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3, 24장 저주대신 축복만 3번 한 발람

민수기 23, 24장에선 발락의 의뢰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러 간 발람이 저주 대신 축복만 3번 한 장면이 나온다. 발락과 발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 없었다. 발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축복이었다. 하나님께서 복주신 자를 사람이 저주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이스라엘에 한 별이 나올 것을 예언하였다. 이 별은 다윗,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민수기 23, 24장 저주대신 축복만 3번 한 발람
Balaam’s Blessing/CC

민수기 23, 24장 저주대신 축복만 3번 한 발람

  •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하매
  •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준비한 후에 발락과 발람이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리니라
  •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나는 저리로 갈찌라 여호와께서 혹시 오셔서 나를 만나시리니 그가 내게 지시하시는 것은 다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하고 사태난 산에 이른즉
  •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시는지라 발람이 고하되 내가 일곱 단을 베풀고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렸나이다
  • 여호와께서 발람의 입에 말씀을 주어 가라사대 발락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찌니라
  • 그가 발락에게로 돌아간즉 발락과 모압 모든 귀족이 번제물 곁에 함께 섰더라
  •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편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처할 것이라 그를 열방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 야곱의 티끌을 뉘 능히 계산하며 이스라엘 사분지 일을 뉘 능히 계수할꼬 나는 의인의 죽음 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하매
  •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대가 어찌 내게 이같이 행하느냐 나의 원수를 저주하라고 그대를 데려왔거늘 그대가 온전히 축복하였도다
  •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민수기 23:1~12)

1. 발람의 첫번째 축복

발락을 따라 바알 산당에 올라간 발람은 거기에 일곱 단을 쌓고 제물을 바치라고 했다. 발람은 암몬 땅 브돌에 사는 메소포타미아 사람이었다. 우상을 섬기는 동방 사람들은 산 꼭대기 높은 곳에 높은 단을 쌓고 우상에 제물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 성막에서 제단을 계단이 필요할 정도로 높이 쌓지 못했던 것과 사뭇 다르다(출애굽기 20:26).

발락은 발람의 말에 따라 7개의 단을 쌓고 매 단마다 각각 수송아지와 수양 한 마리씩을 바쳤다. 일곱은 이방인들에게도 완전한 수로 여겨졌던 것 같으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거룩함을 의미하는 그런 믿음은 없었다. 어쨌든 발람은 바알의 산당에서 이방 관습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발람에게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신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여러 우상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음을 뜻한다.

3절에 발락을 번제물 곁에 서도록 한 것은 백성의 대표로 제사에 참여하도록 한 것이고, 발람이 저리로 간 것은 이방 술사들이 신접하거나 신탁을 받기 위해 했던 것처럼 한적하고 높은 곳에 따로 떨어져 있던 것을 말한다. 그는 하나님과 그 힘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믿음은 없는 술사에 불과했다. ‘사태난 산’은 벌거벗은 산, 고지대 등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발람에게 임하셨다. 발람은 그런 하나님께 자기가 얼마나 정성들여 제물을 바쳤는지 당당히 고한다. 정성을 다해 빌고 있으니 그에 합당한 답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우상은 사람 사이는 주고 받는 사이다. 사람의 심령이나 도덕과는 상관 없이 그저 제물을 바치고 답을 내놓는 기브 앤 테이크의 관계다. 그래서 발람은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임하신 것은 발람의 치성에 감동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간교한 술사를 통해서도 역사하실 수 있음을 그들에게 알리고 싶어하셨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사단의 활동을 통해서도 당신의 종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신다(욥1:6-12).

발람은 발락 앞에서 노래를 지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스라엘을 축복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다. 그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쓰인 것에 불과했다.

7절의 ‘동편 산’은 발람의 고향 아람 땅 메소포타미아를 가리킨다. 셈의 아들 아람이 하란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정착했기 때문에 그곳을 아람, 밧단 아람이라고 불렀다. 밧단 아람은 ‘두 강을 낀 아람 평야’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의 친척들이 살던 곳이다.

발람은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은 자를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어찌 꾸짖을꼬’라고 했다. 저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영어 성경에는 ‘How can I curse’라고 번역되어 있다.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이스라엘을 망치는 꾀를 내어 타락하게 했다(민수기 31장).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그를 평가하고 있다.

  • 느헤미야 13:2 (뇌물을 받고 저주한 사람) ;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 베드로후서 2:15 (불의의 삯을 사랑한 자) ;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바랆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
  • 유다서 1:11 (어그러진 길로 간 자) ;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9절에 ‘홀로 처해서 열방 중 하나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고독하게 고립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거룩한 민족으로서 열방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영광과 특권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이스라엘을 점령했던 제국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앗수르도 바벨론도 페르시아도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약소국이었던 이스라엘은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남지 않았는가.

