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들기 전, 필사의 시간
전 잠자리에 들기 전, 필사의 시간을 갖습니다. 제가 필사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눈으로만 읽었더니 말씀이 너무 술술, 휘리릭 지나가버렸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읽었는데 남은 게 없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꼭꼭 씹어 먹듯 읽어보려고 펜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밤, 잠들기 전에 한 구절 앞에 앉는 일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몇 해 해보니 두 읽기는 서로 다른 것을 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눈으로 읽으면 전체 맥락이 보이고 진도가 나갑니다. 대신 스치고 지나갑니다. 필사는 한 구절을 깊이 만나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 그렇게 해서 쌓인 노트를 보면 뿌듯합니다. 대신 오래 걸리고, 잘라 읽다 보니 맥락을 놓쳐 엉뚱하게 해석하거나 지엽적인 데 몰두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둘을 함께 하려 하고 있습니다 — 흐름은 눈으로, 머문 구절은 손으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편 46:10)
이 말씀은 원래 고요한 자리에서 주신 말씀이 아니라고 합니다. 산이 흔들리고 바닷물이 솟구치는 한복판에서 “손에서 힘을 빼라”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요즘 우리 사는 세상도 어딘가 그렇습니다. 여름은 해마다 낯설어지고, 계절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저는 오래 블로그에 글을 써온 사람인데, 글이 사람을 만나던 길도 어느새 바뀌어 애써 쌓아온 것이 흔들리는 걸 지켜보는 중입니다. 크고 작게, 익숙하던 것들이 자꾸 변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면 만년필을 듭니다. 세상이 어떻게 흔들렸든, 잠들기 전 한 구절 앞에 앉는 시간만은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필사는 대단한 훈련이라기보다, 가만히 있는 연습인 것 같습니다. 손은 움직이지만, 붙잡고 있던 것은 잠시 내려놓는 시간.
그 시간에 곁에 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한 주의 끝 금요일 밤이라면 더 어울릴, 브러시 드럼과 업라이트 베이스, 부드러운 피아노가 서두르지 않는 속도로 흐릅니다. 화려한 연주 없이, 말씀보다 앞서지 않도록.
오늘 밤, 한 구절이면 충분합니다. 오늘 당신에게 머문 말씀은 무엇이었나요?
Weekly Reset — 매주 금요일, 한 주를 조용히 정리하는 음악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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