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어떤 분은 유튜브에서 그림은 하나도 없지만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는 대단한 여행기로 이 책을 소개했다. 하지만 내게 그분만큼의 상상력은 없었는지 그런 효과는 별로 없었다. 대신 나는 방대한 정보와 시니컬한 유머가 가득한 책으로 소개하고 싶다.

아,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지도를 함께 펼쳐놓고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앞서 말한 이유로 단숨에 읽기 어려운 책이다. 지도에 작가의 여정을 따라 표시해 나가면서 읽어보자. 중단했다 다시 읽더라도 수월하게 읽히고, 또 함께 여행하는 기분까지 느낄 수 있다. 어쩌면 학교 다닐 때 들었던 지리 수업이 떠오를 수도 있다. 첫 장을 펼치면 그림지도가 나오긴 하지만, 그거로는 어림도 없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차례

  • 1부 오지 속으로 – 시드니 단상, 인디언 퍼시픽 철도, 72시간 황무지 기차여행
  • 2부 부메랑 코스트 – 대륙의 역사, 블루마운틴, 캔버라, 로드 하우스, 애들레이드, 모닝턴 반도, 멜버른, 알파인 국립공원, 애버리저니
  • 3부 변두리를 돌아서 –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노던 테리토리, 울루루, 앨리스 스프링스, 퍼스, 샤크 만

빌 브라이스는 이 책을 시작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최신 소식을 듣기 쉽지 않은 나라로 소개한다. 그 말을 들으니 내가 호주에 대해 알고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정말 단편적인 것들이었다.

  • 중국이 미국과 밀착한 호주의 석탄 수입을 금지했는데 타격을 받은 나라는 호주가 아니었다는 소식
  • 호주가 넓은 국토에 비해 인력이 부족해 백호주의를 포기하긴 했지만, 근래 들어 다시 빗장을 조이기 시작한 것 같다는 이야기
  • 해안가 도시를 빼면 개발되지 않은 오지가 훨씬 넓다는 것
  • 땅은 넓고 인구밀도가 낮아 라디오로 원격 수업을 한다는 이야기
  • 영국이나 일본처럼 차량이 좌측통행을 하고,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다는 것
  • 우유를 넣은 커피는 플랫 화이트, 블랙커피는 롱 블랙
  • 4시면 퇴근/시간 외 수당 확실
  • 호주 원주민 애버리진
  • 캥거루, 왈라비, 코알라, 딩고, 쿼카
  • 태양, 자외선, 산불
  • 상어, 파도타기, 산호초
  • 니콜 키드먼, 휴 잭맨
  • 에덴으로 돌아오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
  • 유배지로 시작했다 독립한 영연방의 나라 – 국기 한쪽에 유니언 잭
  • 크리스마스가 한여름인 나라 / 가을 -겨울-봄-여름

골드러시와 중국인, 그리고 백호주의

115쪽을 보면, ‘1850년대 시작된 골드러시로 말미암아 오스트레일리아는 강제수용소 역할을 끝내고 한 국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라고 나온다. 1861년 무렵에는 2만 2천 명이 각자 큰 양탄자만한 넓이의 땅을 받아 채굴을 했는데, 나오는 금의 양이 대단치 않았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백인 광부들은 중국인을 공격했다. 그때 죽은 중국인의 수는 알 수 없으나, 유럽 광부 1명이 목숨을 잃은 기록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호주는 백호주의를 채택해 1970년대까지 비유럽인의 이주가 근본적으로 금지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유럽보다 아시아에 가까운 나라인데도 말이다.

카지노

멜버른에 있는 크라운 카지노는 규모뿐 아니라 수익 또한 어마어마하다. 연 매출 10억 달러로 빅토리아주는 총수입의 15%를 도박에서 벌어들인다고 한다. 208쪽에 나오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노닥거리거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반면 이곳 사람들은 온통 열중해 있었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보공 나방

과거 애버리저니 음식에는 지방이 부족했다. 그래서 몸의 85%가 지방으로 이뤄진 이 보공 나방을 별미로 먹곤 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나방을 뜨거운 재에 구워 통째로 먹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버터 맛이 난다고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작가가 그 지역 관리자에게 확인한 결과 그저 나방 맛이었다고 한다.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고.

산불

229쪽을 보면 ‘이따금 난다’는 산불로 1985년에는 그레이트 디바이딩 산맥의 줄기인 그 지역에서 15만 헥타르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작가가 나중에 찾아보니 15만 헥타르란 요세미티, 그랜드 티턴, 시온, 레드우드 국립공원을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 면적이었다고 한다.