10절의 ‘야곱의 티끌’은 창세기에 약속(28:14)된 대로 티끌처럼 많아진 야곱의 후손 즉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사분지 일’은 넷으로 나눈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하나고, 그 진영 하나만으로도 위압적인데 전체는 얼마나 대단하겠냐는 의미다. 심지어 발람은 순간 얼마나 감동했는지, ‘의인의 죽음 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 하고 노래했다. 의인의 죽음은 하나님 곁에서 영원히 사는 영생으로 가는 통로가 아니겠는가.

저주하라고 불렀는데 거꾸로 상대를 축복하고 자기도 그렇게 살다 죽었으면 한다니, 발락으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발락에게 발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입에 말씀을 주셨기에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처음부터 그는 ‘예언이란 것이 자기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 하는 것(민수기 22:38)이라고 했으니 발락도 어쩔 수 없었다.

2. 발람의 두번째 축복

  • 발락이 가로되 나와 함께 그들을 달리 볼 곳으로 가자 거기서는 그들을 다 보지 못하고 그 끝만 보리니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하고
  • 소빔 들로 인도하여 비스가 꼭대기에 이르러 일곱 단을 쌓고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리니
  •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내가 저기서 여호와를 만날 동안에 여기 당신의 번제물 곁에 서소서 하니라
  • 여호와께서 발람에게 임하사 그 입에 말씀을 주어 가라사대 발락에게로 돌아가서 이렇게 말할찌니라
  • 발람이 와서 본즉 발락이 번제물 곁에 섰고 모압 귀족들이 함께 있더라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 발람이 노래를 지어 가로되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찌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나를 자세히 들으라
  •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수 없도다
  •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이 때에 야곱과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할찐대 하나님의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뇨 하리로다
  • 이 백성이 암사자 같이 일어나고 수사자 같이 일어나서 움킨 것을 먹으며 죽인 피를 마시기 전에는 눕지 아니하리로다 하매
  • 발락이 발람에게 이르되 그들을 저주하지도 말고 축복하지도 말라
  • 발람이 발락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은 내가 그대로 하지 않을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더이까 (민수기 23:13~26)

발람이 이스라엘 진영의 규모에 질린것 처럼 보이자, 발락은 진영이 다 보이지 않고 끄트머리만 보이는 곳으로 가서 홀가분하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며 발람을 소빔 들 비스가산으로 데려갔다. 소빔은 ‘파숫꾼들의 들’이란 뜻으로서, 사해 북동쪽비스가 산을 접하고 있는 고원지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비스가 산’은 아바림 산맥의한 봉우리로서 여러 봉우리로 둘러 쌓여 있었다<21:20>. 그러므로 이곳에서 당시 이스라엘 진영이 머물고 있는 모압 평지(22:1)를 보면 산 봉우리들로 가려지기 때문에 이스라엘 진영 전체를 볼수 없게 된다(호크마 주석).

거기서도 역시 메소포타미아 식으로 산 꼭대기에 올라가 일곱 단을 쌓아 단마다 수송아지와 수양을 하나씩 바쳤고, 발람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 발락의 기대와 달리 그 노래 역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내용이었다.

18절의 십볼의 아들은 발락을 가리킨다. 발람은 여기서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는 명문장을 남긴다. **식언(食言)**은 거짓말을 뜻한다. 사람은 그때그때 거짓을 말한다. 당시엔 거짓이 아니더라도 나중에 지키지 않으면 거짓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선 말씀을 변개치 않으시고 반드시 지키신다. 거짓말이 될 수 없다. 늘 진실하시다. 거짓은 마귀의 속성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을 말하는 거짓의 아비다(요한복음 8:44~47). ‘후회’는 자신의 말과 행위에 대해 전의지적으로 깊이 뉘우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않으신다’는 것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선 죄인인 우리를 오직 믿음으로 죄없다 하시고 의롭게 여기신다. ‘왕을 부르는 소리’는 백성들의 환호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축복을 인간으로서는 어떻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떤 사술이나 복술로도 불가능하다. 사술(邪術)을c secry 마법이란 뜻인데, 어떤 현상을 통해 앞날을 예측하는 것을 가리키고, 복술(卜術)은 divination 점을 쳐서 예언하는 것을 말한다.

24절에 나오는 ‘이 백성이 암사자, 수사자 같이 일어난다’ 는 부분은 야곱이 아들 유다에게 남겼던 유언과 같다. 창세기 49장 9절에 보면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고 했다.

발람에 이번에도 이스라엘을 축복하면서 다른 민족들 위에 설 것을 예언하자 발람은 질려버렸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을 축복하지도 저주하지도 말고 그냥 입다물고 있으라고 할 정도였다.

