자의 상속 규정을 율례로 정해 주셨다. 여기서 ‘율례’를 뜻하는 ‘미쉬파트’는 공식적으로 엄중히 선언된 법을 가리킨다.
- 아들 없이 죽은 사람의 유산은 딸에게 상속할 것
- 딸도 없으면 고인의 형제에게 줄 것
- 형제도 없으면 고인의 아버지의 형제들에게 상속할 것
- 아버지의 형제도 없으면 가장 가까운 친족에게 물려줄 것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의 돌아간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제 너희가 내 명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나의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가로되
-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컨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으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 그를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그들의 목전에서 그에게 위탁하여
-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
- 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좇아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 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하여 여호수아를 데려다가 제사장 엘르아살과 온 회중 앞에 세우고
-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하였더라 (민수기 27:11~23)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멀리서 바라보게만 하시고 그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죽을 것을 알려주셨다. 가데스 광야 므리바 샘에서 있었던 사건 때문이었다. 그 말을 들은 모세는 어떤 반대나 항의도 없이 그대로 순종했다. 오직 자기가 죽고 난 다음 하나님 백성이 목자 없는 양같이 되지 않도록 그들을 이끌 지도자만 구했다.
11절의 아바림 산은 요단강 동편, 사해의 북동쪽의 아바림 산맥을 일컫는다. 모세는 이 아바림 산맥의 북쪽 비스가산의 정상인 느보 봉우리에서 최후를 맞는다(신명기 34장). 이곳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에 최적의 장소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모세가 가나안 땅에 입성할 수는 없더라도 이제까지 백성을 이끌어온 그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바로 목전에 있음을 보여주셨다. 이것은 ‘네가 그때 혈기만 부리지 않았으면 저 좋은 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 네가 놓친 게 뭔지 한 번 봐라. ㅉㅉㅉ…’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수고를 인정하고 치하하시며 품어주시는 장면이다. 이제 모세는 그만 쉴 때가 되었다.
15절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는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신 분, 생명의 주인이심을 말한다. 생명을 주신 분도, 가져가시는 분도 모두 하나님이시다. 불평할 이유가 없다. 모세도 그랬다.
17절에 ‘출입하다’는 말은 들고 나며 일상 업무를 활발하게 수행한다는 관용적 표현이다. 백성의 지도자 혼자 출입하는 것도 아니고 백성들까지 출입하도록 이끌 지도자를 세워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목자 없는 양’은 어떤 양인가. 아무런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위험에 노출된 채 떠돌아다니며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불쌍한 양무리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백성들이 이런 상태가 되어버릴 까 걱정했다.
하나님께서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신, 즉 성령에 감동된 자임을 알려주시며 그를 만백성 앞에서 지도자로 세우라고 하셨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대로 그를 엘르아살과 온 백성 앞에 세우고 안수하여 다음 지도자로 세웠다.
21절의 ‘우림의 판결법’은 ‘우림과 둠밈의 판결법’을 줄여 이르는 말이다. 우림(빛)과 둠밈(완전함)은 일종의 제비로, 평소 제사장의 흉패에 넣어두었다가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 이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살폈다. 어떤 방법으로 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 정도로 사용 빈도가 극히 적을 뿐 아니라, 선지자들의 예언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백성들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모세와 같은 위치는 아니었다.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고 음성을 들어 그 명령대로 행했지만, 여호수아는 그렇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가 있을 땐 제사장 엘르아살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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