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론 – 시시콜콜 관여하지 마세요

앞서 올렸던 기능적 무신론자 글에서 평소 판단, 결정기준이나 방식이 믿지 않는 사람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를 그 특징 중 하나로 꼽았다. 이런 경우, 시시때때로 하나님이 내 안에 있다 없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는 영접했다가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까맣게 잊고 지내거나 외면하고 모른 척 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너는 누구냐? 난 모르겠는데’ 하실 것만 같다. 마태복음에도 그런 구절이 나온다. 무서운 일 아닌가.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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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지니가 아니다

어제 큰애가 알라딘 실사 영화를 보여줬다. 하나님은 요술 램프에 나오는 지니 같은 존재가 아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불러냈다 필요 없을 때는 치워버리는 노예가 아니다. 나와 하나님 가운데 누가 진짜 주인인지 가리는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 하나님 존재는 인정하지만 필요할 때만 불러낸다면, 나는 지금 하나님을 종 취급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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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당신을 인정하지만 거기까지. 시시콜콜 관여하지 마세요.’ 하는 것은 아닐지. 이런 태도 밑면에는 하나님을 아버지 father가 아니라 귀찮게 하는 bother로 여기는 마음이 깔려있기 때문은 아닐지 의심해 보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잠언 21:2)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시다. 모든 행위 뿐 아니라 행위로 나타나기 전 마음마저 살피신다. 도둑질하고 간음하고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을 뿐 아니라 탐내지 말고 미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신다1. 마음에 가득한 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하나님의 관심도 귀찮고 싫어진다. 아직 나쁜 짓은 하지도 않았는데 마음까지 관여하시나 싶다. 더 나아가 이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착하기만 해서 살 수 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이 시대사조가 되어 나타난 적이 있었다. 바로 이신론(理神論 Deism)이다.

이신론(理神論 Deism)

이신론 - 시시콜콜 관여하지 마세요 공자
공자. 유교도 이신론에 해당한다.
하늘의 존재를 인정하지만 내세나 신에 관한 별도 경전이 없다. 실제로 계몽주의시대 이신론은 유교와 다소 관련이 있다. 위키.

17세기 과학혁명 시대에 태동하여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철학이다. 신의 존재를 믿되, 종교나 경전에 근거, 의존하지 않는다. 예언이나 기적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주 만물을 만드신 것까지는 인정하지만, 신의 역할은 거기서 끝났고 더이상 관여(인간의 마음, 역사에)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볼테르, 루소, 제퍼슨, 벤자민 프랭클린 등이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대다수는 세속적이었고 정교분리주의자였다고 한다. 조지 워싱턴이 말한 ‘건설자, 주재자’나 독립 선언서에 나오는 ‘창조주’는 우리가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신론자의 신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나 자연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신론은 자연주의, 계몽주의, 이성주의 철학에 입각한 것으로 무신론으로 발전했다. 또 이것은 범신론2과 연결되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이신론과 유신론의 어원은 같다. 이신론 deism은 deus, 유신론 theism은 theos로 둘 다 ‘신’을 뜻한다. 하나는 라틴어, 다른 하나는 그리스어일 뿐이다. 영국에서 이 둘은 원래 동의어로 취급되었다. 갈라진 것은 17세기에 들어와 이신론이 믿음의 다른 형태를 가리키게 되면서였다3.

참 자유

우리들은 간섭받기 싫어한다. 자유를 갈망한다. 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 그것은 기본적인 권리이다. 그래서 나 자신의 주인이 나이길 원한다.

그런데 그 자유는 누가 준 것인가. 나를 지은 이는 누구인가. 내게 관심과 사랑을 갖고 지켜보는 이가 누구인가. 천지를 지으신 것도 하나님4이시고,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도 하나님5이시며, 세상을 다스리고 의사결정의 자유와 권리를 주신 것 역시 하나님6이시다. 단지 주인이 누구인지 고백하는 약속 한 가지만 지키면 됐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내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자유다.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자유를 잘못 행사한 결과는 더 많은 자유가 아니라 억압이었다. 자유를 빼앗긴 채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다. 전체 66권의 성경의 맨 처음 책 창세기. 첫 두 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만들고 복 주셔서 다스리게 하셨는데, 바로 그 다음 장에서 인간은 잘못 된 길을 선택한다. 성경의 나머지 부분은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려주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뒤부터 말세는 이미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신다. 인간을 원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기까지 내어줄 정도로 사랑하신다. 참 자유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따로 뭘 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하나님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으며,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된다.

내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오히려 참 자유를 누리게 된다. 왜 그럴까?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7에게서 벗어나 내게 자유를 주신 분의 안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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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notes

  1. 잠언 4:23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 범신론(汎神論, pantheism) 우주만물 모든 것이 다 신이라는 관점. 흔히 모든 것에는 신이 있다는 범재신론과 혼동되기도 한다.
  3. Deism, wiki, overview
  4.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5.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6. 창세기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7. 요한복음 8:44

열매맺는나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고백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자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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