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확신은 항상 유지되는가? —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1문

구원의 확신은 항상 유지되는가? 대요리문답 81문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1문 참된 신자는 자신의 구원을 항상 확신하는가?

이 글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1문을 바탕으로, 참된 신자도 왜 때로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수 있는지,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성도를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붙드시는지를 성경적으로 설명합니다.

81문 모든 참된 신자는 현재 자신들이 은혜의 상태에 있는 것과 장차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을 항상 확신합니까?

답 : 은혜와 구원에 대한 확신은 믿음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된 신자들도 그것을 얻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리고, 확신을 얻은 후에도 여러 가지 근심, 죄, 유혹, 탈선으로 인하여 약해지거나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들과 항상 함께하시고 도우시기 때문에 참된 신자들은 결코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1. 구원의 확신은 오래 걸린다

구원은 말씀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며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나 자신의 생각(주관)과 하등의 상관이 없습니다. 예를 들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놀리는 어른들 말이나 그런 말을 듣고 부모에게 서운함 있던 아이가 ‘나는 주워온 아이인가?’ 의심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그 아이가 친부모자식 관계가 변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더구나 하나님은 육신의 부모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구원이라는 것도 너무나 큰 문제이기에 구원에 대해 확신하는 것은 설사 구원받은 참 성도라도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믿음은 점점 자라납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윗도 고통으로 탄식한 적이 있습니다.

  • 시편 88:14 여호와여 어찌하여 나의 영혼을 버리시며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나이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취소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구원은 잘못된 것이고, 만세전부터 우리를 택하고 부르신 하나님의 그 뜻과 계획 역시 잘못된 것이 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2. 확신도 약해지거나 잠시 중단될 수 있다

믿음이 성정함에 따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결국 충만한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확신도 수많은 유혹과 성도 스스로의 죄, 또는 어떤 섭리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약해지기도 하고 또 잠시 중단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지금 이런 상태인데, 하나님한테 버림 받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도 있는 것입니다.

  • 시편 77:6~9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 시편 31:22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사탄 마귀는 이런 점을 교묘히 공격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2:12)’는 이때 가장 많이 이용되는 구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너 스스로 구원을 잃지 않게 잘 지켜라’는 뜻으로 읽습니다. 뭘 해야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뭘 해서 구원을 지킬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두려움의 대상은 ‘내가 잘못해서 지옥가면 어쩌지? 구원을 잃으면 어쩌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여기서 두려움경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내 안에 계시면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한 경외를 말합니다.

그럼 이루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루라는 말은 헬라어 원문으로 κατεργάζεσθε (katergazesthe), 즉 ‘이미 주어진 것을 밖으로 드러내어 실현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말하자면 work for가 아니라 work out your salvation이 되겠습니다. 다시 말해 구원을 이루라는 것은 구원을 완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을 삶의 현장에서 드러내어 펼쳐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은 네게 달려있다’며 성도의 견인을 파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바울은 빌립보서 1장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확신하노라(빌립보서 1:6)’라고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가장 좋지 않은 습관은 성경을 직접 읽지 않고 어떤 구절 하나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내놓은 사람의 말을 철석같이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앞 뒤 문맥을 연결해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3.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면서 늘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간혹 넘어지고 또 두려운 마음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완전한 절망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놔두지도 않으십니다.

  • 요한일서 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요한이 말한 하나님의 씨는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범죄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범죄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된 신자라면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참된 신자가 아닐 것입니다.

이 말은 헬라 원문으로 ποιεῖ (poiei), ἁμαρτάνειν (hamartanein)이며,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지속적, 습관적 삶의 패턴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의 속 뜻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 가운데 머무르며 사는 삶을 살지 않는다.”, “죄 짓고 살던 옛 방식대로 계속 살 수 없다”로 읽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려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고 우리 안에 계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선 자비하시고 긍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이사야 54:7~10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는 내게 노아의 홍수와 같도다 내가 다시는 노아의 홍수로 땅 위에 범람하지 못하게 하리라 맹세한 것 같이 내가 네게 노하지 아니하며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기로 맹세하였노니 산들이 떠나며 언덕들은 옮겨질지라도 나의 자비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나의 화평의 언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맺는말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1문을 통해, 구원에 대한 확신은 사람마다 다르며, 한 사람 안에서도 늘 일정하지 않다. 때로는 약해지거나 일시적으로 중단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환경이나 육신의 정욕으로, 때론 악의적으로 말씀을 왜곡시킨 정보를 만나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구원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게 하는 계기로 삼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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