3. 발람의 세번째 축복

  • 발락이 발람에게 또 이르되 오라 내가 너를 다른 곳으로 인도하리니 네가 거기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기를 하나님이 혹시 기뻐하시리라 하고
  • 발락이 발람을 인도하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에 이르니
  •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여기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준비하소서
  • 발락이 발람의 말대로 행하여 매단에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리니라
  • 발람이 자기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심을 보고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아니하고 그 낯을 광야로 향하여
  • 눈을 들어 이스라엘이 그 지파대로 거하는 것을 보는 동시에 하나님의 신이 그 위에 임하신지라
  • 그가 노래를 지어 가로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 야곱이여 네 장막이, 이스라엘이여 네 거처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그 벌어짐이 골짜기 같고 강 가의 동산 같으며 여호와의 심으신 침향목들 같고 물 가의 백향목들 같도다
  • 그 통에서는 물이 넘치겠고 그 종자는 많은 물 가에 있으리로다 그 왕이 아각보다 높으니 그 나라가 진흥하리로다
  •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 꿇어 앉고 누움이 수사자와 같고 암사자와도 같으니 일으킬 자 누구이랴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을 것이요 너를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을찌로다 (민수기 23:27~민수기 24:9)

발람이 두번이나 저주대신 축복을 했지만, 삼세판이란 생각이 들었는지 발락은 포기하지 않고 세번째 도전을 감행했다. 그는 다른 곳으로 옮겨서 저주를 시도하면 혹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우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생각이지만, 우상의 비위를 어떻게 해서든 맞춰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 보려는 평소 사고방식의 발로라 생각된다.

그들은 여전히 우상을 섬기는 방식대로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이번에 발람은 좀 다른 방법을 시도했다. 24장 1절에 ‘전과 같이 사술을 쓰지 않고 그 낯을 광야로 향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고 복을 내리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깨닫고는 사술을 써서 신탁을 받으려고 애쓰지 않고 아예 자기 의지만으로 저주를 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선 발람이 부른다고 오시고 부르지 않는다고 오지 못하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께선 발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임하셔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예언을 하도록 하셨다. 3, 4절의 ‘눈을 감았던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는 성령에 압도된 상태의 발람 자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4~9절에 묘사된 것을 보면 발람의 눈이 향하고 있는 것은 진을 치고있는 이스라엘이지만, 그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가나안 땅에 정착할 이스라엘, 더 나아가 하나님과 연합된 모습을 그리고 있음을 알게된다. 아각은 아말렉 왕의 칭호다. 바로가 애굽 왕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를 축복하는 자마다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마다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은 창세기 12장 3절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이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은 메시아가 그를 통해 오셨기 때문이다.

  • 발락이 발람에게 노하여 손뼉을 치며 발람에게 말하되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내 원수를 저주하라 함이어늘 그대가 이같이 세번 그들을 축복하였도다
  •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그대의 곳으로 달려가라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케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가 그대를 막아 존귀치 못하게 하셨도다
  • 발람이 발락에게 이르되 당신이 내게 보낸 사자들에게 내가 고하여 이르지 아니하였나이까
  • 가령 발락이 그 집에 은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찌라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간 임의로 행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말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 이제 나는 내 백성에게로 돌아가거니와 들으소서 내가 이 백성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 것을 당신에게 고하리이다 하고
  • 노래를 지어 가로되 브올의 아들 발람이 말하며 눈을 감았던 자가 말하며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 그 원수 에돔은 그들의 산업이 되며 그 원수 세일도 그들의 산업이 되고 그 동시에 이스라엘은 용감히 행동하리로다
  • 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나서 남은 자들을 그 성읍에서 멸절하리로다 하고
  •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아말렉은 열국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하고
  • 또 가인 족속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너의 거처가 견고하니 네 보금자리는 바위에 있도다
  • 그러나 가인이 쇠미하리니 나중에는 앗수르의 포로가 되리로다 하고
  • 또 노래를 지어 가로되 슬프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리니 그 때에 살 자가 누구이랴
  • 깃딤 해변에서 배들이 와서 앗수르를 학대하며 에벨을 괴롭게 하리라마는 그도 멸망하리로다 하고
  •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민수기 24:10~25)

세번씩이나 발람이 자기 뜻을 어기고 이스라엘을 축복하자 발락은 화가 나 손뼉을 치며 좋은 기회를 놓쳤다며 당장 너 살던 데로 돌아가라고 했다. 손뼉을 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분노와 경멸과 조소의 의미를 담은 상징적 행동이다. 욥기에도 박장대소하며 무시무시하게 몰아치는 바람(27:23)이 나온다.

하지만 발람은 전에도 말했다시피 하나님이 시키시는 말 밖에 할 수 없다며 자기 변호를 한 다음 오히려 모압과 에돔, 아말렉, 가인(겐) 등 주변 족속의 미래를 예언한다. 17절의 한 홀, 한 별은 다윗 왕, 더 나아가 그리스도를 뜻한다. 깃딤 해변은 지중해 동쪽에 위치한 나라들을, 에벨은 히브리인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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