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예루살렘
소돔과 고모라 그리고 예루살렘. 소돔과 고모라는 그 악함으로 멸망한 도시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곳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타락했고 예루살렘은 거룩했을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
예루살렘이 처음부터 거룩한 것은 아니었다. 그곳은 원래 가나안 땅에 살던 여부스 족속의 땅이었고, 이름도 그 족속 이름과 같은 여부스였다. 그랬던 것을 다윗이 정복하고 이름을 예루살렘으로 바꿨다. 그때까지 예루살렘에 살던 여부스 사람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가(여호수아 15:63) 그제서야 차지하고 다윗성이라 이름 붙였던 것이다(사무엘하 5:7).

예루살렘이 거룩했던 것은 그곳에 하나님의 성막과 성전이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타락하기 시작했다. 세월이 한참 흐르고 나서도 아니었다. 다윗의 바로 다음 왕 솔로몬 때부터였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방여자를 좋아한 솔로몬은 늙으막에 베니게 족속의 아스다롯과 암몬 족속의 말곰 같은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열왕기상 11:1~5). 그의 뒤를 이은 르호보암은 솔로몬과 이방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우상숭배를 일삼아 백성들까지 여기 물들었다. 언덕마다 산당을 세우고 풍년을 빌며 종교적인 매춘을 일삼았고, 심지어 이스라엘 성소에도 남창과 여창이 우글거렸다(열왕기상 14:22~24).
그 뒤로 아사, 요아스, 히스기야, 요시야 같은 훌륭한 왕들이 나와 종교개혁을 단행하고 국가를 위기에서 건져냈다. 하지만 그것도 그때뿐이었다. 에스겔 8장을 읽다 보면 그들의 타락상에 놀랄 수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께선 성회와 악을 아울러 행함을 견디지 못하신다(이사야 1:13). 하나님께선 선지자들을 통해 여러차례 경고하셨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예루살렘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의 바탕은 본디 악하다. 그것은 악인이 선한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선함도 거룩함도 우리에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것이다(에베소서 2:3).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든 그 손을 놓으시면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다시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의인)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세기 18:32)’고 하셨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했다.
소돔과 고모라의 기준이 의인 10명이었다면, 예루살렘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예레미야 5장에 나와 있다. 놀라지 마시라. 단 한 사람이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 (예레미야 5장 1절)
여기서 우리를 돌아보자. 서울에서, 우리나라에서 찾을 수 있는 의인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다. 위기의 순간마다 우리를 구하신 것은 이 말세의 때 우리에게 담당시킬 사명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될지, 아니면 토기장이가 깨트려 버릴 그릇이 될지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지에 달려있다. 우리는 지금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때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문제가 아니다. 모든 통치자의 주권자, 모든 왕들의 왕이신 하나님만 바라야 한다.
다니엘이 말하여 가로되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다니엘 2: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