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리스도를 향하여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요한계시록 18:4) 예수님께서는 종말을 사는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만큼 종말의 시간을 사는 백성들이 영적으로 잠들지 않고 깨어있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종말은 언제인가. 지금이 종말이다. 예수님이 오셔서 승천하시고 재림하기 전까지의 기간이 바로 종말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나오라 그러면 거기서 나오라의 ‘거기’는 어디를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야고보서 5:19~20) 야고보서는 고난을 만난 성도들이 기도와 간구로 그것을 통과해 풍성한 삶을 얻기를 권면하는 글이다. 그런데 야고보서 맨 마지막 문장(5:19~20)을 읽어보면,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0:14~15) 둘째 사망이란 첫째 사망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은 두 가지다.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이다. 첫째 사망은 육신의 죽음 즉 영혼과 육신의 분리를 뜻한다. 그에 비해 둘째 사망은 하나님과 영혼의 분리를 말한다. 첫째 사망 죽음은 ‘분리’다.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 어린이날 구호, 1923. 첫번째 어린이날 첫 번째 어린이날은 1923년 5월 1일이었다. 방정환 선생님은 “욕하지 말고, 때리지 말고, 부리지 말자”는 구호를 외치며 ‘어른에게 드리는 글’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알렸다고 한다. 아동학대와 강제노동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그런데 미디어에 실리는 뉴스를 보면 오늘날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전체적으로
소리가 자산 위에서 들리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애곡하며 간구하는 것이라 .그들이 그 길을 굽게 하며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음이로다.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 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 (예레미야 3:21~22) 자산 하나님께서 “소리가 자산 위에서 들린다”라고 하셨다. 자산(赭山)은 어떤 곳인가. 한자를 보면 붉은 땅 자에 뫼 산을 쓴다.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은 숨을 쉬어야 산다. 숨을 쉬지 않으면 죽는다. 기도는 믿는 자의 호흡이다.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통해 생명을 얻으며 지혜를 받고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 다윗도 아침부터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런데, 이렇게 꼭 필요한 기도를 할 때 잊지 말고 지켜야 할 것이 세 가지 있다. ‘잊지 말고 지켜야 할 기도의 기본 세가지’