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7문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어떻게 비참해졌습니까?
답 :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요, 사탄에게 매인 종이며, 이 세상에서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모든 형벌을 마땅히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1.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 – 영적 죽음
원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허물없이 교제하며 하나님의 임재와 자비를 충만하게 누렸다. 하지만 죄를 짓고 타락하고 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숨게 되었다. 영적인 장벽이 생기고 교제가 끊어져 버렸다. 결국 그들은 에덴에서 쫓겨나고 영생도 누리지 못하게 되었다.
사람의 첫째가며 가장 높은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제1문 사람의 첫째가며 가장 높은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자 사람은 이를 이룰 수 없게 되었다. 존재 목적을 상실한 사람이 무엇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겠는가. 자기를 위한 삶은 채워도 채워도 갈증을 느끼게 한다. 터진 웅덩이를 채우는 헛된 수고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잃은 이에게는 참된 기쁨도 행복도 온전히 누릴 수 없다.
- 창세기 3:8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 창세기 3: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에베소서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 예레미야 2: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2.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대상이 됨 – 공의의 발현
진리와 정의의 하나님께선 거룩하시다. 악과 함께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침묵하실 수 없다. 이는 스스로의 거룩함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선 죄를 미워하시기에 죄된 본성을 지닌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주님께선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 로마서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 신명기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3. 본질상 진노의 자녀
사람은 모두 죄 중에 잉태되어 태어나 처음부터 죄성을 지닌 존재, 타락한 존재다. 하나님은 염두에 없고, 마음에 자기 자신만 가득하여 자기를 우상으로 삼아 욕심대로 행하는 타락한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걸작이 타락한 뒤에는 본질적으로 불쾌한 존재, 진노의 자녀가 되고 말았다.
- 에베소서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사탄에게 매인 종
사람이 타락한 다음에 이렇게 욕구에 사로잡혀 살게 된 것은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 사탄의 종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사탄은 원래 거짓말 장이요 거짓의 아비(요한복음 8:)다. 첫 사람 아담을 속였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를 꾀어 삼키려고 밤낮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사람은 스스로를 ‘자유 의지를 갖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탄에게 매여 지배받는 상태에서 악한 일만 생각해 낸다. 주변을 돌아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인간이 맞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를 사탄이 주관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를 가리켜 ‘노예 의지’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사탄의 활동 범위 역시 하나님의 허용 범위 안에서 엄격히 제한된다.
▶ 아우구스티누스와 정통 교부들의 자유의지 상실 주장 : 기독교 강요 강좌/ 한국 칼빈-개혁신학연구소
-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 디모데후서 2: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5.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서도 모든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 존재
일부 사람들은 죄를 단지 심리적인 문제나 죄책감으로만 치부하기도 한다. 우리가 죄인이라고 할 때 그 죄를 그저 심리치료 대상이라거나 훌훌 털어버리면 자유롭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요 영원한 형벌(데살로니가후서 1:9)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 마태복음 25: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27문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현대판 펠라기우스주의적 입장을 취한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사랑의 하나님이 진노하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영혼 불멸이나 인격적인 사탄의 존재도 부정한다. 하나님의 진노는 공의에서 비롯된 거룩한 분노다. 인간의 감정적 분노와 다르다.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나, 모두 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