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6장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수기 6:24~26)
민수기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구절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축복할 때 이렇게 해라’며 알려주신 것이다. 이 말씀을 처음 본 것은 오래전 동서네 집에 가서였다. 2층 아이들이 자주 모이는 자리에 이 구절을 써 붙였는데, ‘네게’ 라는 말이 들어가는 자리에 대신 그 자녀 3명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일일이 적어놓았더랬다.
“여호와는 (소연,진형,진성)에게 복을 주시고 (소연,진형,진성)을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소연,진형,진성)에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소연,진형,진성)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마도 아이들은 이 오가며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얼마나 축복하고 계시는지 느끼고 그 마음이 쌓이게 되었을 것이다. 이번 주 설교 시간에 이 말씀을 다시 접한 나도 새삼 얼마나 은혜로왔는지 모른다.
우리는 날마다 은혜와 축복 속에 살아간다. 은혜 아니면 우리는 한순간도 살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숨 쉴 공기, 마실 물을 주신다.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비바람에 상하지 않는 은혜도 주신다. 수많은 병균과 자연재해, 사람이 초래한 인재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신다. 하지만 그런 축복들은 모두 별책부록에 불과하다. 모든 은혜와 축복의 정점은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손님을 맞이할 때 가장 큰 대접은 직접 나가 얼굴을 내밀고 맞는 것이다. 공항으로 아무리 좋은 차를 내보내고 좋은 방을 잡고 최고급 음식으로 대접하더라도 내가 직접 나가 환영하는 것만큼 큰 환영은 없다. 결혼식이나 장례때도 마찬가지다. 축의금이나 조의금 액수가 아무리 커도 직접 가는 성의보다 크다 할 수 없다.
우리는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가장 좋은 것과 덜 좋은 것, 가장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역시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비춰주시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좋고 또 중요한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46)’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외면하셨기 때문이다. 어째서 외면하셨나. 바로 죄인 된 우리를 향하셨기 때문이다. 무슨 말로 이 은혜를 대신하고 갚을 수 있을까. 그저 황망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값없이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무나도 큰 값을 치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은혜를 외면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치르신 값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짓이다. 감사한 만큼 자신감을 갖고 더욱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2025. 3. 16. 내수동교회 주일설교를 듣고 느낌과 생각을 주관적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설교 내용과 일치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