애버리저니

애버리저니는 호주 원주민이다. 제임스 쿡과 선원들이 그들과 처음 접촉했을 때, 애버리저니 대부분이 이방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듯, 어제나 내일을 표현하는 낱말이 없었다. 의식주 가운데 의와 주는 없었고, 재산 개념도 없었으며, 먹을 걸 재배하거나 짐승을 키우지도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우리가 사라지는 것뿐인 듯했다’고 제임스 쿡은 기록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그들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 퀸즐랜드 학교 교재에는 애버리저니를 ‘정글의 야생 생물’에 비유했고, 1967년까지 연방정부는 인구 조사를 할 때 애버리저니를 포함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맨 처음 유럽인들이 그 땅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무렵 애버리저니 인구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한 세기 동안 엄청나게 줄었는데, 가장 큰 타격은 유럽 사람들이 가져온 병균이었다. 천연두, 늑막염, 매독, 수두, 독감에 애버리저니는 저항력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질병에서 살아남은 애버리저니를 유럽 사람들은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대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기에 유럽인들에게 있어 애버리저니는 사냥 대상이었다. 총으로 쏴 죽이는 건 예사였고, 스트리키닌을 탄 식량을 주기도 했다. 이것은 1805년 뉴사우스웨일스에서 정착민에게 범법행위를 저지른 원주민을 추적해 마땅한 처벌을 가하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세월이 흘러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1836년 헨리 댄거 농장에서 소도둑을 찾아 나섰던 사람들이 애버리저니 야영지를 발견해서는 남자 28명과 여자, 아이들을 한데 묶어 끌고 다니다 느닷없이 총칼로 학살했다.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두 번째 재판에서(첫 번째는 15분만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7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백인이 애버리저니를 죽여서 사형에 처해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애버리저니에 대한 잔인한 행위가 끝나게 되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것이 음성적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기록된 것은 1928년 앨리스 스프링스의 기마 경찰이 17~70명의 애버리저니를 추격해 살해한 것이었다.

처음에 말한 1861년 골드러시 때 중국인들이 당했던 일을 생각해보자. 1770년대 제임스 쿡이 에버리저니를 처음 접촉한 이래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에버리저니는 자연재해나 야생동물,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해왔다. 이런 호주 사람들의 눈에 당시 중국인들은 어떻게 보였을지 궁금하다. 안타까운 것은 작가가 확인한바, 호주에 있는 많은 박물관 중에서 에버리저니나 중국인 희생자에 관한 자료나 언급은 찾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혹시나 반성이나 참회 대신 그저 잊혀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색다른 퀸즐랜드 사람들

작가는 서퍼스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에 ‘색다른 퀸즐랜드 사람들’을 언급한다. 지난 40년 동안 호주에 대해 쓴 모든 책 어딘가에는 퀸즐랜드 주민들이 색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화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주로 1950년대 퀸즐랜드 호텔에 묵었던 미국인 투숙객 이야기였다. 호텔에서 내놓은 식은 고기와 감자에 실망한 미국 사람이 샐러드를 곁들일 수 있냐고 했더니 웨이트리스가 놀람과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면서 다른 손님들에게 ‘저 인간은 지금이 크리스마스인 줄 아나 봐요’라고 했던 이야기. 우기에 퀸즐랜드를 방문한 영국인(프랑스인 버전도 있단다)이 객실에 도착했는데 물이 10센티미터나 차 있는 걸 발견하고 프런트 데스크에 알리자 ‘침대는 안 젖었잖소’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 눈으로 보면 입이 떡 벌어지는 이야기다. 외부인이 흔치 않았던 시절, 고립되다 시피 살던 사람들이라 손님맞이나 영업 마인드에 서툴러서였을까. 문득 영화 마파도가 생각났다. 그 할머니들이라면 어땠을까. 우악스럽고 욕 잘하는 할머니들에게 그랬다면? 아마 샐러드라면 몰라도, 방에 물이 찼다고 하는데 이부자리는 안 젖었지 않냐는 얘기는 안 할 것 같다.

부산 사는 박호리님

326쪽을 보면 부산 사는 박호리님이 나온다. 1938년에 문을 연 델리 워터스의 퍼브에서 술을 진탕 마신 빌 브라이슨은 필름이 끊겼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난 그는 친구에게서 자기가 내년 여름 한국에서 온 어떤 가족과 집을 바꾸기로 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러고는 ‘남한이래, 북한이래?’하고 묻는다. 셔츠 주머니에 넣어 둔 명함을 본다. ‘박호리, 육류 도매업자, 부산광역시….’ 그리고 작가 필체로 ‘6월 10일부터 8월 27일까지 문제없음’ 이라고 적힌 명함을 확인한 작가는 서둘러 앨리스 스프링스로 가는 도로를 달린다. ㅎㅎ

전인미답의 오지란 없다?

