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 그리스도께서 죽을 때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49문 그리스도께서 죽을 때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49문 그리스도께서 죽을 때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습니까?

답 : 그리스도는 유다와 제자들에게 버림받으셨고,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배척받으셨으며, 빌라도에게는 정죄를, 핍박자들에겐 고문을 당하셨습니다. 또 죽음의 공포와 어둠의 세력과 싸우셨고,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를 느끼고 감당하셨으며, 자기 생명을 속죄 제물로 드리셨고,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와 저주받은 죽음을 견디심으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잉태와 출산의 순간부터 전 생애에 걸쳐 당신을 낮추셨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을 때, 자신을 어떻게 낮추셨을까요?

1. 유다와 제자들에게 버림받으심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는 로마 세력을 몰아내고 유다 민족을 해방하려는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얼마나 극렬했냐 하면, 설사 동족이라 할지라도 방해가 되는 사람은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구약 성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메시아를 정치적 해방자로 여겼고, 예수님을 자기들이 생각하는 그런 존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그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시며 여러 이적을 행하셨으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분이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왕으로 추대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완성되리라 여겼던 사람들은 실망했습니다. 급기야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제사장들에게 팔아넘기고야 말았습니다.

  • 마태복음 26:14~16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 마태복음 27:4 이르되 내1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2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스가랴는 이스라엘 백성이 선지자의 고가로 은 30을 주고 복음과 결별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그 정도로 하찮게 여겼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에게 은 30에 팔고, 그 돈은 다시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 데 쓰임으로 스가랴와 예레미야(예레미야 19장, 32장)를 통해 하신 말씀이 이뤄졌습니다.

  • 스가랴 11:12~14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리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 은 30개=종의 몸값? 출애굽기 21장 32절에 ‘소가 만일 남종이나 여종을 받으면 소 임자가 은 30 세겔을 그의 상전에게 줄 것이요 소는 돌로 쳐서 죽일지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근거로 당시 종의 몸값을 받고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다고 하지만, 이는 맞지 않습니다. 첫째, 인플레이션과 은 함량 때문입니다. 둘째, 출애굽기의 은 30 세겔은 일반적인 종의 몸값이 아니라 사고로 죽은 종의 몸값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은 30이란 것은 그 액수 자체보다 그 의미가 중요합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율법상 사고로 죽은 종에게 지불되는 몸값에 불과한 금액에 팔리셨다는 것은, 유다 민족에게 가장 하찮고 멸시받아 마땅한 존재로 배척당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고 하겠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제자들이 예수님을 돕기 위해 애쓴 것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태복음 26:33)’라 했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말고의 귀를 베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요한복음 18:10).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자 나머지 제자들과 함께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 마태복음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 보다 자기 안전이 중요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함께 있게 하시려고(마가복음 3:14) 세우신 제자들에게 배반당하고 버림받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림받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2. 세상의 조롱과 재판 과정에서의 고난

예수님께서는 창조주시요 또한 구세주이십니다. 세상은 그를 경배해야 마땅했지만, 도리어 예수님을 조롱하고 배척했습니다. 멸시하여 침을 뱉고, 빈정거리며 욕하고 채찍질(Flagellation)했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했던 채찍질은 보통 채찍질이 아닙니다.

📌 플래그룸 (Flagrum)이라는 이 채찍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는데, 여기에는 납으로 만든 추(Plumbatae)나 날카로운 뼛조각(Ossicula), 쇠 갈고리 등이 매듭지어 만든 특수한 채찍이었습니다. 이 채찍은 죄수의 등에 가해질 때, 가죽을 찢어내고 근육과 뼈에 깊은 상처를 입혔습니다. 납 추나 뼛조각이 충격을 주고 피부를 파고들었으며, 반복적인 채찍질은 살점을 뜯어내고 심한 출혈과 쇼크를 유발하여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로마의 채찍질은 단순히 고통을 주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기 전 극도로 약한 상태로 만들기 위한 잔혹한 형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도 조롱과 모욕은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하물며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어떠셨을까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지닌 예수님께서는 덜 힘들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묵묵히 인내하셨던 것은 힘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낮추셨던 것은 모두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이사야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누가복음 18:32~33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무죄라는 것을 알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했지만, 민란이 두려워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정치적 필요로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고 부정한 판결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는 손을 씻고 자기의 무죄함을 주장했으나, 판결을 내린 당사자로 그는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출애굽기 23:6~7)”하신 하나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마태복음 27:24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 마태복음 27:26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 요한복음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 죽음의 공포, 어둠의 세력들,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

겟세마네에서

예수님께서는 100% 온전한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피처럼 땀을 흘리신 모습을 보면, 대속을 위한 죽음 자체의 공포와 그로 인한 인간적인 갈등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고뇌의 순간, 예수님은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하며 철저한 순종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이런 갈등은 누가 가져다준 것입니까. 바로 사탄 마귀 악의 권세가 예수님의 사역을 좌절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겟세마네는 어둠의 세력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 최후의 시험을 가했던 영적 전쟁터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지고 가야 할 전 인류의 죄의 짐을 포기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끈질긴 유혹과 도전과 씨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통스러운 영적 싸움을 기도로 이겨내시고, 십자가의 길을 확고하게 선택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더욱이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것인지, 하나님과 단절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이 최초의 죄부터 마지막 죄까지, 인류의 모든 더러움과 악함을 자신의 몸에 짊어지셨고, 그 거대한 죄의 무게는 예수님의 영육을 짓눌렀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신 순간, 예수님께서는 전 인류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가장 끔찍한 형벌을 고스란히 감당하셨습니다. 그 순간, 얼마나 끔찍하셨을지, 얼마나 괴로우셨을지 우리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습니다.

  • 누가복음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 자기 생명을 속죄 제물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더불어 십자가의 모든 고통과 수치와 저주를 감내하며 자신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가 자발적으로 대신 죽는다고 속죄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은 죄를 모르는 인간이자 하나님이시기에 가능했던 특별한 죽음이었습니다.

  •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 이사야 53: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십자가를 생각하면 구원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당시 십자가형은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저주 받은 자에게 내려지는 가장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로마 시민에게는 내려지지 않는, 노예나 중죄인에게만 내려지던 형벌이었습니다.

우리는 손끝에 가시 하나만 찔려도 아프다고 합니다. 예수님 손과 발에는 큰 못을 박았습니다. 그대로 달면 손이 찢어져 떨어지게 되니, 밧줄로 묶습니다. 위아래로 당겨지니 횡격막을 움직일 수 없고, 숨을 쉴 수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숨을 쉬어보려고 움직이면 그러지 않아도 아픈 손과 발에 고통이 더해집니다. 내리쬐는 태양과 서서히 일어나는 출혈로 사람은 타들어 가는 갈증 속에 서서히 죽어가게 됩니다.

십자가형이 로마의 형벌이지만, 유대에도 비슷한 형벌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무에 다는 형벌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무에 달립니까?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나무에 달리는 형벌을 받음으로써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까지 되도록 낮아지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빌립보서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 신명기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맺는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유다를 비롯한 제자들에게 배신과 버림을 당해야 했고, 세상의 조롱과 배척, 핍박자의 고문, 빌라도의 정죄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또한 죽음의 공포와 어둠이 세력과의 영적 싸움을 하셔야 했고, 하나님의 진노의 무게를 견디고 참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선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을 당하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간혹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숭고한 사람을 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죄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선 자격과 능력이 되셨기에 그분의 죽음은 특별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낮아지심이야말로 우리가 누리는 영원한 높여짐의 근거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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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가룟 유다
  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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