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3문: 현세에서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누리는 교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3문: 현세에서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누리는 교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3문은 성도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이미 그리스도와 영광의 교제를 시작하고 있음을 가르칩니다. 이 교제는 완성된 영광이 아니라 장차 누릴 영광의 첫 열매이며, 그 증거로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 양심의 평화, 성령 안에서의 기쁨, 영광의 소망을 누립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은 악인은 하나님의 진노를 의식하고, 정죄하는 양심의 공포와 다가올 심판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83문은 현세에서 이미 시작된 영광의 교제가 성도와 악인을 근본적으로 구분 짓는 기준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83문 무형 교회의 회원들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교제는 어떤 것입니까?

답 : 무형교회의 회원들은 현세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광의 첫 열매들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자신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들이고, 그분 안에서 그분이 충만히 소유하고 계시는 그 영광을 함께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보증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 양심의 평화, 성령 안에서의 기쁨, 영광의 소망을 누립니다. 반면에 악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수하시는 진노에 대한 의식, 양심의 공포, 심판에 대한 두려운 기대가 사후에 그들이 당할 고통의 시작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은 성도와 그리스도의 교제를 은혜의 교제와 영광의 교제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지난 글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2문을 통해 그 교제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시작되어 죽음 직후에도 끊어지지 않으며, 부활의 날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교제로 완성된다는 것을 알게 되았습니다. 83문에서는 그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현세에서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누리는 교제에 대해 살펴봅니다.

1.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까닭

구원받은 참 신자, 즉 무형 교회 회원이라 하더라도 현세(現世)를 사는 동안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82문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의 많은 유혹과 신자 자신에 남아있는 죄의 잔재 때문입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누릴 영광을 미리 맛볼 수는 있습니다. 대요리문답은 이것을 가리켜 영광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 땅에서 미리 천국에서 나눌 영광의 첫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는 그 지체가 됩니다. 그렇게 하나의 포도나무가 되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각양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이라고 합니다.

  • 에베소서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 교제를 통해 누리는 것(교제의 증거)

연대보증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가 있습니다. 빚의 액수나 빚지는 자의 갚을 능력과 관계 없이 보증하는 사람이 그 빚을 전부 갚겠다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사람들끼리 보증하지 말라는 말씀이 여러번 나옵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서로 보증을 서는 것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재산 손실은 물론이고 관계를 파괴하기까지 하는 지혜롭지 못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무 능력도 없는 우리의 보증이 되십니다. 물론 이는 세상 계약의 보증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책임지신 언약적 보증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보증이 되어 우리는 그리스도와의 교제 속에서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

먼저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선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려고 이 땅에 오셨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알기에 우리는 각종 세상 염려에서 해방됩니다. 또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없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이 세상에는 심판이 날이지만, 우리에게는 영광의 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분리된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책임지느라 늘 염려, 불안, 걱정에 시달리며 삽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인생, 하나님 사랑을 느끼며 확신 속에 살아가는 인생은 복됩니다.

  • 로마서 5: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 고린도후서 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나. 양심의 평화

여기서 말하는 양심의 평화란 죄책감 없이 마음이 편한 상태가 아닙니다. 구원의 확신에서 오는 평안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속죄가 나의 죄에 충분히 적용되었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정죄받을 것이 없다는 확신에서 오는 평안입니다.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양심이 둔해지고 자기 합리화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양심의 평화는 죄의 문제가 해결됨을 알고, 양심이 정결해져서 입니다.

때로 죄의 잔재와 세상의 유혹으로 양심이 흔들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 로마서 5:1~2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1)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 성령 안에서의 기쁨

세상에는 참된 기쁨이 없습니다. 죄라는 장벽으로 하나님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성령 안에서의 기쁨이란 상황이나 성취 같은 외적 조건에 좌우되는 세상의 기쁨과 다릅니다. 조건과 관계 없이 유지 가능한 내적 확신을 말합니다. 이 기쁨은 감정의 지속이 아니라,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다시 붙들게 되는 구원의 근거에서 나오는 기쁨입니다.

  •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라. 영광의 소망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우리는 장차 부활하여 완전한 영광의 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을 성령 안에서 확신하며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 로마서 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 로마서 8:23~24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 빌립보서 3:20~21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 히브리서 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3. 악인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

신자들이 현세에서 그리스도와의 교제에서 누리는 것이 바로 교제를 나누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양심의 평화나 참된 기쁨, 또 영광의 소망 같은 것들을 알지 못합니다.

대신 그들은 진노를 의식하고 양심에 공포를 느끼며 심판에 대해 두려움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이런 본능적 두려움을 잊기 위해 방탕과 불의와 경건하지 못한 방식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외면합니다. 이것은 단지 성격이나 기질의 차이가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여부에서 비롯되는 근본적 차이입니다.

가. 진노에 대한 의식

악인이 아무리 하나님을 부인해도, 자기 자신이 거룩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과 적대적 관계에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진노가 아직 집행되지 않았어도 그의 의식 속엔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나. 양심의 공포

여기서 양심은 정죄하는 양심입니다. 악인은 죄가 해결되지 않았고, 덮일 피도 없으며 중보자도 없기에 그 양심은 계속 죄를 일깨웁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고통스럽기만 할 뿐 회개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가 마지막에 스스로 뉘우쳤지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대신 목숨을 끊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을 부인했어도 눈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켰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봤지만, 유다는 자기 죄만 봤습니다. 둘의 차이는 죄의 크기가 아닙니다. 바로 양심이 향하는 방향에 있습니다.

📌 회개와 양심의 공포의 차이

회개양심의 공포
하나님께로 돌아감자신 안으로 말려 들어감
죄를 인정하며 은혜를 구함죄에 눌려 탈출구를 찾지 못함
생명으로 이어짐죽음으로 이어짐

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

죄가 없는 사람은 떳떳하므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사람은 법정이 두렵습니다. 자기 앞에는 곧 심판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피할 길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양심의 공포가 내 안에서 들리는 현재의 괴로움이라면, 심판에 대한 두려움은 다가올 판결을 예감하기에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 히브리서 10: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 로마서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 로마서 2:15~16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 창세기 4: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 마태복음 27:3~5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맺는말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83문은 신자는 여전히 죄의 잔재와 연약함을 안고 이 땅을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로서, 이미 영광의 첫 열매를 누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정죄에서 해방된 양심의 평화를 누리며, 성령 안에서 기뻐하고, 장차 완성될 영광을 소망하는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교제는 눈에 보이는 성공이나 형통으로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양심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기쁨의 근거가 무엇인지, 미래를 어떤 소망으로 바라보는지가 그 증거가 됩니다. 현세에서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누리는 교제는 죽음 이후에야 시작되는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서 신자의 삶 속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나는 은혜의 현실입니다. 이것이 83문이 말하는 ‘현세에서 영광 중에 그리스도와 누리는 교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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