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풍이 오던날 새벽 단상斷想
지난주 금요일. 태풍1이 오던날 새벽이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기에, 캄캄한 창밖을 보니 비가 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창을 열어볼까 아니면 일기예보를 확인해 볼까 하다 그냥 성경 필사부터 하기로 했다.
문득 노아가 생각났다. 40주 40야를 퍼붓는 비, 땅의 깊음의 샘들이 터지는 순간에도 밖을 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보게 하셨다. 비가 내린 기간만 40일이다. 물이 빠지기까지는 거의 일년이 걸렸다. 방주 안에 있던 노아네 식구들과 동물들은 밖을 볼 수 없었다. 방주에는 창문이 없었다2.
하나님 말씀을 나라는 항아리에 길어 붓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일용할 양식이 비단 육신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거라 생각된다. 사람들은 세상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질서는 나날이 흩어지고 자연은 파괴되고 인간은 타락하고 점점 더 악해진다.
요즘들어 변증학에 매력을 느낀다. 세상학문과 언어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학문이다. 오로지 Logos이신 하나님만이 진정 logical하시다. 하나님 자체가 말씀이신데 어떻게 비논리적이 될 수 있을까.
성경 66권은 그 장구한 세월 각각 다른 사람의 손으로 쓰였어도 일관된 주제를 갖고 일관된 논리를 갖는다.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한 분이신 하나님이 저자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대필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성경 하나도 제대로 읽고 깨닫기 어렵다. 세상 학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변증을 하기 위해선 그 둘을 다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특별한 학자들의 일만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해야하는 의무가 아닐까.
누가 우리의 믿음과 소망에 대해 그 이유를 묻는다면 무엇이라 답할까. 그것은 질문 받기 전에 미리 준비해 놓아야 한다.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거나 틀린 답을 준다면 질문한 사람에게도 도리가 아니고 믿는 사람으로서도 직무를 유기한 셈이 될 것이다.
영성과 지성은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뒷받침해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내가 몰라서 비논리, 비합리적인 반쪽짜리 맹신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미력하지만 힘을 내어 조금씩이라도 공부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