1860년 존 맥두얼 스튜어트라는 사람이 황량함의 절정이라 할만한 대륙 중심부에 도착했을 때, 애버리저니 세 사람이 프리메이슨의 비밀스러운 상징물을 내보이며 그들을 맞이했다. 며칠 후, 부츠를 벗고 발을 주무르며 쉬던 대원 앞에 와람문가 부족민 몇 명이 다가오더니 그 발에 부츠를 다시 신기고 능숙하게 끈을 묶은 다음 만족스럽게 떠났다. 오지 탐험대는 자기들이 그곳을 지나는 최초의 문명인(애버리저니 존재는 알았을 테니)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들 이전에 이미 앞서갔던 유럽인, 그것도 프리메이슨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사실 전인미답의 오지란 없다.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와 호주를 발견하기 전에도 애버리저니와 마오리 인들이 있었고, 아메리카 발견 이전에도 인디언과 인디오가 있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류는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해졌다. 오지의 기준이 무엇인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인가.

울룰루/에어스 록

울룰루(Uluru, Uluru). 혹은 에어스 록은 광활한 평지에 우뚝 솟은 평평한 바위로, 무수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어릴 적, 에어스 록이라는 이름을 먼저 알게 되었는데, 멋대로 air’s rock이라 짐작해버렸다. 공기 바위라니, 얼마나 신비로운가. 하지만 진짜 이름은 Ayers Rock. 발견 당시 총리였던 Henry Ayers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이어즈 록이나 에이어즈 록이라고 할 것이지. 에어스 록이 뭔가. 헷갈리기 딱 좋게.

작가는 울룰루를 보려고 이틀 반동안 2,090 킬로미터를 운전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고속도로로 325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서울 – 부산을 세번 왕복하고도 남는 거리. 그런 곳을 열흘에 1천명이 방문한다고 한다. 당연히 근처 호텔이나 유스호스텔에는 비수기가 없고 방값도 비싸다. 석양에 붉게 물드는 바위를 보려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다.

바람에 풍화되어 다른 모든 것은 사라지고 없을 때, 이 바위는 홀로 남았다. 심층풍화에 의한 핵석이 지표에 노출이 될때 도움형의 석산 형태를 띠게 되는 이런 것을 보른하르트라고 한다. 이렇게 되려면 절리가 거의 발달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절리가 조밀하게 발달된 지형이라 보기 어렵다.

스쿨 오브 에어

앨리스 스프링스에는 스쿨 오브 에어가 있다. 공기 학교가 뭘까 싶지만. 방송중인 스튜디오 입구에 ‘ON AIR’라고 쓰여있는 걸 떠올리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그렇다. 말로만 듣던 방송통신 학교다.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 흩어진 스쿨 오브 에어 17곳의 조상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오스트레일리아 아이들은 라디오와 무전기로 수업하면서 말이 끝날 때 마다 ‘오버!’로 마무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흥미로웠다.

작가가 체험한 바에 의하면 멀리 은하계에서 보낸 희미하게 들리기도 하고, 크고 분명하게 들리기도 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런 수업을 하루 최대 30분씩 듣고, 일주일에 10분 개인 수업을 받는다고 한다. 그나마 애버리저니 아이들은 참여하지 않는다. 호주 정부는 애버리저니 어린이들을 미래의 기둥, 아니, 국민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햇볕에 타버린 나라

I Love a sunburnt country,

A land of sweeping plains,

of ragged mountain ranges,

of droughts and flooding rains.

– Dorothea Mackeller

햇볕에 타버린 나라에서, In a Sunburnt Country는 이 책의 원래 제목이다. 1908년 오스트레일리아 시인 매켈러가 쓴 시의 일부다. 글 끝에 있는 동영상은 그 시를 낭송한 영상인데, 호주의 풍경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조금씩 읽다보니 한 권 읽는데 2주나 걸렸다. 여행기이지만 호주 관광명소를 알리는 책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호주에 가고 싶어 설레는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브루스 채트윈의 파타고니아가 문득 생각난다. 하지만 훨씬 재미있다. 그리고 넘쳐나는 정보와 문제 제기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다.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 알에이치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