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2:14-15 물이 든 인생 물이 빠진 인생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저의 포도원을 저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저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호세아 2:14-15)

1.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나가심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절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직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가장 타락한 시기였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2지파는 남 유다에 속해있고, 북 이스라엘에는 10지파가 속해있었다.
14절에 ‘저를’은 북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 북 이스라엘을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신다. 거친 들은 멸망, 절망, 포로지를 의미하며, 개유(開諭)란 사리를 알아듣도록 잘 타이른다는 뜻이다.
15절의 ‘아골 골짜기’의 아골은 괴롭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등지고 교만하게 살던 북이스라엘에게 혼내시려는 것 아닌가. 이해가 된다.
2. 위로하고 포도원을 주시며 소망의 문으로 삼아 주심
그런데 거친 들로 데리고 나가시더니 위로해 주시고, 거기 더해 포도원을 주시며, 그 아골 골짜기 괴로운 곳을 오히려 소망의 문으로 삼아주시겠다고 하신다. 이건 무슨 말인가? 곧 앗수르의 침략으로 망해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다 아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렇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북이스라엘에게 벌을 주시려는 참이다. 회초리를 들기 직전의 상황이다. 잠깐 부모의 마음으로 생각해보자. 부모가 회초리를 들 때는 자식을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서다. 어디까지나 잘 되기를 바라며 훈육을 하기 위한 것이지 화가 나서 위해를 가하려는 게 아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이땅에서 북이스라엘 10지파를 없애버리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하나님 품으로, 바른 길로 돌아오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거친 들로 데려가는 것은 그래야 하나님 말씀이 그들 귀에 들리기 때문이다. 시각을 차단하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 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은 전성기를 누려봤으나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어둠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집중할 차례다.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면 비로소 귓등을 스치고 그냥 지나갔던 말씀이 뇌로, 가슴으로 들어와 박혀 깨우치게 된다. 그때 비로소 소망이 생기고, 고난의 자리가 소망의 문으로 바뀌게 된다. 소망은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는 출발점이 된다. 하나님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는 자리가 바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자리다.
3. 귀 있는 자만 들린다
예수님께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던 것을 생각해보자. 머리 양쪽에 귀 안 달린 사람이 어디 있나.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귀 있는 사람은 들으라는 말씀은 귀 없는 사람이 있다는 뜻 아닌가.
귀가 있다고 다 들리는 건 아니다. 우리는 sound가 아니라 mind를 듣기 때문이다. 지성이나 지능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의 문제다. 관계의 문제라는 뜻이다.
아기의 말을 잘 알아듣는 것은 뛰어난 석학이 아니라 그 아이의 부모가 아닌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랍비나 제사장이 아니라 갈릴리의 어부들이었다. 하나님과 관계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4. 물이 든 인생
그들이야말로 평생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는 이들이 아닌가. 어째서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것인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으로 물들지 않고 세상과 자기 욕심에 물들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볼 때, 우리는 늘 감동한다. 어쩌면 이렇게 귀엽지? 하고 말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말씀을 듣고 감동해야 한다. 감동이 없는가?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나도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물들은 건 아닌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물이 아주 푹 들어버리면 내가 물이 든 줄도 모르게 된다. 우리는 이런 상태를 중독되었다고 한다. 중독된 사람은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조종당하는 셈이다.
니코틴 중독, 알콜 중독, 카페인 중독, 탄수화물 중독…. 내가 좋아서 담배를 피고 술이나 커피를 마시고 단 맛을 찾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정신이 들어 끊으려고 해도 잘 끊어지지 않는게 중독 아닌가.
세상에 물들고 욕심에 물드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그건 누가 봐도 문제라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중독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바로 교회일이나 구제에 중독되는 것이다. 나쁜 일도 아니고 좋은 일에 열심을 내니 언뜻 보면 잘못된 점을 깨닫기 어렵다. 한 가지 기준이 있다. 역시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이 먼저인가 살펴보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들도 한때 복음 선포보다 구제와 공궤(供饋, 식량배급)에 과도하게 열심을 낸 적이 있었다. 그들은 곧 사태를 깨닫고 일곱 집사를 세워 그 일을 맡긴 다음, 기도와 말씀전하는 것에 전념하기로 했다.
이번주 주일예배 설교는 ‘호세아 2:14-15 물이 든 인생 물이 빠진 인생’ 이었다. 원래는 17절까지였으나, 설교내용 일부를 15절까지만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설교 본문과는 차이가 있다. ▶︎ 내수동교회 주일예배 (2023.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